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망우리공원에서 ‘한용운’을 만나 역사 속으로 걸어가다

㊳ 중랑구3 : 용마산과 망우산 숲길

등록 : 2021-11-25 15:02

크게 작게

용마산으로 올라가는 산길 단풍숲

입동 벌써 지났는데, 단풍은 아직 절정

붉은 잎 사이 지나 역사 인물 묻힌 곳

조봉암, 방정환 선생 등의 묘비명 보며

시 한 수, 글 한 줄에 시름 잠시 잊는다

입동이 벌써 지났으니 겨울인데, 산기슭 ‘단풍숲’은 마지막 절정이다. 그렇게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용마산과 망우산을 걸었다. 그 숲에 든 사람들도 단풍으로 물들었다. 용마산 ‘단풍숲’을 지나 정상으로 가는 길, 숲 밖에서 숲을 굽어보았다. 망우산 치유의 숲은 산의 이름처럼 온갖 시름을 잊게 하는 곳이다. 망우리공원에 묻힌 역사 인물들을 만나고 고즈넉한 숲길을 걸었다.

중랑구 세 산에 전해오는 전설과 역사


깊은 산 울창한 숲에는 전설이 많다. 중랑구에서 이름 있는 용마산, 망우산, 봉화산에도 전설이 있다.

중랑구 남동쪽에 있는 용마산에는 아기장수 전설이 전해진다. 삼국시대 백제와 고구려의 경계였던 용마산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 기운이 범상치 않아 장차 큰 장수가 될 재목이라 여기고 아기를 죽였다. 아이가 죽자 용마산에 깃들어 있던 용마가 나와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아마도 국경의 삼엄함이 늘 존재했던 곳이기 때문에 생긴 전설이 아닐까? 조선시대에는 용마산 아래 말 목장이 있었는데, 용마(힘이 세고 잘 달리는 훌륭한 말)가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산에 용마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용마산과 망우산을 잇는 깔딱고개 서쪽 산기슭 사가정공원에 이를 상징하는 말 조형물들이 있다.

중랑구 북쪽에 자리 잡은 봉화산에는 애동지 전설이 내려온다. 옛날에 봉화산 남쪽 기슭 현재 성덕사 터에서 나무하던 나무꾼이 이상한 경험을 했다. 나무를 베어도 베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나무꾼은 그 자리에서 한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그 터에 전염병으로 죽은 아이들을 묻을 때 숨이 붙어 있는 아이들도 함께 묻었다며 그 원한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다시 전염병이 돌면 또 아이들이 죽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매년 정월 보름에 짚으로 만든 인형에 아이들 이름을 써서 나무에 걸어놓을 것과 애동지(동지가 동짓달 초순에 드는 때)에 팥죽을 쑤어 먹지 말아야 아이들이 무사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스님의 말을 따른 집 아이들은 살았고 그렇지 않은 집 아이들은 죽었다고 한다.

망우산 망우리공원 순환도로 옆에 있는 만해 한용운과 부인의 묘

용마산 북쪽 망우산에는 일제강점기에 조성한 공동묘지가 있다. 지금은 망우리공원으로 꾸며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5㎞ 정도 되는 망우리공원 순환 산책로 주변에 만해 한용운, 소파 방정환, 시인 박인환, 소설가 최학송,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인 문일평,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인 조봉암, 의학자이자 국문학자로 많은 일을 한 지석영 등의 묘가 있다.

산기슭 단풍숲을 지나 숲 밖에서 숲을 보다

용마산과 망우산을 걷기로 한 날 미세먼지가 자욱했다. 눈에서 멀어질수록 풍경이 희미해지다가 아예 지워졌다. 그렇게 도착한 용마산 기슭 용암사, 용마의 전설을 찾아 산으로 들어가는 길 첫머리는 용암사였다.

용마산은 광진구와 중랑구, 경기도 구리시의 경계가 만나는 곳이다. 출발 지점인 용암사는 광진구였다. 용암사 옆 작은 공원 이름이 뻥튀기공원이다. 이름이 재미있어 여기저기 알아보고 공원을 오가는 사람들에게도 물어봤는데, 그 유래를 찾지 못했다. 다만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것도 확실치는 않았다.

