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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를 만나고 그대를 사랑해 볼래요?

쌍문동 둘리뮤지엄, 성내동 강풀 만화거리…마을에 들어온 만화, 세대 간 소통 강화에 도움

등록 : 2016-09-2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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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 만화거리 제안자인 강동구청 이동욱 주무관이 만화 속 귀가 장면을 그린 벽화 옆에서 환한 얼굴로 어서 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엄마와 자녀 소통의 다리를 놓다

쌍문동 둘리뮤지엄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알 수 없는 존재는? 김수정 작가의 만화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주인공 ‘둘리’다. 만화는 둘리가 빙하를 타고 어느 개천으로 떠내려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때 영희와 철수가 둘리를 발견하는데, 바로 도봉구 쌍문동의 우이천이다. 김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던 쌍문동을 토대로 둘리가 살게 된 고길동 집을 그렸다고 한다. 둘리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쌍문동에 구립 ‘둘리뮤지엄’이 들어선 계기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둘리뮤지엄은 움직임의 공간이다. 조용한 감상보다는 오감을 활용하는 놀이가 어울리는 곳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인 뮤지엄은 ‘얼음별 대모험’ ‘고길동 아마존 표류기’ ‘둘리와 친구들의 저승행차’ 등 층마다 다른 주제로 꾸며놓았다. ‘아기공룡둘리’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에피소드를 따온 것이다. “호이! 호이!”를 외쳐야 불이 들어오는 나무, 방방 뛰어야 소리가 나는 바닥 등 어느 한 곳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둘리 귀여워!” 지난 13일 뮤지엄에서는 세 살배기 윤지가 고사리 같은 손에 색연필을 쥐고 둘리 여자친구 ‘공실이’를 칠하고 있었다. 어떻게 어린 윤지가 둘리를 아는 걸까. “최근 도봉구로 이사를 왔는데 동네 여기저기에 둘리가 많이 보이더라고요. 오가면서 ‘저게 둘리야’ 하고 말해 줬더니 아네요.” 엄마 김원경(36) 씨는 둘리를 보고 자랐다. 지금도 둘리를 보면 정겹다.

김 씨처럼 둘리뮤지엄에는 30~40대 관람객들이 적지 않다. 둘리를 보고 꿈과 상상력을 키운 세대들이다. 데이트를 하는 20대 커플의 발길도 이어진다. 도봉구가 ‘문화도시 조성’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둘리뮤지엄을 만든 것도 남녀노소에게 친근한 캐릭터를 활용해 도시를 바꾸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우이천에 둘리의 모험기를 담은 420m 벽화 작업이 끝나면 숭미초등학교부터 우이천까지를 둘리 테마거리로 만들 계획이다. 4호선 쌍문역은 커다란 둘리 조형물과 포토존을 마련해 둘리 테마역으로 꾸몄다.

“둘리를 처음 보는 아이들도 특유의 귀여움과 친근함 덕에 금세 둘리를 받아들입니다. 부모는 둘리를 경험하며 자란 세대니 아이에게 둘리를 알려 주며 함께 즐기고 가시죠.” 둘리뮤지엄의 박민경 학예사는 세대가 만화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날마다 보는 것이 큰 보람이라고 했다.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둘리뮤지엄을 찾은 아이들이 둘리와 또치, 도우너가 악당을 물리치는 게임을 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강풀 만화 49개 장면으로 골목을 꾸며


성내동 강풀 만화거리

“2012년 신혼여행으로 이탈리아 피렌체를 갔는데 거리 곳곳에 이탈리아 신화와 관련된 조각, 이야기가 그려진 벽화가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강동구도 스토리텔링으로 동네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강동구청 도시계획과 이동욱(36) 주무관의 아이디어는 강동구 창의구정 발표에서 금상을 받으며 2013년 현실이 됐다.

서울 지하철 5호선 강동역 4번 출구를 나와 3분쯤 걸으면 왼쪽으로 좁은 골목이 하나 나온다. 가정집 담벼락과 가게 모퉁이 등에 그려진 벽화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순정만화> 등으로 유명한 웹툰 작가 강풀의 그림들이다. 모두 49개 장면이 1㎞ 정도의 골목길을 수놓고 있다. ‘강풀 만화거리’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송이뿐 할머니가 손녀뻘인 동사무소 직원에게 차려 준 밥상 그림 앞에서 자연스레 발길이 멈춰진다. 고봉밥에 된장찌개, 김치 한 접시, 달걀부침 넉 장, 김으로 차려져 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고 가요.” 실제 웹툰에 나온 밥상 그림과 대사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밥은 먹었니? 그래! 잘했다! 잘 돌아왔어!” <바보>의 주인공 지호가 유학 중 갑자기 연락도 없이 고향 집을 찾아오는 장면은 초록색 철문 옆에 있어 생생함을 더한다. 지호의 뒷모습은 쓸쓸한 우리의 일상이지만, 지호를 반기는 가족의 인사는 따뜻한 위로다.

아이디어를 낸 이 주무관은 강풀 만화의 팬이었다고 한다. 강풀 만화의 특징인 휴머니즘, 세대를 아우르는 감성 그리고 강동구가 작품의 배경이 된다는 점에 끌렸다. 강풀 작가의 작업실 또한 강동구에 있다. 이 주무관은 “이 공간을 상업화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주민들이 만화 벽화를 보며 마음의 여유와 일상에서 힐링을 얻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지구단위 계획으로 묶여 있어 개발도 철거도 어려운 성내2동 주택가를 만화거리로 선정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블로그에서 이런 곳이 있다고 해서 왔어요. 혼자 왔는데 반겨 주는 내용의 벽화가 많아서 힐링이 되네요.” 스마트폰 하나만 친구 삼아 방문한 최송아(27) 씨는 경기도 주민이다.

서울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옛 간판의 이발소도, 정겨운 분식을 파는 떡볶이집도 만화거리가 생기면서 자연스레 동네에 녹아들었다. 이제는 주민들이 페인트 통을 들고나와 자기 집 담장에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혹시나 방문객이 많아져 주민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이 동네가 골목이 좁고 많아서 음침했어. 그런데 벽화를 그리고부터 밝아져서 좋아요. 사람 사는 거 알고 밖에서만 조용히 보고 가니 크게 불편하지는 않아.” 벽화와 함께 살아가는 한 할아버지가 말했다.

주민에게는 동네에 대한 깊은 애정을,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는 공간, 이곳이 강풀 만화거리다.

정고운 기자 nimok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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