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사랑 잃은 이에게 봄은 차라리 지옥

춘래불사춘

등록 : 2016-04-21 16:16 수정 : 2016-05-2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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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 춘, 올 래, 아니 불, 비슷할 사, 봄 춘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시대나 자신이 처한 상황이 겉으로 드러난 것만큼 실제로는 호전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주로 쓰인다. 그러나 원래 내용은 조금 다르다. 중국 한나라 원제 때 흉노를 회유하려는 조정의 정략에 따라 궁중에서 뽑혀 흉노 왕에게 시집간 왕소군(王昭君)이 장안을 그리며 읊었다는 시에서 유래했다.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胡地無花草)/봄이 와도 봄이 아니로구나(春來不似春).

현대에 와서는 정치 사회적 의미로도 인용됐다. 대표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민주화 시기에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체 가장한 권위주의 독재정권을 비꼬며 하는 말이기도 했다.  

낭만적으로는 사랑을 잃은 연인이 외로운 봄을 한탄할 때 쓰기도 한다. 그대가 없는 봄, 꽃이 피어도 봄 같지 않구나, 이런 식이다. 봄이 와도 봄이 아닌 연인의 마음을 읊은 절창에는 당나라 때 유명한 여류 시인 설도(薛濤)의 춘망사(春望詞) 4수가 있다.  

花開不同賞(화개불동상)/花落不同悲(화락불동비)/欲問相思處(욕문상사처)/花開花落時(화개화락시). 꽃 피어도 함께 즐길 수 없고/꽃 져도 함께 슬퍼할 수 없네/님이여 어디 계신가/꽃 피고 꽃 지는 때에.  

설도는 몰락한 명문가의 딸로 고아가 되는 바람에 악기(樂妓)가 되었다. 뛰어난 재능과 미모로 당대의 명사, 시인, 서예가들과 교유했다. 그중에 연하의 천재 시인 원진을 사랑하여 이 시를 지었다. 그녀는 원래 바람둥이인 원진이 떠나 버리자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춘망사 제3수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유명하다. 민족 시인 김소월의 스승이었던 시인 김억이 번역하고, 작곡가 김성태가 곡을 붙인 가곡 <동심초>가 있어서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風花日將老(풍화일장로)/佳期猶渺渺(가기유묘묘)/不結同心人(불결동심인)/空結同心草(공결동심초).  

원시도 기가 막히지만 김억의 번역 또한 그에 못지않다.  

춘망사 마지막 수는 그리움에 사무친 연인의 봄을 슬프게 노래한다. 사랑을 잃은 연인에게 봄의 절정은 차라리 지옥이다.  

那堪花滿枝(나감화만지)/飜作兩相思(번작량상사)/玉箸垂朝鏡(옥저수조경)/春風知不知(춘풍지불지)  

어쩔거나 가지 가득한 저 꽃/날리어 흩어지면 그리움되고 말 것을/아침 거울 위에 드리운 눈물/봄바람은 아는지 모르는지.

이인우 <서울&>콘텐츠디렉터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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