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푸른 숲을 걷는 제복의 학생들, 푸르게 빛났다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② 동작구 까치산 숲길, 노들나루공원 느티나무, 서달산 느티나무

등록 : 2020-07-23 15:36 수정 : 2021-04-1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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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사당 능선에 서면 푸른 숲의 맥

서달산 줄기가 그 푸른 숲이다

서달산 서쪽 국사봉 오가는 사람은

양녕대군 묘가 있는 줄 알고 있을까


관악산 사당 능선에 서면 회색의 도심 사이로 이어지는 푸른 숲의 맥이 이어져 한강에 닿는 형국을 볼 수 있다. 숲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 학생들을 만난 까치산,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어린아이까지 즐겨 찾는 서달산 줄기가 그 푸른 숲이다. 서달산 서쪽 국사봉을 오가는 사람들은 조선시대 양녕대군의 묘가 그곳에 있는 줄 알고 있을까? 산자락 아래 사람 사는 마을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있어 옛이야기를 전한다.


까치산 숲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 학생들


은행나무골에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비 그친 숲은 싱그럽다. 풀 향기, 흙 내음이 숲에 가득하다. 까치산 숲길을 걸었다. 흙이 젖어 미끄러웠다. 흙길 위로 드러난 나무뿌리를 잘못 밟으면 미끄러지기에 십상이다. 강아지와 산책 나온 아줌마는 길이 익숙한 듯 사뿐히 걷는다. 도착한 능선은 숲속 네거리였다. 마을과 마을을 잇고 길과 길이 교차하는 고갯마루였다. 예로부터 이곳을 까치고개라고 불렀다. 수목이 우거지고 까치가 많아서 붙은 이름이다. 까치고개로 올라오는 길목에 있던 마을을 사람들은 은행나무골이라고 부른다.

은행나무골은 사당4동 서쪽 끝이자 까치산으로 오르는 산길 초입이다. 은행나무골이 시작되는 곳에는 360년 넘게 산 느티나무와 40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은행나무가 있다. 두 나무는 서로 가지가 얽힐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서 있다. 그 사이를 지나 골목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40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은행나무가 한 그루 더 있다. 이 마을의 터줏대감은 은행나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마을을 은행나무골이라고 부른다. 은행나무골 일대는 전주 이씨 집성촌이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조선시대 중기 문신 이정영의 묘도 이곳에 있다. 집성촌 또는 이정영의 묘와 오래된 세 그루 나무가 무슨 연관이 있을 거라는 얘기를 마을 사람에게 들었다.

능선 네거리 돌탑을 뒤로하고 조금 더 올라가다보니 넓은 흙길이 나왔다. 정자에 사람들이 앉아 쉰다. 오가는 이도 많다. 이정표에 있는 솔밭로 생태다리 쪽으로 향했다. 솔밭로 생태다리는 동작고등학교에서 낙성대역으로 이어지는 원당고개 도로 위에 놓인 다리다. 원당고개는 조선시대 동래 정씨와 전주 이씨 사람들이 이 부근 땅의 소유권을 두고 소송이 붙었는데, 고을 원님이 고갯마루에 앉아 판결을 내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고갯마루 부근은 동작구 사당동과 관악구 봉천동의 경계이기도 하다. 생태다리를 건너 숲길을 걷는데 교복 입은 학생이 보였다. 학교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란다. 하굣길이 숲길이다. 오래전 시골에서 산 넘고 물 건너 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숲속 길을 걷는 교복 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낯설고 신선했다. 푸른 숲을 걷는 그들의 푸르른 나이가 더 빛난다.


아파트 정자나무에서 국사봉까지

노들나루공원 서쪽 작은 아파트 단지 앞 동구나무.

동작구 본동 노들나루공원 서쪽 작은 아파트단지 앞에 있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 앉았다. 전부터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을 때 찾던 곳이다. 굵은 줄기가 용틀임하듯 한쪽으로 굽으며 뻗었다. 무성한 가지와 잎의 무게가 얹혀 힘겨워 보인다. 구멍 뚫린 텅 빈 줄기가 안쓰럽다. 맑고 투명한 오전의 햇살이 느티나무 잎마다 앉아 쓰다듬는다.

나무 아래 조형물이 재밌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남자, 책을 읽는 남자, 고개를 들고 머리를 매만지는 여자 모습이다. 시골 마을 동구에 있던 커다란 동구나무는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을 쉬게 했다. 아파트 단지 앞에 동구나무를 심은 누군가의 마음이 그 그늘 아래 앉아 쉬는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것 같아 푸근하다.

