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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업과 청년 디자이너의 행복한 만남

기술자 경험과 디자이너 창의성 협업 통한 시너지 가능성 확인

등록 : 2016-12-15 17:05 수정 : 2016-12-1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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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 유니베라 사옥 마당에서 열린 ‘성수 소셜패션 공모전‘ 최종 심사를 겸한 런웨이 쇼. 대상을 수상한 청년 패션디자이너 강다은씨의 옷을 입은 모델들이 선보이고 있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해가 기운 성수동의 유니베라 사옥 마당에 화려한 조명이 커졌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런웨이에서 모델들의 워킹이 시작됐다. “예뻐요. 멋지다!” 런웨이 주변 객석에서 탄성과 응원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지난달 4일 열린 ‘성수 소셜패션 공모전’의 마지막 심사 모습이다.

여느 패션 공모전과는 달리 지역주민을 관객으로 초청한 성수 소셜패션 공모전은 청년 패션디자이너 강다은(24)씨에게도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런웨이 패션쇼에 올리는 꿈을 마침내 이룬데다 대상의 영예를 안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한 강씨는 그간 여러 패션 공모전에 참여했지만 본선이나 런웨이쇼 전 단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졸업 뒤 인턴으로 일하면서도 공모전 정보를 살피던 강씨에게 ‘성수 소셜패션 공모전’이 다가왔다. 이름은 낯설었지만 교육과정과 런웨이 패션쇼 구성에 마음이 끌렸다.

성수 소셜패션 공모전은 여느 공모전과 주제나 진행 방식이 다르다. ‘지역’을 주제로 내세운 공모전은 의류, 봉제, 신발, 가죽 등의 장인(소공인)들이 모여 있는 성수 지역의 특성을 패션디자인으로 담아내는 것이었다.

강씨를 비롯한 150여 팀이 출전해 지난 8월부터 3단계의 심사를 거쳤다. 참가자들은 대체로 신진 디자이너들이었다. 1단계에서 뽑힌 50개 팀원들은 소셜패션에 대해 특강을 들어야 했다. 특강은 패션디자인에 디자이너와 생산자의 협업, 친환경 소재 사용 등 사회적 가치를 담아야 하는 이유와 방식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다.

강씨도 패션현장학교 강의를 통해 대학 수업시간에 스쳐 들었던 소셜패션에 대해 콘셉트를 잡고, 스타일화를 보완해갈 수 있었다. 대학 때 성수 가죽 원부자재 시장을 둘러봤던 경험도 보탬이 됐다.

그는 대학 시절의 기억과 온라인에서 가죽제품 디자인을 살펴보면서 성수동에서 일하는 가죽 장인들의 작업 과정을 옷으로 표현해보려 했다. “심사위원들이 장인의 손가락 디테일이 인상적이고, 골무나 끈 모양 활용이 독창적이며, 전체적으로 조화롭다고 평가해주셨어요.”

그는 수작업하는 장인의 손, 골무, 연장주머니에 꽂힌 가위 등을 옷의 디테일로 활용했다. 가죽제품의 곡선과 손바느질 느낌을 살리기 위해 스티치선을 이미지로 넣었다. 구두끈 모양으로 위아래 옷을 이어 원피스처럼 보이게 하고 여러 겹으로 겹쳐 ‘레이어드 룩’도 연출해 대상을 거머쥘 수 있었다.


강씨는 대상 수상뿐 아니라 생산자와 협업해서 실물을 제작한 경험을 이번 공모전의 성과로 꼽는다. ‘디자이너와 생산자의 협업’을 강조한 점은 이번 공모전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봉제기술자들은 대체로 공모전 출품용 옷 제작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봉제공장이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제품을 만들어야 수익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디자이너가 패턴과 샘플을 제작해주더라도 봉제기술자와 소통하기가 쉽지 않다. 연령이나 경험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청년 패션디자이너들이 직접 패턴 작업을 하고 상품 제작만 봉제공장에 맡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공모전에선 디자인부터 봉제 작업까지 혼자서 다 해서 결과물을 제출했는데, 이번엔 시작부터 봉제기술자들과 전문가의 멘토링을 받았어요.”

강다은 패션디자이너와 황호삼 패턴사가 장안동의 한 봉제공장에서 옷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강씨는 스타일화를 토대로 4벌을 실제 만들었고, 이 가운데 절반을 패턴사, 샘플사와 협업했다. 처음엔 협업이 쉽지 않았다.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에겐 50대의봉제기술자들은 대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샘플사는 디자인이 복잡해 만들기 힘들다며 그가 그린 스타일화를 보고 한숨을 내 쉬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봉제기술자들은 밥 먹고 가라고 챙겨주기도 하면서 바느질 방법 등 조언도 많이 해줬다. “코트 원단이 두꺼워 겹겹이 하며 너무 부해 보인다고 해 시접 없이 박는 등 기술적인 부분은 샘플 선생님 의견을 따르면서 옷이 더 잘 만들어졌어요.” 서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생긴 신뢰는, 성수 소셜패션 런웨이 무대에 공모전 멘토링으로 참여했던 봉제 장인들이 시상자로 참여하는 성과로도 이어졌다.

이번 공모전에서 최종으로 뽑힌 12개 팀은 모두 5000만원의 패션디딤돌 지원금을 받았다. 대상을 받은 강씨는 내년 서울패션위크에 참여할 수 있는 특전도 받았다. 그러나 강씨는 무엇보다 어려운 봉제업체 현실을 피부로 느꼈고, 이 어려움을 함께 돌파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을 성과로 꼽는다. “공모전 참가자들 가운데 관심있는 디자이너들이 모여 지원금을 활용해 공동창작실, 공동숍 등을 함께 만들어가려 해요.”

봉제업은 일감이 꾸준하지 않고 한꺼번에 몰리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일이 몰릴 때는 기술자를 구하기조차 어렵다. 강씨는 이들에게 꾸준히 일감이 이어지는 체계가 만들어지며 좋겠다고 말한다. “이번 공모전 참여 디자이너들이 지역 봉제업체에 꾸준히 일감을 줄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이 될 수 있기를 바래요.” 그리고 봉제기술자에 대한 대우도 나아졌으면 한다. “보통 디자이너 이름만 기억되는데, 옷이 나오기까지 디자이너만큼 봉제기술자들의 역할이 크잖아요. 이들의 이름도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강씨에게 소셜패션은 소통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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