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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여가 함께하는 어르신 놀이터’…노인복지시설 새 모델

등록 : 2021-08-26 15:07 수정 : 2021-08-2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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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구, 18일 광진숲나루에 스마트 어르신 놀이터 ‘시니어파크’ 개장

유연성·균형감각 강화 기구 15종 설치, 건강·삶의 질 향상 효과 기대

광진구가 구의동 광진숲나루에 서울에서 처음으로 스마트 어르신 놀이터 ‘시니어파크’를 조성했다. 고령자에게 맞는 기구로 건강을 챙기고 야외 활동으로 활력도 얻을 수 있게 꾸몄다. 어르신 놀이터는 기존 복지관, 경로당과 같은 실내 폐쇄형이 아닌 놀이형으로서 노인복지시설의 새로운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개장일인 8월18일 시니어파크를 찾아 기구를 이용하고 있는 어르신들 모습.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하는 ‘모두의 공간’ 지향”

중·종로구, 어린이·어르신 찾는 공원에

어르신 특화기구 설치, 실외활동 도와

서울시의회, 설치·관리 지원 조례 발의

“무릎과 허리가 안 좋아 동네 운동기구는 엄두도 못 냈는데, 여기 기구들은 쉽게 이용할 수 있어 참 좋네요.”


8월18일 오전 광진구 구의동 ‘광진숲나루’에 새로 들어선 ‘시니어파크’를 찾은 박익자(72·중곡3동) 할머니가 기구를 이용해본 소감을 말했다. 곁에 있던 박정분(83·광장동) 할머니도 “몸 전체를 기구로 스트레칭을 하니 아팠던 팔, 다리가 시원해졌다”고 말을 보탰다.

광진구의 시니어파크는 어르신들이 운동도 하고 얘기도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어르신 놀이터다. 기존 실외 운동기구들이 대부분 근력운동을 목적으로 하다 보니 체력이 약한 고령자에겐 ‘그림의 떡’처럼 이용이 어려웠다. 어르신 놀이터에선 고령자 맞춤형 기구를 만날 수 있다. 유연성, 균형감각, 인지능력을 키워줘 노년기 원활한 일상생활을 돕도록 설계됐다.

168㎡(50평) 규모의 시니어파크는 손가락 계단, 물결 봉, 뱀다리 건너기 등 모양도 이름도 색다른 고령자 특화기구 15종을 갖췄다. 손가락 계단은 작은 계단 모형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는 기구다. 물결 봉에선 구불구불한 봉을 따라 링을 이동시키며 집중력을 키운다. 뱀다리 건너기에선 꼬불꼬불한 길을 건너며 균형잡기를 연습한다. 이 밖에 손목강화기, 원 그리기, 레이싱 트랙 등의 기구가 있다.

탄성포장 바닥은 운동 범위에 따라 보라(상체), 파랑(하체), 초록(전신), 빨강(감각)으로 그려졌다. 색으로 어떤 부위운동을 위한 기구인지를 손쉽게 알 수 있다. 기구마다 세움 간판에 운동방법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이미지 설명서와 정보무늬(QR코드)가 붙어 있다. 정보무늬를 이용하면 기구 사용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이 서비스는 내년에 정식으로 제공된단다.

개장일인 이날 오전 기구 설치업체의 운동처방사 김경석씨가 나와 사용법을 알려줬다. 박정분 할머니는 물결 봉에서 링을 봉에 닿지 않게 이동시키고 있었다. 김씨가 다가가 “쉽지 않은 건데 잘하시네요”라고 말하자 박 할머니는 “뭐든 조심스럽게 하면 잘할 수 있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김씨는 손목강화 기구 앞에 선 황갑석(78·자양동)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사용법을 설명해줬다. “처음엔 하나만 잡고 해 보세요. 무게를 추가해보시고, 5회 반복하세요. 손목과 손가락 감각을 길러 주는 거예요.” 황 할아버지는 “좀 가볍네요, 운동이 되려면 더 무거워야겠어요”라고 말했다.

광진구가 시니어파크를 조성하는 데는 1년가량이 걸렸다. 지난해 9월 한국매니페스토실천운동본부와 전국 지방자치단체장이 노인정책 전환 모색에 대한 업무협약을 맺었던 게 출발점이었다. 초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시설 구축 등 하드웨어 제공에서 나아가 어르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소프트웨어 마련을 위해 노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노인여가복지시설을 기존 격리형에서 놀이형으로 바꿔가는 정책 방향도 포함해 어르신 놀이터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협약에 참여했던 김선갑 광진구청장은 담당 부서에 어르신 놀이터 조성계획 추진을 지시했다. 김선갑 광진구청장은 “초고령 시대 문턱에 선 상황에서 시니어파크 조성이 노인여가복지시설을 질적으로 개선하는 하나의 축이 될 것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고 말했다.

조성과정은 ‘맨땅에 헤딩’하듯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가며 진행됐다. 이혜진 광진구 어르신여가복지시설팀장은 “서울에서 하는 첫 조성이다 보니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부지 선정을 위해 현장 조사를 시행하고 관련 부서들의 의견을 모았다. 후보지 9곳 가운데 법적인 문제가 없고 녹지 조성이 잘된 광진숲나루로 정했다.

