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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물이 깨끗한 걸 어떻게 알지?’
딸아이 질문 풀러 선유도 측정소 방문
내부엔 자판기같이 생긴 17개 장치
취수부터 분석까지 강물 전자동 측정
‘어류 생물감시장치’ 속 지브라피시 제초제 등 만나면 행동변화 보여줘 물벼룩도 유용한 중금속 감시 ‘장비’
기계-생물 조합, 강물 오염 철저 감시
‘어류 생물감시장치’ 속 지브라피시 제초제 등 만나면 행동변화 보여줘 물벼룩도 유용한 중금속 감시 ‘장비’
기계-생물 조합, 강물 오염 철저 감시
선유수질측정소는 수심 1미터 아래 흐르는 한강 물을 끌어와 수질을 측정한다. 윤호균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주무관이 취수관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
어느 날 지하철로, 한강을 건너다 딸아이가 물었다.
“저번에 엄마가 그랬잖아? 하수도로 흘러간 물은 강으로 모였다가 바다로 간다고.”
“응 그랬지. 왜?”
“그러면 저 물은 더러운 물 아니야? 저 사람들은 왜 저기서 놀아?”
저 멀리 카누에 오른 두 사람이 유유히 강물을 헤치고 지나가는 게 보였다. ‘서울하수도로 흘러들어 간 하수나 빗물은 물재생센터에서 깨끗하게 걸러 강으로 내보내니까 한강 물은 깨끗할 것’이라고 설명하자,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그걸 어떻게 알아? 더러운지, 깨끗한지?”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찾아갔다. 선유도공원 한편 양화대교 바로 아래에서 남모르게 24시간 한강 수질을 감시하고 있는 존재들을.
선유도공원 내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에는 선유수질측정소가 자리 잡고 있다.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습니다’라고 적힌 문을 열어준 이는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의 윤호균 주무관이었다. 선유도수질자동측정소 관리자인 그는 일주일에 한 번쯤 현장에 나와본다고 했다. 수질과 장비는 사무실에서 원격으로 확인한다.
“취수부터 분석까지 다 자동으로 되거든요. 그래서 사람이 항상 있을 필요는 없어요.”
측정소 내부는 기이했다. 사람이 머물지 않는 공간에는 자판기같이 생긴 17개의 장치가 가득 차 있었다. 얼굴처럼 모니터를 단 장치였다. 어떤 모니터 위에선 병실 속 생명유지장치에 뜬 생체신호 같은 선들이 움직였다. 다른 모니터엔 ‘측정단계 진행 중’이라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추상화같이 알록달록한 선들로 가득한 모니터가 눈길을 끌었다. 아래쪽에선 빨간선과 노란 선들이 오갔다. 아래위로는 분홍선과 초록 선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유심히 바라보자 윤 주무관이 물었다.
“열어봐드릴까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가 작은 열쇠를 꽂았다. 육중한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안의 풍경은 놀라웠다.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물고기들이 다홍빛 조명 속에서 바쁘게 노닐었다. 하도 빨리 움직여 몸체를 가로지르는 오선지 같은 줄무늬는 사진기로 찍은 다음에야 볼 수 있었다.
“아, 귀여워라. 이게 뭐예요?”
“지브라예요. 지브라피시(zebrafish).”
어류생물감시장치 속에서 지브라피시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유 주무관은 장치 위에 놓인 팻말을 가리켰다. ‘어류 생물감시장치’라는 큰 글씨 아래로 ‘독성물질 유입시 어류의 행동변화를 감지하여 독성 유무를 판단하는 장비’라고 적혀 있었다. 감시 대상 물질은 신경계 독성물질, 제초제라는 부연과 함께.
“그러면 한강에 독성물질이 들어오면 얘네들이 알려주는 거예요? 어떻게 알려주나요?”
“움직임이 평소와 달라져요. 사람도 독성물질을 마시면 움직임이 달라지잖아요? 얘네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더 민감하게 반응하죠.”
얼룩말 같은 줄무늬 때문에 ‘지브라’라 불리는 이 물고기는 유전자 구성이 인간과 85% 이상 유사하다. 또 독성물질에 유독 민감해 움직임만으로도 강물에 해로운 게 들어왔는지 알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밖에 안 오신다면서 얘네들 밥은 누가 주나요?”
“강이 주죠. 취수관으로 강물이 계속 들어오잖아요. 그 물이 영양분, 먹이가 됩니다.”
이 장치는 강, 즉 강의 생태계와 이어져 있었다. 강의 생태계는 무기물에서 시작된다. 식물플랑크톤은 광합성으로 이산화탄소, 인 같은 무기물을 산소와 유기물로 만든다. 그걸 물벼룩 같은 작은 유기체가 먹는다. 물벼룩은 지브라가 좋아하는 먹이다.
물벼룩.
하지만 ‘물벼룩 생물감시장치’ 속에 있는 물벼룩들은 다른 생물의 먹이가 아니라 감시자다. 이들은 모니터 위에서 빨간 점의 형태로 느리게 오갔다. 만약 시안 등 중금속류, 휘발성 유기물(VOCs) 같은 오염물질이 늘어나면 평소보다 다른 움직임으로 위험을 경고할 것이다. 다른 장치들 속의 녹조류, 미생물 등 다른 생물 감시자들도 평화로운 신호를 보여줬다.
여기서 가장 강력한 감시자는 누굴까. 애석하게도 깜찍한 지브라나 물벼룩은 아니었다. 강물 속 모든 유기물질을 측정하는 감시자, 총유기탄소(TOC, Total Organic Carbon) 측정장비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의 김현숙 주무관이 총유기탄소 측정기를 소개하고 있다.
TOC란 모든 유기탄소의 합이다. 거기엔 미생물 같은 생명체, 생명활동에서 나온 각종 유기물질이 포함된다. 인간이 배출한 오염물질도 그중 하나다. 이산화탄소나 탄산수소염 같은 무기탄소를 빼고 전체 유기물질을 뜻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과거에 주로 쓴 분석법들은 이 중 일부만 분석할 수 있다.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은 미생물로 분해되는 유기물, 화학적산소요구량(COD)은 산화제로 분해되는 유기물만을 측정한다.
최근 도입된 TOC 장비는 아주 화끈하다. 750도에 이르는 열기로 강물에서 빼낸 시료를 태워 그 안에 든 유기물질을 모두 측정한다. BOD나 COD로 측정하지 못했던 난분해성 유기물질, 즉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인공합성물질같이 분해되기 어려운 유기물도 잴 수 있다. 물에 녹아든 ‘용존유기탄소’, 악취를 유발하는 ‘휘발성 유기탄소’도 잡아낸다.
덕분에 수질 오염을 사전에 막은 사례도 있을까? 윤 주무관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연구원에서 일한 30여 년 동안은 없었다고 했다.
“서울의 오폐수 관리가 철저해요. 하지만 한강은 워낙 큰 강이라 사건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죠. 차량 전복으로 기름이 흘러들 수도 있고, 누군가 몰래 오염물질을 흘려보낼 수도 있고요. 이런 일에 대비해서 이런 장비와 생물들이 24시간 감시하고 있는 겁니다.”
딸에게 전해줄 말이 많아졌다.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자문: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 물환경연구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