마을버스를 타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국사봉으로 향했다. 서달산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내리는 곳에 숭실대학교가 있다. 숭실대 서쪽 고개가 동작구 상도동과 관악구 봉천동을 잇는 살피재다. 숲이 울창하고 고개가 높고 험해서 조심히 살펴가며 고개를 넘어야 했다고 해서 살피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지금은 넓은 도로에 차들이 가득하다. 살피재 서쪽에 국사봉이 솟았다.

국사봉 기슭 생태연못은 철을 바꿔가며 부처꽃, 노랑꽃창포, 부들, 꿀풀, 고랭이, 사초, 버들강아지 등이 피어나 아기자기하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조선시대 양녕대군이 쓴 시를 적어 놓았다. “산허리 도는 안개 아침 짓는 연기인가/ 넝쿨 사이 걸린 달은 밤 밝히는 등불이네/ 나 홀로 고적한 암자에서 자고 나니/ 탑 하나 저만치 홀로 서 있네” 숲에서 만난 시 한 편도 좋았다. 이곳에 양녕대군의 시를 적어 놓은 이유는, 국사봉 기슭에 양녕대군 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양녕대군의 묘역인 지덕사로 내려가는 숲길로 접어들었다.

‘지덕’이란 지극한 덕을 말하며 양녕대군이 그 덕을 갖추었다는 뜻으로 세조가 지은 이름이다. 셋째인 충녕(세종)에게 세자 자리를 물려준 일을 칭송한 것이다. 원래 지덕사는 숭례문 근처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산에서 보았던 양녕대군의 시를 새긴 시비도 보기 좋지만, 커다란 비석에 새겨진 양녕대군의 초서가 압권이다. 양녕대군은 명필로도 유명한데 숭례문 현판 글씨를 썼다.(지덕사는 현재 코로나19 때문에 개방하지 않는다.)

지덕사에 있는 양녕대군 초서.


연리목이 있는 서달산, 사람이 모이는 숲

서달산 자락인 동작구 상도1동 미륵암 경내에 260년 넘게 산 느티나무가 있다. 이 나무가 있는 곳은 사당동과 상도동을 잇는 고개인 사당이 고개 고갯마루였다. 고개 주변에 큰 사당이 있어서 사당이 고개가 됐다고 한다. 사당이 고개가 시작되는 곳이 까치산 자락이며 사당이 고개를 넘어 서쪽으로 가다보면 살피재가 나오고, 살피재 서쪽에 국사봉이 있으니 까치산, 서달산, 국사봉은 다 한 산줄기였다. 옛사람들은 그 산줄기에 난 여러 고갯길을 넘어 다녔고, 지금 사람들도 남아 있는 산길, 고갯길을 걷는다.

서달산 정상 아래 달마사로 가는 길목에 뿌리가 다른 나무가 서로 엉켜 한 나무처럼 자라는 연리목이 있다. 서달산 연리목은 참나무와 벚나무가 서로 부둥켜안고 자라는 나무다. 자연의 이치에 무슨 까닭이 있겠거니 생각하며 바라보는 연리목이 예사롭지 않다.

연리목 옆 우거진 숲은 신선한 쉼터다. 정상에 오르면 누각 같은 동작대가 있다. 동작대 꼭대기에 오르면 시야가 조금 터진다. 서달산 정상 정자는 할아버지들 쉼터다.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둔다. 장기판, 바둑판은 훈수가 더 재미있다. 1920년 일본인 기노시타 사카에는 서달산 꼭대기에 별장을 짓고 그 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즐겼다고 한다. 경치가 좋다고 해서 명수대란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달마사 위 거북바위 앞이 전망 좋은 곳이다.

서달산 연리목 옆 숲속 쉼터.

서달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따라 걷는다. 생태다리를 건너면 체육시설과 작은 연못이 있는 서달산 수목학습원이다. 암석원과 초화원을 지나면 숲속 쉼터가 나온다. 젊은 엄마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와서 놀고 책도 읽는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아줌마들도 보인다. 산줄기는 고구동산으로 이어진다. 넓은 운동장은 젊은이들 차지다.

고구동산에서 용봉정근린공원까지 이어지는 산등성이는 마을 뒷동산이었다. 뒷동산은 아이들 차지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처럼 아이들은 뛰어놀았다. 바람 좋은 날은 연을 만들어 날렸다. 해질녘 노을이 아름다운지는 더 커서 알았다. 생활의 편린을 이고 사는 어른들은 산동네로 오르려면 숨이 가빠 헐떡거렸다고 해서 이 고개를 헐떡고개라고 불렀다. 용봉정근린공원에 오르면 유장한 한강과 북한산까지 펼쳐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노을도 아름답고 연도 날리고 싶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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