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보내 주신 사연을 필리핀 출장길에 읽었습니다. 강연과 인터뷰를 마치고 귀국하는 비좁은 항공기 좌석에서 이 글을 씁니다. 구름 위에서 드리는 메일이라고 할까요? 공교롭게도 이 순간은 제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지 정확히 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돌이켜보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여행과 프리랜서 인생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마침 휴가철이어서 여행에 비유해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안정적인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자신의 엔진을 최대한 가동시켜야 합니다. 항공기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이륙과 착륙 순간이라고 하죠? 일정한 고도에 도달해 기류를 탈 때까지 항공기는 굉음을 울리며 최대한 속력을 끌어올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추락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직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한 3년 혹은 그 이상을 미친 듯이 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것이 자유직업입니다. 저 역시 그동안 거의 쉬는 날이 없었습니다. 비법은 없습니다.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제게도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확실한 것이라고는 미래는 불투명하다는 사실, 바로 그것뿐입니다. 가끔 항공기가 출렁거릴 때도 있습니다. 먹구름, 비바람, 때로는 번개 치는 무시무시한 장면도 목격합니다. 이러다 추락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엄습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여행의 일부입니다.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렇듯이 자유직업을 가진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것이 고통인지 혹은 짜릿함인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두 번째, 패키지 여행을 직장인에 비유한다면, 프리랜서는 개별 여행자라 할 수 있습니다. 패키지 여행은 여행사와 가이드가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 줍니다. 편안하고 순조로운 여행을 원한다면 패키지 여행을 선택하는 것이 낫습니다. 다만 그곳에서는 단체 행동의 규칙을 따라야 하고 독자 행동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똑같은 사람들과 옆자리에 앉아 식사하고 버스를 타고 술도 마십니다. 어떤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개별 여행을 선호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자유가 좋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여행이란 뜻밖의 상황과 낯선 것들과의 연속된 만남입니다. 가끔 항공기 출발이 지연되고, 연결편이 결항되어서 당황하게 만듭니다. 비행기 옆자리에 거대한 몸집을 한 사람이 앉거나 우는 어린 아이가 앉을 수도 있습니다. 가끔 렌터카의 내비게이션이 오작동해 길을 잃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길을 잃어 보아야 나만의 길을 발견하게 되고 시야가 트입니다. 더 나아가 문제 해결 능력도 생깁니다.
원래부터 세상은 흔들거리고 움직였습니다. 그것이 자연의 본질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유일한 것은 죽음이라고 주장한 학자들도 있습니다. 낯선 상황이 두렵거나 견디기 힘들다면 패키지 여행을 하는 편이 좋습니다. 변화가 싫다면 조직 내에 머무시길 바랍니다. 물결과 파도에 흔들리는 물 위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뱃사람의 다리처럼 프리랜서는 유동적인 것들에 적응해야 합니다. 프리랜서는 고정된 기반 위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일이라는 이름의 파도가 몰아치고, 정리정돈할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습니다. 육지인의 다리가 아니라 뱃사람의 다리를 가져야 합니다.
제가 마닐라에 올 때마다 묵는 숙소가 있습니다. 인터넷 속도도 느리고 주변 환경도 좋다고 할 수 없어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미화 50달러 미만에 이 정도 시설을 갖춘 곳을 인터넷으로 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비용 절감은 언제나 중요하니까요. 이 호텔은 제리코라는 친절한 벨보이가 소소한 심부름까지 해 줘 편리한 면도 있지만, 제게는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원하면 높은 층에 있는 방을 주는데, 발코니가 있어서 멀리 바라볼 수 있습니다.
3년 전 제가 그 발코니에 섰을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영국 가수 도노반이 부른 ‘바람을 잡아라!(Catch the wind)’라는 올드 팝송이 들려왔습니다. 마침 그때는 회사를 퇴직한 직후여서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두려움과 우울함, 그리고 눈물 같은 것이 혼합되어 있을 때였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살갗에 스치는 바람이 그 모든 것들을 다 날려 주었습니다. 자유라는 이름의 바람을 만난 겁니다. 프리랜서란 그 바람의 맛을 아는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한순간에 확 바뀌는 인생, 한 번에 거두는 성공, 매우 드뭅니다. 드라마와 현실은 다릅니다. 단련의 시간은 필수입니다. 다시 회사에 복귀한다고 해도 또다시 불만이 생길 것입니다. 걱정 없는 집안 없듯이, 불만 없는 직장 생활 없습니다. 내가 진정 뭘 원하는지 우선순위를 생각해 보세요. 인생 목표가 확실하다면 이 순간을 견디기를 권합니다. 그래도 망설여진다면 잠시 바깥으로 나가 보세요. 그리고 바람을 잡아 보세요! 너무도 소중한 바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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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전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