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주민참여·뚝심행정…통학로 ‘빨간집’ 제로

강북구, 6년 만에 학교 주변 불법 유해업소 완전 퇴출

등록 : 2021-08-12 17:38

크게 작게

2015년 민·관·경 손잡고 범구민 운동

주민참여·청장 의지·법 개정 ‘3박자’

단속·캠페인·설득, 전체 180곳 없애

“꺼진 불 다시 보듯 사후관리 철저히”

지난 6월 강북구 송천동 학교 주변 불법 유해업소 모습.

강북구 송천동에서 인근 삼양초를 다니는 아이들은 등하교 때 뒷길로 다녀야 했다. 큰 길에 불법 유해업소 10여 곳이 즐비해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두 달 전까지도 이곳 불법 유해업소들의 빨간 조명은 밤마다 켜졌다. 강북구가 6년 동안 펼쳐온 ‘학교 주변 청소년 유해시설 완전 퇴출’ 사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던 곳들이었다. 이들 업소는 일반음식점으로 영업신고를 했지만 유흥주점으로 변칙 영업을 했다. 선정적인 간판에 붉은 조명을 써 흔히 ‘빨간집’으로 불렸다.

아이들은 이제 더는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빨간집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현재 재건축 중이거나 음식점 등으로 바뀌었다. 7월29일 오전 강북구청의 이우성 유해환경개선 티에프팀장을 송천동에서 만난 범구민운동협의회의 김공석 회장과 홍현숙씨는 “거리가 밝고 깨끗해져 정말 좋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학교 주변 불법 유해업소 퇴출 사업을 펼치지만, 완전히 없앤 경우는 드물다. 업주와 건물주가 끝까지 비협조적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거의 막다른 상황에서 이 업종을 선택한 자영업자는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개발 이슈 등이 있는 곳에선 건물주가 소극적이다. 사유재산 운영에 간섭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도 있다. 강북구 전체 13개 동 180곳 가운데 마지막 15%를 없애는 데 3년 가까이 걸린 이유이기도 하다.


강북구가 학교 주변 불법 유해업소를 모두 없앨 수 있었던 요인으로 이 팀장은 ‘주민참여, 구청장 의지, 법 개정’ 세 가지를 꼽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지역사회가 뜻을 모아 끝까지 함께 했던 게 가장 컸다”고 했다.

7월29일 강북중 인근 수유3동의 건물주 권태삼 할아버지가 업종이 옷가게로 바뀐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해마다 강북구 학부모 간담회에서 불법 유해업소 문제는 단골 민원이었다. 강북구청이 완전 퇴출 사업에 나서자 많은 주민이 함께하겠다고 참여했다. 2015년 3월, 6개 동에서 추진협의회가 만들어졌다. 협의회마다 회원 3~4명을 뽑아 5월엔 범구민운동협의회 발대식을 열었다. 참여 주민들은 2019년까지 매달 1~2회 캠페인을 꾸준히 펼쳤고 야간 단속에도 참여했다. 김공석 회장은 “처음엔 완전히 없앨 수 있을까 모두 반신반의했다”며 “구청과 꾸준히 같이하면서 자신감이 생겨 끝까지 해올 수 있었다”고 했다.

발대식 때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청소년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유해업소 근절은 시일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구청장의 강한 의지는 뚝심 있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됐다. 보건위생과에 전담팀을 꾸려 지속해서 추진할 수 있게 힘을 실어줬다. 유해환경개선팀원 3명은 단속과 설득을 병행했다. 경찰서·교육지원청과의 합동단속을 포함해 단속 횟수만도 5천 회가 넘는다.

캠페인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번1동 추진협의회 회원인 홍현숙씨는 “(구청장이) 캠페인에 나와 앞장서고, 주민들과 직접 동네를 도는 등 열심히 하면서 지역에 (완전 퇴출의) 분명한 메시지를 줬던 것 같다”고 했다.

전담팀은 건물주와 업주 설득에도 많은 시간을 썼다. 강북중 인근 수유3동의 건물주 권태삼 할아버지는 “지난해 (임차인이) 옷가게로 업종을 바꾸었다”며 “구청에서 귀찮을 정도로 여러 차례 찾아왔는데 이제 속이 다 시원하다”고 했다.

완전 퇴출의 마지막 퍼즐 조각은 개정된 법규였다. 지난해 유해환경개선 티에프팀을 맡은 이 팀장은 끝까지 버티는 업소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팀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그는 “2017년 개정된 교육환경보호법에 따라 퇴폐 행위 가능성만으로도 영업정지, 취소 등의 조처를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법률자문을 받았다”고 했다.

구는 3월 업소들에 공문을 보내 5월까지 영업신고 취소 처분을 내릴 것을 알리며 자진 폐업이나 업종전환을 권고했다. 이 팀장은 “법적인 근거를 들이대자 업주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졌다”며 “이제 강북구에서 ‘빨간집’을 할 수 없다고 소문이 난 것도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강하게 버텨왔던 한 업주도 경고장을 받고는 ‘큰 돈 버는 것도 아닌데 왜 이 고생을 하나’ 포기하는 마음이 생겨 음식점으로 바꿨다”고전했다.

강북구는 불법 유해업소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사후관리 계획도 세워가고 있다. 폐업 뒤 비어 있는 가게 순찰을 이어가고 지역 부동산 공인중개사협회에 불법 유해업소 중개를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이 팀장은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심정으로 시스템을 갖춰 지속해서 관리해 나가려 한다”고 했다.

같은 날 불법 유해업소가 사라진 송천동 거리에서 이우성 강북구청 유해환경개선 티에프팀장(오른쪽)이 강북구 범구민운동협의회 김공석 회장(가운데), 홍현숙 회원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