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엄마의 베를린살이

베를린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두 번 온다

등록 : 2016-12-1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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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럽의 유명한 전설 한 편을 소개해볼까 한다.

옛날에 가난한 한 아버지에게 딸이 셋 있었는데 집안이 너무 가난한 나머지 결혼을 시킬 수가 없자 아버지는 딸 셋을 모두 매춘부로 내놓기로 마음먹었다. 이 소식을 들은 동네 교회의 주교는 그날부터 매일 밤 딸들의 방을 몰래 찾아가 창문으로 금 덩어리 하나씩을 넣어주기 시작했다. 삼 일째 되던 날 밤 주교는 결국 아버지의 눈에 뜨이게 되었다. 아버지가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묻자 그는 “니콜라우스”라 대답했다. 성인 니콜라우스(그림)의 전설이다.

성 니콜라우스는 4세기 초 미라 지방, 오늘날의 터키 안탈리아 근방에서 활동했던 주교로, 상당한 유산을 물려받아 부유했던 인물로 전해진다. 또 가난한 사람을 돕기 좋아하는 성품 덕에 오늘날까지 수많은 전설 속에 살아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니콜라우스라는 이름은 줄여서 클라우스 또는 니클라스라고도 한다. 뿐만 아니라 나라마다 발음과 철자가 달라서 성 니콜라우스는 언어에 따라 ‘Saint Nicholas’ ‘Sinterklaas’ 또는 ‘Santa Claus’가 되기도 한다. 지금쯤 몇몇 독자 분들께서는 무릎을 탁 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우리들의 산타클로스는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었다. 오늘날까지도 베를린에서는 그의 축일을 기념해 해마다 12월6일이면 니콜라우스를 대신해서 부모들이 밤에 몰래 아이들의 머리맡에 놓인 빨간 장화 속에 선물을 넣어놓곤 한다. 이 날은 ‘니콜라우스의 날’이라 한다.

16세기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거치며 ‘니콜라우스의 날’은 많은 지역에서 12월24일로 옮겨졌다. 가톨릭과는 달리 개신교에서는 성인들의 축일을 기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루터는 기쁨을 가지고 오시는 이는 아기 예수라고 강조했지만, 아무래도 손에 잡히는 기쁨을 포기할 수는 없었는지 사람들에게 니콜라우스는 잊히지 않았다.

이후 많은 시인과 작가와 예술가들에 의해 니콜라우스는 점차 환상 속 초상으로 변해갔다. 종교적 색채를 잃은 성직자의 엄숙한 제의는 우스꽝스러운 코트와 털모자가 되었고, 충실한 머슴 루프레히트의 자리는 코가 밝은 사슴 루돌프가 차지했다.

상업화 또한 필수 과정이었다. 온갖 반짝이는 것들과 깜박이는 것들로 치장한 산타클로스와 그의 친구들은 1930년대 초부터 코카콜라의 몽환적인 겨울 광고에 등장해 온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렇게 세기를 지나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으로 다시 독일 땅을 밟은 산타클로스는 북극에서 왔다는 숱한 소문 속에 ‘바이나흐츠만’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바이나흐츠만은 독일 전역에서 12월 24일을 즈음해 활약해왔는데, 최근 들어 상업화의 표상으로 간주되어 환영받지 못하는 곳이 해마다 늘고 있다.

진실이 구겨지기 시작하는 곳에서 환상은 피어난다. 허구는 또 다른 허구를 낳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젠가 환상에서 깨어나는 습성이 있다.

이재인 재독 프리랜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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