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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나씨(왼쪽)와 마정미씨가 14일 구로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열린 출판 기념식에 참석해 자신들이 직접 만든 ‘이중언어 동화책’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다.
캄보디아·베트남어, 우리말과 나란히
원주민·다문화가정 소통하는 매개체
주민작가들, 직접 번역하고 삽화 그려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해 보람 느껴요”
“아이가 학교 선생님한테 엄마가 작가 됐다고 자랑했다고 하더라고요. 친구들한테도 엄마가 만든 동화책을 보여줄 거라고 하더군요.”
조한나(36)씨는 2010년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결혼 이민을 와 12살과 8살 아이 둘을 키우며 병원에서 의료통역 일을 하고 있다. 조씨는 구로구의 이중언어 동화책 만들기에 참여해, 캄보디아 동화를 한국어와 캄보디아어로 쓴 이중언어 동화책을 출간했다. 14일 출판 기념식이 열린 구로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만난 조씨는 “오늘 아침 이곳에 제일 먼저 왔는데, 책을 보는 순간 너무 감동스러웠다”며 “아침에 가족들한테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받았다”고 했다.
구로구는 원주민과 결혼 이민자들이 함께 어울려 교류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주민작가들이 협업해 만든 이중언어 동화책을 12월 초 출간했다. 다문화가정은 언어 장벽으로 자녀 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다문화가정 아이가 양쪽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쉽고 재밌게 접할 수 있도록 동화책을 만들었다. 또한 원주민 아이들도 다른 나라 동화책을 보면서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게 했다.
구로구는 원주민과 결혼 이민자들이 함께 어울려 교류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주민작가들이 협업해 만든 이중언어 동화책을 12월 초 출간했다. 다문화가정은 언어 장벽으로 자녀 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다문화가정 아이가 양쪽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쉽고 재밌게 접할 수 있도록 동화책을 만들었다. 또한 원주민 아이들도 다른 나라 동화책을 보면서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게 했다.
이성 구로구청장이 14일 ‘이중언어 동화책’을 만든 주민 작가들과 함께 손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이중언어 동화책은 외국 전래동화를 주민작가가 그린 삽화와 함께 해당 국가 언어와 한국어로 함께 표기했다. 이번에 만든 이중언어 동화책은 <늑대와 새우 삼형제>(캄보디아어), <별사과 나무>(베트남어), <잉어 삼총사의 모험>(중국어), <도서관 가는 길>(영어·창작동화) 등 모두 네 종류다. 구로구는 각 3천 권씩 총 1만2천 권을 발행해 유치원, 초등학교, 도서관 등에 배포했다.
구로구는 전자책과 영상북도 함께 만들어 온라인을 통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전자책은 구로통합도서관 ‘지혜의 등대’(lib.guro.go.kr)에서, 영상북은 구로구 상호문화정책과 유튜브 채널 ‘구구다’에서 보면 된다.
구로구는 이중언어 동화책 제작을 위해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동안 결혼 이민자와 원주민을 대상으로 주민작가 양성과정을 운영했다. 내외국인 주민들은 이야기 구성부터 삽화 그리기, 번역 등을 배우며 나라별로 팀을 이뤄 동화책을 직접 만들었다.
조씨가 속한 캄보디아팀은 5명이 한 팀이 돼 <늑대와 새우 삼형제>를 만들었는데, 배고픈 늑대가 새우를 잡아먹으려 하자 새우가 기지를 발휘해 무사히 물속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떤 위험한 상황에 처해도 당황하지 않고 기지를 발휘하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교훈을 준다.
“처음에는 잘할 수 있을지 무척 걱정했어요. 하다보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스토리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조씨는 구로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권유해 이중언어 동화책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조씨는 동화책 만드는 과정에서 번역하면서 그림 그리는 법도 배웠다. 그는 “캄보디아어를 그대로 한국어로 번역한 게 아니라 한국 상황에 맞게 조금 바꿔 번역하는 과정이 어려웠다”며 “제가 원래 그림을 못 그렸는데, 이번에 그림 선생님한테 그림도 배워 삽화를 그릴 정도로 잘 그리게 됐다”고 했다.
조씨는 코로나19로 동화책을 만드는 시간이 부족해 많이 아쉬웠지만, 앞으로 이런 기회가 오면 계속해보고 싶다고 했다.
초등학생 학부모인 마정미(39)씨는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작가과정 프로그램인 줄 알고 신청했다가 이중언어 동화책을 만드는 일도 의미 있을 것 같아 참여했다. 마씨는 베트남 동화책 <별사과 나무>를 만들면서 전체 기획과 총괄을 맡았다.
<별사과 나무>는 우리나라 ‘흥부와 놀부’와 비슷한 서사 구조를 지녔다. 가난하지만 착한 동생이 ‘별사과 나무’ 덕분에 부자가 되자, 부자였지만 욕심 많은 형이 동생의 별사과 나무를 가져와 욕심부리다가 결국 죽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씨는 “지금까지 말로만 다문화를 이해한다고 했는데, 이번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다문화가정을 이해하고 유대감도 생겼다”며 “다른 나라의 전래동화가 주는 교훈도 우리나라 전래동화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 어디서나 사람 사는 게 똑같다고 느꼈다”고 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2세들이 엄마나 아빠 나라의 언어를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날 축사한 이성 구로구청장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림을 그려 보여주면 서로 알아듣는 뜻밖의 소통에 즐거웠던 경험이 생각나 이중언어 동화책을 기획했다”며 “그림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전래동화에 담긴 다른 나라를 느끼길 바라며, 언어와 문화를 공부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 구청장은 “기대보다 훨씬 좋은 책을 만들어서 고맙고 보람을 느낀다”며 “서로를 이해하는 데 좋은 매개체가 되는 이중언어 동화책을 내년에도 만들겠다”고 했다.
글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