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동호의 서법은 오늘도 언론의 정도를 묻는다

[잠깐! 고사성어] 동호지필

등록 : 2016-05-04 15:28 수정 : 2016-05-2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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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지필(董狐之筆) 감독할 동, 여우 호, 갈 지, 붓 필

오늘날의 언론인은 옛날의 사관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자이다. 그래서 언론기관에는 기자들이 귀감으로 삼을 글귀들이 많이 걸려 있다. 공명정대함을 강조하는 불편부당(不偏不黨), 역사의식을 가지고 사안을 판단하고 평가하라는 춘추필법(春秋筆法), 곧고 올바른 논조를 지키라는 정론직필(正論直筆)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 만리동에 있는 한겨레신문사에는 동호지필(董狐之筆)이란 현판이 논설위원들이 일하는 8층 어귀에 걸려 있다. 동호의 붓, 또는 동호의 직필이라는 이 성어는 세력이나 사정을 감안하지 말고 오로지 사실에 입각해 역사를 기록하라는 뜻을 담은 고사에서 유래했다.  

중국 북송의 문신 문천상은 쿠빌라이의 회유를 거절하고 죽기 전에 저 유명한 ‘정기가’(正氣歌)를 썼는데, 정기를 보여 준 대표적 인물로 역시 동호를 꼽고 있다.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영공은 아주 무도한 자였다. 구경 삼아 사람에게 탄환을 쏘아대고 낄낄거리는가 하면, 곰발바닥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고 요리사를 죽였다. 재상 조순이 잘못을 간하자 앙심을 품고 조순 암살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조순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임금의 살해 기도를 간신히 모면했다. 조순이 임금의 칼날을 피해 서울을 벗어난 사이에 조순의 조카 조천이 방심한 영공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 아마도 조씨 일족이 치밀하게 계획한 시해였을 것이다. 조순은 영공이 죽은 뒤 서울로 돌아와 재상으로서 정국을 수습했다.  

이때 조정의 태사가 이 정변을 기록하면서 “조순이 임금을 시해했다”고 적었다. 조순이 펄쩍 뛰었다. “그때 난 서울에 있지도 않았다. 어떻게 내가 임금을 죽일 수 있겠는가?” 그러자 태사가 반박했다. “재상께서는 정경(正卿)의 신분으로 난리를 피해 도망한다면서도 국경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돌아와서는 임금을 죽인 자를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임금을 시해한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조순이 탄식했다. “나라를 위하려다가 오명을 쓰는구나.”


이 진나라 사관의 이름이 동호이다. 공자는 훗날 이 고사를 전해 듣고 “동호는 서법(書法)에 의거한 직필로 조순의 죄를 감춰 주지 않았고, 조순은 사법(史法)을 지켜 주기 위해 역사의 오명을 받아들였다”며 두 사람 모두를 칭찬했다.  

5월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 잊을 수 없는 광주항쟁이 벌어진 달이다. 그 시대에 기자들은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1단짜리 기사 속에 사실을 심고는 그 기사를 톱기사보다 길게 흘려서 편집하기도 했다. 이들도 동호의 서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인우 <서울&> 콘텐츠 디렉터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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