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인간사, 회자정리

역려과객(逆旅過客) 마중할 역, 나그네 려, 지날 과, 손님 객

등록 : 2018-06-0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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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여관과 같고 시간은 영원을 스쳐 가는 나그네와 같다’는 말이다. 이 사자성어는 이백이 쓴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 봄날 밤 도리원에서 연 잔치의 서문)의 첫 문장, ‘부천지자 만물지역려 광음자 백대지과객’(夫天地者 萬物之逆旅 光陰者 百代之過客)에서 딴 것이다. “무릇 이 세상은 만물이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이요, 시간이란 것은 긴 세월을 거쳐 지나가는 길손”이다. 광대무변의 우주 속에서 천하 만물이 생멸하는 공간을 여관으로, 흐르는 시간을 영원 속을 여행하는 나그네로 삼아 짧은 인생의 덧없음을 장대한 스케일로 묘사하고 있다. <고문진보>에 수록돼 있어 우리 선조들도 예부터 즐겨 읊었다. 길지 않은 글이니 내친김에 전문을 소개한다.

무릇 세상이란 만물이 머물다 가는 여관이요, 우리가 살다가는 시간은 영원 속을 잠깐 지나가는 나그네이다/ 떠가는 인생, 꿈과 같으니 즐거움을 나눌 기회가 얼마나 되랴? 옛사람들이 등촉을 돋워 밤에도 노닌 데는 참으로 이유가 있었도다/ 하물며 따스한 봄날이 나를 아지랑이 피는 경치로 초대하고, 대자연이 나에게 글 짓는 재주를 주었으니/ 복사꽃, 오얏꽃 향기로운 동산에 모여 형제들의 즐거운 축제를 위해 글을 짓노라/ 여러 아우 빼어나기가 모두 사혜련(남조시대의 문장가)이지만, 내가 읊는 노래만이 강락(사영운, 사혜련의 사촌형으로 이백이 존숭한 시인)에 견줘 부끄럽구나/ 그윽한 경치 구경 끝이 없고 고상한 대화는 더욱 맑아진다/ 옥 같은 자리 깔고 꽃 사이에 앉아서 서로 술잔을 깃털처럼 날리며 달 아래 취하니/ 오늘 같은 날 좋은 시가 없다면 무엇으로 이 아취 어린 심정을 펼칠 수 있으리/ 형제들이여, 만약 시를 한 수 짓지 못하면 벌주 석 잔(金谷酒數)을 마시게 하리라.

금곡주수(金谷酒數)는 석숭이란 대부호가 금곡이란 별장에서 여는 시회 때, 정해진 시간에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 석 잔을 마시게 한 고사에서 유래한다. ‘역려’는 <장자> 산목편에 이미 나온다. 역참은 관리의 이동, 사절의 왕래 때 행렬이 쉬고 말을 교체하는 나라 시설이었다. 이때 역참 관리들은 사절이나 귀빈을 멀리까지 나가서 마중했다. 이 행위가 역(逆)이다. 역(驛)으로 오는 행렬(旅)을 거슬러 가서(逆) 맞이하는 ‘역려’에서 여관의 뜻이 파생했다. 무릇 인간사 회자정리, ‘역려과객’을 끝으로 ‘잠깐 고사성어’ 연재를 마친다.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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