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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성북구 정릉3동에 있는 주민 공동의 집 ‘홈 인 정릉’에서 운영자인 최옥숙 수녀가 1월에 연 바자회 기부 참여자에게 선물한 커피 봉지 재활용 걸이형 화분을 배경으로 정릉천 수질 모니터링 앱을 보여주며 활짝 웃고 있다. ‘홈 인 정릉’은 지역의 성모수도회가 2020년부터 운영해온 주민 무료 쉼터이자 생활 속 재활용 공예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성모수도회, 주민 무료 쉼터 마련해
면티, 양말목 등 재활용 공예품 전시
자조·봉사·취미 모임 등에 무료 대관
식물 나눔도, 1년간 1600여 명 찾아
“누구든 편히 이용하며 행복 느끼길”
성북구 정릉시장 입구에서 5분 정도 걷다 보면 다리 넘어 왼편 빨간 건물 2층의 엄청 큰 간판이 눈에 띈다. ‘H.O.M in 정릉, 정릉천 별똥대’라는 글씨에 작은 꽃과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입구 오른편엔 위아래로 사각형 작은 칠판 두 개가 있고, 위 칠판엔 분필로 ‘주민 공동의 집’ 운영시간이 적혀 있다. 왼편엔 ‘성북형 청소년 일상 안전 공간’ 현판이 있다.
이곳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가 2020년부터 운영해온 주민 무료 쉼터다. ‘홈(H.O.M, House of the Maria) 인 정릉’에서는 주민 누구든 와서 쉬고 갈 수 있고 원하면 더치커피, 수제 과일청 등의 음료도 마실 수 있다. “이용자들이 기부함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 임시로 만들었어요.” 지난 16일 오전 최옥숙(63) 수녀가 약탕기 재활용 통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는 첫해 8월부터 카페 운영을 맡아왔다. “요즘은 투명한 박스로 기부함을 만들라는 요청들이 있어 바꾸려 준비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카페 안쪽 벽에 걸린 ‘성북 100인 선물전’ 펼침막과 커피 봉지를 재활용한 걸이형 화분 70여 개가 눈길을 끈다. 투명 페트병 재활용 화분의 식물, 면 티셔츠·양말목 등의 재활용 공예품들이 창가에 아기자기하게 전시돼 있다. 창문엔 ‘쉼, 멈춤, 물음? 깨달음!’ ‘모든 것이 가능한-지금, 여기’라는 글귀가 써졌다. 창 아래로 정릉천과 시장이 내려다보인다.
카페 안쪽 벽에 걸린 ‘성북 100인 선물전’ 펼침막과 커피 봉지를 재활용한 걸이형 화분 70여 개가 눈길을 끈다. 투명 페트병 재활용 화분의 식물, 면 티셔츠·양말목 등의 재활용 공예품들이 창가에 아기자기하게 전시돼 있다. 창문엔 ‘쉼, 멈춤, 물음? 깨달음!’ ‘모든 것이 가능한-지금, 여기’라는 글귀가 써졌다. 창 아래로 정릉천과 시장이 내려다보인다.
성모수도회는 지역에 쓰임이 되고 싶은 마음에 주민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정릉3동에 자리 잡은 지 50여 년이 지났지만, 그간 수도회 담 넘어 이웃과의 나눔은 부족했다는 빚진 마음이 있었다. 이웃 수도회가 미혼모 자립을 위해 운영해오던 카페 ‘엘브로떼’ 인수를 제안해왔을 때 깊이 고민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 달 동안 숙고한 끝에 인수하기로 뜻을 모았다. 공부방과 강북 평화의 집 운영에 참여했던 그도 인수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지역을 위해 수도회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최 수녀는 말했다.
공간 운영 방향을 정하기에 앞서 지역의 목소리를 들었다. 상인회를 찾아가고, 정릉천 중심의 마을 활동가들을 만났다. 주민이 쉼과 창작을 할 수 있고, 일상에서 재활용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사람과 지구를 돌보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방향을 잡았다. 정릉천 수질 모니터링을 정기적으로 하는 주민네트워크 모임 ‘정릉천별똥대’의 아지트 역할도 맡았다. 2014년부터 정기적으로 정릉천변에서 펼쳐온 마을 장터 ‘개울장’에서 솜씨 좋은 수녀들이 만든 꽃차, 수제품 등을 판매해 운영비도 보탤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코로나19 장기화의 여파를 이곳도 비켜 갈 수는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문 닫고 열기를 여러 차례 하면서 계획대로 운영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역의 자조, 봉사, 취미 소모임에 공간을 빌려주고, 재활용 화분 나눔 등의 활동으로 그나마 버텨나가고 있다. 그는 “계획했던 활동을 많이 못했지만, 지역의 활동가 등 좋은 이웃을 많이 만난 것은 큰 자산이다”라고 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 해 주민 1600여 명이 ‘홈 인 정릉’을 다녀갔다. 주중에는 중장년과 청년들이, 주말에는 어린아이 손잡고 젊은 부부들이 주로 찾는다. 가끔 혼자 오는 청년 가운데 고민을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우리 공간이 보탬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쓰임이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최 수녀는 말했다.
주민을 위한 공간을 운영하며 그가 처음 해보는 활동도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정릉3동 주민자치회에 가입해 지난해부터 마을지키미 분과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직 서먹하고 낯설지만, 쓰레기 문제 등 이웃의 목소리를 분과회의 때 전달하는 작은 역할을 조금씩 해가고 있단다. 그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이웃들을 만날 수 있는 게 참 좋다”고 했다.
운영 1주년을 맞아 나눔 행사를 기획했다. 지난 1월 지역 활동가들과 함께 바자회를 열었다. 정릉천변 마을 공유공간들(청년살이발전소, 청년밥상 문간, (사)대한뇌종양협회 재활용매장 ‘아크’ 등)이 참여했다. ‘성북 100인 선물전’으로 콘셉트를 정하고 기부자 100여 명의 기증품을 판매해 400만원의 수익금이 생겼다. 대한뇌종양협회에 소아암 환우 후원금으로 전달했다. 그는 “혼자였으면 못했을 건데, 지역 활동가들이 함께해 재밌게 해낼 수 있었다”고 했다.
최 수녀는 ‘천천히’라는 말을 즐겨 쓴다. 지역 활동을 하면서 물 흐르듯 흘러가며 역할을 찾아가는 걸 배웠단다.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걸 저를 통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인으로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가려 한다”며 “이웃들 누구든 이곳에서 편히 쉬며 행복을 느끼길 바란다”고 웃으며 말했다.
글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