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사제간 일체감 이룰 때 교감의 가치가 빛 발현

줄탁동시

등록 : 2016-05-19 14:50 수정 : 2016-05-2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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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탁동시(啐啄同機) 빨 줄, 쪼을 탁, 같을 동, 때 시

5월은 가족 기념일이 많다.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성년의 날(16일)이 있다. 그래서 가정의 달인데, 그 기념일 사이에 스승의날(15일)이 끼어 있다. 부모자식 간의 사랑에 스승의 가르침이 더해져야 온전한 성년에 이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리라.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스승과 부모를 하나라고 여겼다. 엄격한 훈도를 위해 자식들을 서로 바꿔 가르치기도 했다. 부모가 자식을 이끌어 줄 때, 스승이 학생을 깨우쳐 줄 때, 가르치고 배우는 교감이 일체감을 이룰 때 진정한 교학의 가치가 빛을 발한다.  

줄탁동시, 또는 줄탁동기(機)라고 하는 이 말은 보통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가장 이상적인 교감의 상태를 말한다. 꽉 잠겨 있는 문을 생각해 보자. 바깥에서 문고리를 잡아당기고 안에서는 힘껏 밀어서 함께 문을 열어제친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계몽(啓蒙)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이처럼 병아리가 부화할 때, 알 안에서 껍질을 깨뜨리려고 부리로 쪼는 행동을 ‘줄’이라고 한다. 반대로 어미닭이 새끼가 알 안에서 껍질을 쪼는 소리를 듣고 밖에서 마주 껍질을 쪼아 주는 행위가 ‘탁’이다. 새끼의 ‘줄’과 어미의 ‘탁’이 동시에 맞아떨어져야 병아리가 원활하게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불교 선종의 유명한 화두 100칙을 모아 놓은 책 <벽암록>에 나온다. 선종의 대표적인 수행 방법에 간화선(看話禪, 화두를 듣고 좌선하는 것)이 있다. 지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관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방식인데, 보통 스승이 제시한 화두를 잡고 깨달음을 구한다. 스승은 제자의 수행이 무르익어 터지기 직전에 이르렀다고 판단되면, 무엇인가 직관에 이르는 말이나 행동을 통해 깨달음의 물꼬를 틔워 준다. 안에서는 터져나오려 하고, 밖에서는 그 기미를 알아채는 시점이 딱 맞아떨어질 때 한 수행자의 깨달음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이런 줄탁동시는 제자에게뿐만 아니라 스승에게도 역으로 껍질을 깨고 나오는 또 한번의 진보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유가에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이 있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 가르침과 배움을 주고받는 사이에 함께 성장하고 진보한다는 말이니, 줄탁동시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줄탁동시, 교학상장의 기회는 한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성장에 모두 영향을 끼친다. 알을 깨고 나오느냐, 썩은 계란이 되느냐의 차이는 크다. 과연 나는 누구에게 ‘줄’과 ‘탁’의 존재가 되고 있는가? 겸허한 마음으로 아래위를 살펴보자.


이인우 <서울&> 콘텐츠 디렉터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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