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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질 묻는 동서양 명작을 만나다

재개관전 연 용산구 리움미술관

등록 : 2021-11-2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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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전경

철재로 된 거대한 여인이 먼 곳을 응시한다. 깡마르고 거친 외양이다. 그녀가 바라보는 곳에 커다란 창이 있다. 쏟아지는 빛을 바라보며 그녀는 그저 멀뚱히 섰다. 스위스 출신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거대한 여인Ⅲ>이다. 전후 피폐한 인간 조건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실존주의 조각. 인간 본질을 육체가 아닌 정신에 있다고 본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전해진다.

조지 시걸 <러시아워>

여인 앞으로 앤터니 곰리의 <표현>이 있다. 육면체 딱딱한 덩어리들의 조합이 마치 사람 같기도 하고 십자가 같기도 하다. 포스트모던 미학을 연 미니멀리즘 작품이다. 조지 시걸은 어떤가. <러시아워>는 바로 우리 모습이다. 출근길 무표정한 인간 군상을 묘사한 그의 작품에서 홀로,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 운명이 찬찬히 그려진다.

11월 어느 날 동료들과 한남동 리움미술관을 찾았다.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1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거리다. 얼마 만의 리움인가. 재개관은 1년7개월, 기획전은 4년8개월 만이다. 단계적 일상회복 덕분에 발걸음이 더 가볍다. 더군다나 연말까지 모든 전시가 무료다. 이건희 컬렉션 국가 기증과 더불어, 고인을 기리고 리움 재개관을 널리 알린다는 취지다.

국내 최대 사립미술관인 리움은 2004년 개관했다. 벌써 17년째 한남동을 지키는 미술계 터줏대감이다. 건물부터 예술이다. 세계적 거장들이 건축에 참여했다. 전체 코디네이터와 아동교육문화센터 설계는 렘 콜하스, 고·근현대미술관 설계는 각각 마리오 보타, 장 누벨이 맡았다.

재개관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은 아동교육문화센터에 내년 1월2일까지 열린다. 섹션별 작품 131점을 배치했다. 론 뮤익 <마스크Ⅱ>, 맥스 후퍼 슈나이더 <환승역> 등이 눈길을 끈다. 인공지능과 코로나19 대유행, 그리고 기후위기 시대 인간은 어떻게 타인, 혹은 자연과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고미술 상설전도 볼만하다. 푸른빛 문양 한 점(4층), 흰빛의 여정(3층), 감상과 취향(2층), 권위와 신앙, 화려함의 세계(1층) 순으로 청자, 분청사기, 백자, 그림과 글씨, 금속공예, 불교미술 160점을 선보였다. 국보·보물도 10점에 이른다. 국민화가 김홍도가 그린 <군선도>를 비롯해 쉽게 만나볼 수 없는 귀한 작품들이다.


현대미술 상설전에서는 회화, 조각, 설치작품 76점을 만난다. 검은 공백(2층), 중력의 역방향(1층), 이상한 행성(지하 1층) 주제에 맞춰 최만린 <현>(玄), 최욱경 <레다와 백조>, 최우람 <쿠스토스 카붐> 등을 배치했다. 작품 60% 이상이 첫 공개다.

아동교육문화센터, 고·근현대미술관을 잇는 미술관 로비와 리움 스토어에도 눈에 띄는 작품들이 있다. 안내데스크와 로툰다(천장이 돔으로 이뤄진 원형의 홀)에 각각 이배, 김수자의 <불로부터> <호흡>이라는 작품을 설치했고 스토어에서는 곽철안, 문승지 등 유명 작가 6인의 미니어처 가구를 판다.

관람은 예약제로 이뤄진다. 휴관일(월요일) 빼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최대 4명까지 리움 누리집에서 예약할 수 있다. 예약시간 15분 전부터 입장할 수 있고, 신분증을 내면 디지털 가이드도 빌릴 수 있다.

김재훈 용산구 홍보담당관 주무관, 사진 용산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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