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경리단길 2층 미용실, 청년 예술가 만나
한 달 대화해 문제점·개선 방향 잡아
단골들 “이렇게 넓은 줄 몰랐네” 감탄
불황에도 신규 고객 20~30% 늘어
2018년 12월20일 용산구 이태원 경리단길 2층에 있는 1인 미용실 ‘올어바웃 헤어앤네일’에서 가게 주인 양지연(오른쪽)씨와 작가 박선희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시 ‘우리가게 전담예술가’ 사업 전에는 한 사람이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했던 내부(오른쪽 사진)가 확 달라졌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박선희씨 제공
[양지연(30)씨는 2017년 5월 용산구 이태원 경리단길에 1인 미용실 ‘올어바웃 헤어앤네일’을 열었다. 4~5년 동안 영국·뉴질랜드 등의 유명 아카데미에서 유학하며 일한 그가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손님에게 머리부터 손톱·화장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최적의 입지라 여겼다. “그때 이미 경리단길은 지고 있었고, 외국인들은 떠나고 있었는데 저는 그걸 모르고 들어왔어요. 저보다 먼저 들어온 가게들은 ‘경리단길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며 힘들어하세요.”
양씨에게 더 큰 문제는 자신의 가게가 2층에 있다는 점이다. “1층과 2층의 차이가 이렇게 큰지 몰랐어요. ‘계단이 있고 없고’가 손님의 발길을 좌우하더라고요.”
그때 지인이 서울시의 ‘우리가게 전담예술가’ 사업을 알려줬다. 이 사업은 서울시가 회화, 전시 디자인, 공예 등 시각예술 분야를 전공한 청년 예술가와 소상공인을 1 대 1로 연결해, 가게 환경 개선과 아트 마케팅을 지원한다. 청년 예술가의 인건비는 서울시가 지원한다.
서울시가 연결해준 작가 박선희(29)씨와 양씨는 2018년 5월부터 매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포주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손님들은 어떤 점을 불편해하는지, 작가는 어떤 작업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한 달 넘게 대화하며 개선 방향을 찾아나갔다. 박씨는 “소상공인들은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디자인과 아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수 없다”며 “가게에 제일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저비용으로 어떻게 큰 효과를 낼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 ‘우리가게 전담예술가’가 일반 인테리어 업체와 가장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손님이 2층 계단 입구를 잘 찾지 못한다’는 양씨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박씨도 처음 왔을 때 입구를 열쇠 가게로 착각해 지나쳤을 정도로 좁고 복잡했다. 입구부터 분홍색만 찾으면 가게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디자인했다. 가게 문이 맨유리라 네일 서비스를 받는 손님들이 밖에서 누군가 쳐다볼 것 같아 부담스러워한다는 말에 유리 절반 아래에 문양을 넣었다. 지난 7월 무더위 속에서 페인트 칠을 하고 난 박씨는 처음으로 양씨에게 머리를 맡겼다. “가위를 잡는 순간 사람이 확 달라져서 깜짝 놀랐어요. 평소와 달리 엄청 차분하게 세련된 스타일로 자르더라고요. 대단한 실력을 갖춘 전문가라고 느낀 뒤에는 벽을 깬 것처럼 이야기하기 편해져 ‘진작에 머리를 잘랐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했어요. 그렇게 서로 배우며 함께 성장한 것 같아요. 작업은 8월에 끝났지만 얼마 전에도 염색하러 왔을 정도로 단골이 됐네요.” 처음 가게를 준비하면서 양씨가 직접 인테리어를 했던 내부는 한 사람이 지나가기 어려울 만큼 좁고 복잡했다. 받침대와 선반, 각종 장비까지 과감하게 들어내기로 했다. 작업 뒤에 방문한 단골들은 “가게가 이렇게 넓은 줄 몰랐다”며 감탄했다. 양씨는 “필요 없는 장비까지 다 매장에 뒀는데 작가님 제안에 따라 정리하고 나니 작업의 집중력도 높아진 것 같다. 가게 안팎을 바꾼 뒤로 고객이 20~30% 늘었다”고 했다. 대학 공예과에서 도자를 전공했던 박씨는 인테리어 회사에서 3년5개월 동안 근무하다 다른 분야 사람들과 소통하며 작업하고 싶어 ‘우리가게 전담예술가’ 사업에 참여했다. “회사에 들어가서 바로 실무부터 배워야 했고 디자인의 권한이 없다보니까 대학 4년 동안 배웠던 공부가 다 허사로 돌아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우리가게 전담예술가’는 제 색깔을 추구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후배들도 대학 졸업하고 바로 취직하는 것보다 이런 과정을 한번 거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울시의 ‘우리가게 전담예술가’ 사업은 2016년 첫발을 내디뎠다. ‘3년 동안 카페, 식당, 공부방, 한복집, 사진관, 게스트하우스 등 다양한 업종의 147개 가게가 변신했다. 