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세대격차도 ‘책 친구’ 되니 좁혀졌어요”

문집 ‘우리들은 꽃갈피’ 함께 펴낸 성북구 정릉3동 어르신·국민대생 14명

등록 : 2022-07-0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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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3동 거주 어르신 8명과 국민대 행정학과 ‘지역발전론’ 꽃갈피 팀원 6명이 지난 5월 책을 읽으며 어르신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글을 쓰는 ‘세대 합작 책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진은 6월16일 정릉3동 주민센터에 모여 문집을 들고 있는 모습.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김유진·김근보·이형규·박찬수·천혜정씨, 김송자·김원이 할머니, 정예은씨.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국민대 행정학과 프로젝트 수업 팀

5월 세대 합작 책 친구 만들기 추진

꽃 활용, 어르신 8명과 일대일 매칭

책 읽고 추억 나누며 시·편지 등 써

“서로를 알고 배우는 즐거운 경험”

“어르신들과 책을 함께 읽고 얘기를 나누며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국민대 행정학과 ‘지역발전론’ 수업의 꽃갈피 팀은 지난 5월 세대 합작 책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를 했다. 6명의 팀원은 주마다 1~2시간, 4차례 성북구 정릉3동 주민센터를 찾았다. 동 주민센터의 지원으로 참여 어르신을 모으고, 활동 결과물을 문집으로 내줄 지역 출판사와도 이어졌다. 지난 6월 팀원들과 8명의 어르신이 쓴 시, 편지 등을 모은 문집 <우리들은 꽃갈피>가 나왔고, 팀원들이 낭송한 시디(CD)도 부록으로 담겼다.


6월16일 꽃갈피 팀원(김근보, 김유진, 박찬수, 이형규, 정예은, 천혜정)들과 어르신 2명(김원이, 김송자)이 정릉3동 주민센터에서 <서울&>과 만나 활동 과정과 소감을 나눴다. 참여한 팀원들은 한결같이 “애정을 갖고 열심히 참여했다”고 입 모아 말했다.

조장을 맡은 천혜정씨는 아이디어 제안자이다. 그는 지난해 교내 캡스톤 디자인(지역사회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경진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은 아이디어를 프로젝트 주제로 연결했다.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꽃 이름을 활용했다. 팀명을 시인 김소월의 ‘산유화’ 시구를 빌려 ‘꽃청춘, 갈 봄 여름 없이 피어나라’로 정하고, 꽃갈피로 줄여 썼다.

꽃이나 풀 이름(목련, 수선화, 황매화, 튤립, 장미, 애기똥풀, 카네이션, 코스모스)을 하나씩 정해 두 번째 모임 때부터 어르신과 일대일로 매칭을 했다. ‘어른 목련, 어린 목련’ 등으로 서로를 부르며 서먹했던 분위기가 금세 부드러워졌다. 시니어 그림책 읽기는 팀원들이 역할을 나눠 음성 녹음을 해, 어르신들이 책과 가까워지도록 도왔다. 큰 활자체로 그림책 글씨를 따로 써 보여주기도 했다.

어른 꽃은 자신의 추억을 시나 편지, 일기로 쓰고, 어린 꽃은 그에 답글을 달았다. 어린 꽃들은 어른 꽃 마음도 자신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형규씨는 “나이 많은 어른들도 소녀같이 여리고, 한 분 한 분마다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어른 세대와 소통을 잘하지 못했던 천혜정씨는 “나이만 다를 뿐이고 느끼는 감정이나 바라는 소망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정예은씨는 “부모, 자식, 여자 등 여러 입장에서 다양한 마음이 있는데 힘든 삶을 꿋꿋하게 살아내는 게 멋있어 보였다”고 했다.

어르신들과 얘기를 나누며 팀원들은 스스로 변화를 느꼈다. 박찬수씨는 이번 활동을 하면서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생겼다. 박씨는 “사람마다 그만의 이야기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소통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며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어린 수선화인 김유진씨는 “어른 수선화가 정원을 가꾸며 활기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좋아하는 걸 더 열심히 찾으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무기력한 상태를 겪으며 갈 길을 잃었던 적이 있는 김씨는 “어른 수선화가 정원 꾸미기 이야기를 하며 눈이 반짝반짝해지는 모습을 보며 같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형규씨는 “어른 목련과 함께하면서 힘들다기보다 힐링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어른 튤립인 김원이(72) 할머니는 처음엔 ‘할 말이 없다. 쓸 말이 없다. 그림 못 그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두 번째 만남부터 재밌어하며 누구보다도 즐겁게 참여했다. 힘들었던 인생살이를 되돌아보며 스스로 수고했다 위로하는 시를 썼고, 아끼는 장독대를 그림으로 그렸다. “마음속 어딘가에 새싹이 돋는 것 같았다”며 “에너지를 많이 받아 우울감도 줄고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어르신 일자리 일과 병행했던 어른 카네이션인 김송자(79) 할머니는 “지각할지언정 결석은 하지 않았다”며 “어린 카네이션이 실망할 것 같아 빠질 수 없었다”고 했다. 다시 소녀가 된 것 같아 설레기도 했단다.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라는 시에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미안함을 담았다. 용돈 한 번 제대로 못 드린 게 한스럽고, 어머니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알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다. “부모님 생전에 못했던 걸 생각나는 대로 몇 줄 적었는데, 어린 카네이션이 귀담아들어줘 고마웠다”며 “이런 프로그램이 있으면 또 참여하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꽃갈피 팀은 세대 합작 책 친구 프로젝트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길 기대하는 마음에 이번에 만든 문집을 복지관, 지역 도서관, 동 주민센터 등에 비치할 계획이다. 마을 이야기로 기록될 수 있게 ‘성북마을 아카이브’에도 올릴 예정이다. 김근보씨는 “집에만 주로 계시는 우리 할머니도 젊은 세대와 책 친구가 되는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사업이 스마트빌리지 사업처럼 성북구 어르신들을 위한 행정서비스로 이어졌으면 하는 기대도 있다. 스마트빌리지는 국민대생이 지역 어르신을 대상으로 일대일 맞춤형 스마트폰 교육을 하는 사업이다. 천혜정씨는 “세대 격차를 줄이고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프로젝트도 함께 퍼져갔으면 한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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