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이 간다

도시 비우기에 꽂힌 구청장, 전봇대 40여 개 뽑아

건축사 출신 김영종 종로구청장 역사와 문화 살리는 도시재생에 역점

등록 : 2016-07-2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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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전국 최초로 종로구가 문을 연 어린이 전용 공연장 ‘아이들 극장’ 천창에 선 김영종 종로구청장. 아이들 극장을 내려다보는 김 구청장의 시선에는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이 맘껏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라는 믿음이 담겨 있었다.

김영종(62) 종로구청장은 건축사 출신이다. 건축일을 하면서 자연히 도시개발이나 미관에 관심을 가지고 행정당국에 건의도 하고 지적도 했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문제들이 쌓여 있는데 관청이 움직이지 않자 ‘나라도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6년 출마에 이어 두 번째 나선 2010년 선거에서 당선돼 종로구정의 책임을 진 뒤, 2014년 민선 6기 선거에서 구민들의 재신임을 받았다.

명품도시를 위한 섬세한 노력

구청장이 되면서 그가 처음 한 일은 주민들의 공동체 정신과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당시 종로에는 40곳이 넘는 재개발 지구가 있어서 주민들의 이해 대립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툼이 벌어졌다. 그때 김 구청장은 직원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경제적 욕망은 누구의 것이든 존중해 줍시다. 갈등의 책임을 주민에게만 떠넘기지 말고 우리가 나서서 해야 할 곳과 하지 말아야 할 곳을 구분해 봅시다.”

김 구청장은 책임지는 행정을 부탁하며 직원들을 독려했고, 그 자신도 물러서지 않고 주민들을 찾아가 설득에 나섰다.


재개발 중단에 따른 대책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책임지는 행정에 뜻을 같이하는 20명의 자치구청장이 모여 연구도 하고, 중앙정부에 건의도 하면서 대책을 만들었다. 대규모 철거로 인한 정주민 피해도 줄이고, 낙후된 동네의 주민생활도 개선할 수 있는 도시재생은 그렇게 탄생했다.

“모든 것을 헐어내고 전면 재건축하는 것만 개발이 아닙니다.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면서 주민생활 편의를 위해 일부를 개선하는 도시재생도 개발입니다. 도시재생이야말로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종로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입니다.”

김 구청장은 ‘펜치 구청장’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른바 ‘뺀찌’를 차에 싣고 다니며 전봇대를 감고 있는 날카로운 철사를 보이는 대로 자르고 다녔기 때문이다.

도시에 불필요한 것들을 치우고 정리정돈하는 ‘도시 비우기’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명품 도시의 조건 가운데 첫째는 안전, 둘째는 편리, 셋째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런데 기능이 10년 이상 방치된 시설물이 곳곳에 깔렸더군요. 전봇대 40여 개를 뽑았지요. 철거 장비가 들어가지 못하는 몇 군데는 미래유산 문화재로 지정해 남겨 두었고요. 청와대 주변에 쓰지 않는 군사 시설물도 군부대와 협의해 철거했습니다.”

종로구는 2013년부터 감사담당관에 시설물 관리 통제탑(컨트롤 타워) 기능을 하는 도시비우기 팀을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잘 쓰이지 않으면서 지나다니는 데 불편을 낳기만 하는 공중전화 부스와 길 한복판에 있는 전신주를 통합하거나 정비해, 총 1만3000여 건에 이르는 시설물을 정비했다. 2014년부터는 각 부서의 사업을 도시비우기 팀과 공유해 145개의 시설물을 통합 설치해 설치비와 유지관리비 2억2000여 원을 아꼈다.

그는 전공을 살려 종로구청 직원들이 직접 건축 관련 특허도 따게 했다. 친환경 보도블록 제작과 미끄럼 방지 타일 등이 모두 김 구청장이 전공을 살려 끌어낸 것이었다. “빨래하다 주저앉으면 크게 다칩니다. 특히 뼈가 약한 어르신에게는 대형 사고가 됩니다.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으면 의료비도 절감되고 가정도 지키는 일이 되지 않습니까?” 바닥 타일에 어느 정도의 마찰이 필요하다고 하는 김 구청장의 제안은 법규로 만들어졌다. 종로구 청사 바닥이 거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선 6기에 들어서는 아동친화 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종로구 전체 인구 대비 아동 비율은 13%에 불과합니다. 교육 때문에 강남으로 떠나기 때문이지요. 우리 종로도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절실해지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종로구는 유엔이 권장하는 아이들의 환경과 권리, 교육 등을 체계적으로 만들기 위해 유니세프와 협력해 2017년 아동친화 도시 인증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보탬이 되기 위해서는 충분히 검토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김 구청장은 2015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아동친화 도시 조성을 그렇다고 너무 서두르지도 않았다. 종로구는 그동안 충분히 검토하며 준비해온 아동친화 도시 조성에 관한 조례를 9월에 제정하고, 11월에는 아동위원회를 마련해 아이들의 의견이 정책에 실제 반영하도록 할 방침이다.

2010년 당시 구립도서관이 단 한 곳도 없던 종로구에 김 구청장은 아이들이 책을 보며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작은 도서관을 세우기 시작했고, 삼청동의 숲속도서관과 창신동의 도담도담 한옥도서관을 비롯해 구립도서관 16개를 만들었다.

“창신동에 가 보면 ‘뭐든지도서관’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도서관에서 열심히 책을 읽으면 나중에 뭐든지 될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이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예쁜 생각입니까?”

종로구는 아이들이 우리 음악과 올바른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우리음악도서관’과 ‘국학도서관’ 같은 특화 도서관도 세울 계획이다.

아이들이 행복한 종로를 꿈꾸다

“문화로 성장하는 아이들의 행복한 어린 시절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선 창의적인 연극을 보여 주고, 그다음에는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합니다.”

종로구는 지난 4월 전국 최초로 어린이 전문 공연장으로 ‘아이들극장’을 개관했다. 현재 극장에서는 (사)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와 함께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 줄 수 있는 인형극 등을 선보이는 ‘제24회 아시테지 여름축제’를 열고 있다. 아이들극장은 어린이 키에 맞춘 좌석과 맨 끝 좌석에서도 무대가 훤히 보이도록 설계됐다. 또한, 아이들이 무대에 쉽게 오르도록 턱을 없앴고, 쉬는 시간에 맘껏 뛰어놀도록 햇빛이 드는 넓은 공간까지 마련했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환경은 종로구가 사람이 살기 좋은 명품 도시로 가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천천히 충분하게 준비하고, 보여 주기식 상품이 아닌 장인 정신이 깃든 작품을 만들어 반드시 명품 도시 종로를 만들겠습니다.”

종로구에는 일본대사관이 있고 그 앞에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간 소녀의 상이 있다. 이 소녀상이 김 구청장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지고 설치될 수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보람을 묻는 말에 김 구청장은 이때의 일을 가장 큰 보람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2011년 5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수요집회 1000회를 기념해 비석을 세우려 하니 도와달라고 김 구청장에게 요청했다. 김 구청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녀의 조각상을 세울 것을 제안했다. 건축가 기질이 순식간에 발휘된 것이다.

“검정 단발머리에 하얀 저고리, 검정치마, 두 주먹 불끈 쥐고 시선을 15도 위로 치켜뜨며 대사관을 응시합니다. 조그만 나무 걸상에 단호하게 앉아 있는 소녀의 모습, 그 옆의 빈 의자 등은 모두 저의 생각이었지요. 그 소녀상의 이름을 저는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를 기다린다는 의미에서 ‘기다림’이라고 하자고 제안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글 김정엽 기자 pkjy@hani.co.kr

사진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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