특색 있는 간판, 벽화, 내부 인테리어 같은 공간 리모델링부터 명함, 로고, 패키지 등 각 점포에 필요한 맞춤형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청년 예술가는 3년 동안 모두 93명이 참여했다. 2016년 19명으로 시작해 2018년은 두 배 가까운 37명이 함께했다. 이성은 서울시 소상공인지원과장은 “소상공인은 자신의 가게를 선뜻 스케치북으로 내어주고, 청년 예술가는 개성과 예술을 입혀 가게를 동네 명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서로 협업하고 응원하며 사회적 우정을 꽃피우고 있다”며 “어려운 환경의 소상공인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청년 예술가에게는 양질의 사회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계속 강화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서울시가 연결해준 작가 박선희(29)씨와 양씨는 2018년 5월부터 매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포주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손님들은 어떤 점을 불편해하는지, 작가는 어떤 작업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한 달 넘게 대화하며 개선 방향을 찾아나갔다. 박씨는 “소상공인들은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디자인과 아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수 없다”며 “가게에 제일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저비용으로 어떻게 큰 효과를 낼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 ‘우리가게 전담예술가’가 일반 인테리어 업체와 가장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손님이 2층 계단 입구를 잘 찾지 못한다’는 양씨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박씨도 처음 왔을 때 입구를 열쇠 가게로 착각해 지나쳤을 정도로 좁고 복잡했다. 입구부터 분홍색만 찾으면 가게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디자인했다. 가게 문이 맨유리라 네일 서비스를 받는 손님들이 밖에서 누군가 쳐다볼 것 같아 부담스러워한다는 말에 유리 절반 아래에 문양을 넣었다. 지난 7월 무더위 속에서 페인트 칠을 하고 난 박씨는 처음으로 양씨에게 머리를 맡겼다. “가위를 잡는 순간 사람이 확 달라져서 깜짝 놀랐어요. 평소와 달리 엄청 차분하게 세련된 스타일로 자르더라고요. 대단한 실력을 갖춘 전문가라고 느낀 뒤에는 벽을 깬 것처럼 이야기하기 편해져 ‘진작에 머리를 잘랐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했어요. 그렇게 서로 배우며 함께 성장한 것 같아요. 작업은 8월에 끝났지만 얼마 전에도 염색하러 왔을 정도로 단골이 됐네요.” 처음 가게를 준비하면서 양씨가 직접 인테리어를 했던 내부는 한 사람이 지나가기 어려울 만큼 좁고 복잡했다. 받침대와 선반, 각종 장비까지 과감하게 들어내기로 했다. 작업 뒤에 방문한 단골들은 “가게가 이렇게 넓은 줄 몰랐다”며 감탄했다. 양씨는 “필요 없는 장비까지 다 매장에 뒀는데 작가님 제안에 따라 정리하고 나니 작업의 집중력도 높아진 것 같다. 가게 안팎을 바꾼 뒤로 고객이 20~30% 늘었다”고 했다. 대학 공예과에서 도자를 전공했던 박씨는 인테리어 회사에서 3년5개월 동안 근무하다 다른 분야 사람들과 소통하며 작업하고 싶어 ‘우리가게 전담예술가’ 사업에 참여했다. “회사에 들어가서 바로 실무부터 배워야 했고 디자인의 권한이 없다보니까 대학 4년 동안 배웠던 공부가 다 허사로 돌아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우리가게 전담예술가’는 제 색깔을 추구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후배들도 대학 졸업하고 바로 취직하는 것보다 이런 과정을 한번 거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울시의 ‘우리가게 전담예술가’ 사업은 2016년 첫발을 내디뎠다. ‘3년 동안 카페, 식당, 공부방, 한복집, 사진관, 게스트하우스 등 다양한 업종의 147개 가게가 변신했다. 특색 있는 간판, 벽화, 내부 인테리어 같은 공간 리모델링부터 명함, 로고, 패키지 등 각 점포에 필요한 맞춤형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청년 예술가는 3년 동안 모두 93명이 참여했다. 2016년 19명으로 시작해 2018년은 두 배 가까운 37명이 함께했다. 이성은 서울시 소상공인지원과장은 “소상공인은 자신의 가게를 선뜻 스케치북으로 내어주고, 청년 예술가는 개성과 예술을 입혀 가게를 동네 명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서로 협업하고 응원하며 사회적 우정을 꽃피우고 있다”며 “어려운 환경의 소상공인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청년 예술가에게는 양질의 사회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계속 강화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