뻥튀기공원은 용마산 기슭이자 마을 뒷동산이다. 뻥튀기공원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고 논다. 마을 아이들이 뒷동산이며 골목길을 누비고 놀던 1970년대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할머니들은 양지바른 곳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 아이들과 할머니들을 품은 배경이 단풍이 숲을 이룬 ‘단풍숲’이다. ‘단풍숲’ 사이로 난 길로 걷는다. 빨갛고 노랗게 물든 ‘단풍숲’이 머리 위를 감싼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단풍으로 물들 것 같다. 목청껏 소리치고 노는 아이들 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길은 산으로 이어진다.

물 한 병 들고 편한 차림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아마 산 아랫마을 사람일 것이다. 오르막 계단을 힘들게 올라가는 엄마의 보폭에 맞춰 걷는 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의 얼굴에 ‘단풍숲’ 고운 빛이 물든다. ‘단풍숲’이 끝나고 소나무 숲이 이어진다. 소나무 사이에 잎 떨군 빈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보인다. 계단길이 끝날 무렵 팔각정이 나왔다. 하늘이 열리고 시야가 터진다. 미세먼지에 먼 데 풍경이 지워졌다. 희미한 윤곽, 어렴풋한 형체만 보이는 도시 풍경이 답답하다.

팔각정에서 용마산 정상 쪽으로 향했다. 키 작은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전망대에 섰다. 숲 밖에서 숲을 굽어본다. 동쪽에 아차산이 육중하게 보인다. 그 능선은 북으로 치닫는다. 한 줄기는 망우산 쪽으로 이어지고 한 줄기는 서쪽으로 머리를 틀어 몰아치다 용마산을 세웠다. 그 형국 자체가 용마였다.

숲에 묻힌 산 같은 사람들 이야기

망우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여러 곳인데, 서일대 뒤쪽으로 오르는 산길을 택했다. 산길 초입부터 갈빛으로 물든 거대한 나무와 붉은 단풍이 어울렸다. 이미 잎을 다 떨군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서로 얽어 겨울을 채비하고 있었다. 낙엽 깔린 오솔길이 폭신하다. 오가는 사람 하나 없어 깊은 가을로 들어가는 길이 고즈넉하다. 데크길 옆 산비탈이 온통 갈색 마른 낙엽이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 낙엽 위에 길을 냈다. 사색의 길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망우산 망우리공원 순환도로 쪽으로 가는 길을 알리는 이정표를 따랐다. 그때야 사람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순환도로는 포장된 길이지만 숲이 좋아 걷기에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망우산 중턱을 한 바퀴 도는 순환도로 주변 숲에는 역사에 이름이 남은 인물들이 묻혀 있다.

망우리공원 순환도로 사색의 길을 걷다가 사잇길로 들어가면 치유의 숲이 나온다.

망우리공원 안내판에서 본, 순환도로에서 숲으로 이어지는 사잇길로 들어갔다. 낙엽 쌓인 오솔길을 걸어 치유의 숲에 도착했다. 숲속 넓은 터에 앙상한 나무가 빼곡하다. 숲 바닥에 설치된 시설물에 ‘한 잔의 술과 한 편의 시는 하루의 망우(忘憂)이다’라는 조선시대 어떤 사람이 남긴 글이 적혀 있다. 온갖 시름을 잊게 하는 한 편의 시와 한 잔의 술, 망우산의 가을 숲도 그러하다.

망우리공원 순환도로 옆에 있는 소파 방정환의 묘비 앞면

치유의 숲을 나오면 숲으로 들어왔던 반대쪽 순환도로다. 북쪽으로 걷는다. 그 길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의 묘가 있다. 처음 만난 건 1899년에 태어나 1959년에 세상을 떠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조봉암의 묘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것은 인류가 공통으로 가진 본성으로서, 이 같은 본성은 남이 꺾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스스로 자기 민족의 자존성을 억제하려 하여도 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만해 한용운의 글이 새겨진 비석 앞 숲에는 만해 한용운과 그의 부인이 나란히 잠들어 있다. 소파 방정환의 묘도 이곳에 있다. 숲속 방정환의 묘비에 ‘童心如仙’(동심여선)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어린이 마음은 천사와 같다는 뜻이다.

치유의 숲에 있는 설치물

산기슭 비탈에 촘촘하게 선 나무들이 서로를 엮고 있는 순환도로를 따라 망우리공원 정문으로 걷는다. 공사 때문에 출입을 통제하는 통제선 뒤 숲속에는 시인 박인환의 묘가 있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목마와 숙녀’ 중에서) 박인환의 묘가 있는 숲으로 가는 길 입구에 세워진 그의 시비에 적힌 시의 한 대목이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