김선갑 광진구청장(오른쪽)이 박정분 할머니와 함께 물결 봉을 이용하는 모습.

광진구는 어르신에게 맞는 기구를 설치하기 위한 업체 발굴에 공을 많이 들였다. 여러 차례 간담회를 하고 업체 현장 답사도 했다. 국산으로 특허청 실용신안에 등록하고 안전인증(KC)을 받은 청년스타트업(시니어박스오피스)을 찾아 조달청 나라장터를 통해 구매했다. 권영진 시니어박스오피스 대표는 “유럽 노인건강기구들을 벤치마킹해 우리 어르신 체형에 맞춰 디자인하고, 기후에 맞는 자재를 써 제작했다”고 했다. 우리나라 어르신 체형에 맞춰 외국산 기구에 견줘 평균 높이를 15㎝ 정도 낮췄다. 녹슬지 않고 유지보수를 잘 할 수 있게 리얼우드, 스테인리스 등의 자재를 썼다. 기구 설치 땐 운동기구별 1.5m 경계 표시로 이용자 동선이 겹치지 않게 안전에 중점을 뒀단다.

이날 시니어파크를 이용한 어르신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아쉬움이나 개선 요구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황갑석 할아버지도 “놀이하듯 재밌게, 안전하게할 수 있는 운동기구에 주위 경치도 좋아 답답한 마음이 확 트이는 것 같다”면서도 “오가는 게 수월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익자 할머니도 “우리 경로당 어르신들도 데려오고 싶다”며 “구청에서 셔틀버스를 운행한다고 하니 괜찮을 것 같은데, 정류장이 경로당에서 가까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광진숲나루 인근 동네에 사는 이강국(78), 황의길(79) 할아버지는 “몸이 약한 노인들에게는 좋을 것 같다”면서도 “운동 강도가 좀 약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늘이 없어 한여름엔 (이용이) 힘들 것 같다”는 지적에 이혜진 팀장은 “쿨링포그를 연장해 설치할 예정이다”라고 안내했다. 구는 셔틀버스 이용시간을 미리 알리는 등 접근성을 높이는 노력을 이어가고, 내년엔 경로당 순회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노인여가복지시설의 변화가 관심을 끌면서 기존 공원에 어르신을 위한 기구를 설치한 자치구도 생겨나고 있다. 종로구는 5월 창신동 지봉골공원 안에 ‘우리동네 어르신 놀이터’를 조성했다. 공원 안 노후시설을 정비하고 작은 터를 마련해 어르신 특화기구 7종을 들여놨다. 국내 실외 운동기구 제조업체의 제품을 나라장터를 통해 구매했다. 채병훈 종로구 공원녹지과 팀장은 “손주를 돌봐주는 어르신도 꽤 있어,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하는 ‘모두를 위한 공원’으로 방향을 잡고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조성했다”고 말했다.

기구 설치 뒤 어르신체육강사가 기구이용방법을 알려줘 어르신들 반응이 좋았는데, 거리두기 4단계로 중단한 상태다. 채 팀장은 “고연령층에 맞춰진 기구다 보니 체력이 좋은 어르신들은 싱겁다고들 해 (운동강도가) 중간 수준의 기구들도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어르신 놀이터라는 명칭에 대해서도 반응이 엇갈린다며 그는 “개념이 생소하다 보니 어르신들이 다가가는 데는 시간이 걸릴거로 보인다”고 했다. 종로구는 연말까지 숭인동 근린공원과 원서동 원서공원, 종로6가 흥인지문공원, 청운동 청운공원까지 4곳에 놀이터를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다.

중구는 ‘어르신 친화공간 확대’를 서양호 중구청장의 공약으로 이행해왔다. 2019년부터 지금까지 서소문역사공원, 손기정체육공원 등 노후 공원 6곳을 재조성했다. 7월에는 다산동 충현어린이공원을 다양한 연령층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원으로 새로 단장했다. 류인수 중구 공원녹지과 주무관은 “주민 수요를 파악해 공간에 맞게 기구들을 부분적으로 조합해 조성했다”고 했다. 2층 구조로 아래쪽은 일반 운동기구 5종, 위쪽엔 어르신 특화기구 14종을 설치했다. 올 하반기에도 무학봉 근린공원과 동화 어린이공원을 새로 단장할 예정이다.

한편, 어르신 놀이터 설치와 운영에 대한 법제도 마련 움직임도 일고 있다. 서울시의회 김용연(더불어민주당, 강서4) 의원은 ‘고령친화도시 구현을 위한 노인복지 기본 조례 일부 개정조례안’을 8월11일 발의했다. 개정조례안에는 노인 놀이터 설치 규정과 노인복지시설과 연계한 맞춤형 프로그램 운영, 놀이터 이용의 접근성과 편리성 증진을 규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 의원은 “노년의 삶의 질 향상은 미래과제가 아니라 당면과제이며, 서울시는 노인층의 복지향상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례는 본회의 통과 뒤 공포한 날부터 바로 시행한다.

노인여가복지시설의 변화가 관심을 끌면서 기존 공원에 어르신을 위한 기구를 설치한 자치구(종로구, 중구 등)도 생겨나고 있다. 사진은 중구 충현어린이공원에 조성된 어르신 특화시설 모습.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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