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속아달라는 탄핵답변서

폄우정완( 愚訂頑) 돌침 폄, 어리석을 우, 바로잡을 정, 아둔할(완고할) 완

등록 : 2016-12-2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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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두 자 ‘폄우’는 “돌침을 놓아 어리석음을 깨뜨린다”는 말이고, 뒤의 ‘정완’은 “아둔한 생각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합쳐서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아둔함을 바로잡는다’는 사자성어가 되었다.

성리학 태동의 주역 중 한 사람인 중국 북송 시대의 대유학자 장재(張載)는 만년에 고향인 횡거진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그가 서원 동쪽 창에 걸어놓은 글의 제목이 폄우이고, 서쪽 창에 건 글의 제목이 정완이었다. 그래서 폄우는 동명(東銘), 정완은 서명(西銘)이란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서명은 후대 주자학자들이 성리학의 요체를 담았다며 경전으로 받들 만큼 유명하나 난해한 편이고, 동명은 공부하는 자의 자기 수양을 독려하는 글인 만큼 그리 어렵지 않아 일반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창덕궁 후원에 가보면 존덕정 옆에 있는 정자 이름이 폄우사이다. 요절하지 않고 즉위했다면 영명한 군주가 되었을 순조의 큰아들 효명세자가 즐겨 머물며 책을 읽던 곳이다. 폄우는 왕자들도 자계(自戒,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함)로 삼는 글이었던 것이다. <고문진보>에 실려 있는 동명편을 알기 쉽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농담으로 하는 말도 자기 생각에서 나온 것이고, 장난질도 자기 계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말로 나오고 몸으로 드러났는데 본심이 아니었다고 한들, (그것이) 밝혀지지도 않을 일이고, 남들이 의심하지 않기를 바래 본들, 그렇게 될 수도 없는 일이다. 잘못된 말이나 행동은 진심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잘못 나온 말, 잘못 이뤄진 행동을 자기가 당연히 할 것을 한 것이라 말하면 자기를 속이는 짓이며, 남들에게도 이를 따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마저 속이는 짓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마음에서 나온 말을 농담이었다고 그 허물을 돌리거나, 자기의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 행동을 자기의 진정인 양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 너에게서 나오는 것을 경계할 줄 모르고, 도리어 그 허물을 너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으로 돌리는 것은, 오만을 자라게 하고 비행(非行, 잘못되거나 그릇된 행위)을 이루게 하는 짓이다. 그릇됨이 누가 이보다 더 심할 수 있겠느냐.”

굳이 전문을 소개하는 것은 청와대의 변호사들이 헌재에 보낸 탄핵답변서를 보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이다. 혹자는 희언(戱言, 웃음거리로 하는 실없는 말)도 희동(戱動)도 없었고, 설사 있었다 해도 자기 본심(心)도 꾀(謀)도 아니었다며 스스로를 속이고, 또한 남에게도 속아달라고 한다.

이인우 <서울&> 콘텐츠디렉터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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