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고목 빈 가지도 따뜻하다, 새봄에 새싹 틔움 알기에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⑬ 종로구 세 번째 이야기, 겨울나무들

등록 : 2020-12-24 16:20 수정 : 2021-04-1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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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울수록 더 따듯해지는 겨울나무들

선비 정신 닮은 바람 소리 전해서일까

기이하게 자란 줄기 앙상하게 보여도

안간힘 쓰며 남은 잎, 지조 높게 느껴져

창경궁 춘당지 한쪽에서 수양버들, 주목 등과 어울려 자라는 백송.

사람은 나무를 가꾸고 나무는 사람을 가꾼다. 고목 빈 가지 겨울나무가 따듯하게 느껴지는 건, 힘든 나날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 때문이다. 수백 번의 겨울을 그렇게 보내고 수백 번 맞이했던 새봄, 어김없이 푸른 새싹을 틔우는 이치에 마음을 얹고 싶은 것이다. 청송당 터에 누군가 심은 붉은 소나무들, 서울농학교 교정의 고목들, 한겨울에도 희게 빛나는 백송들, 언제나 푸르른 소나무들, 종로구에 있는 겨울나무들을 찾아 한파 속으로 걸었다.

백악산(북악산)과 인왕산 자락의 나무들

지하철 경복궁역에서 자하문터널 쪽으로 걷는 길은 청계천의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길이다. 청계천 상류인 이곳은 조선시대에 웃대라고 했다. 기암 옥류에 소나무 푸른 계곡이 한두 곳이 아니었으니, 백악산(북악산) 자락에는 청송당과 백운동천이 유명했다. 인왕산 자락에는 청풍계와 옥류동천이 있었다. 자하문고개를 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고개 넘어 인왕산 자락에는 청계동천과 무계동, 삼계동이 있었고 삼계동 맞은편 백악산 깊은 곳에 비경이 있었으니, 지금도 계곡과 푸른 숲이 남아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백석동천이 그곳이다. 계곡과 기암이 어우러진 숲마다 깃들어 사는 시인 선비들이 있었다.


자하문터널 전, 백악산 자락에 경기상고가 있다. 이곳이 조선시대 성수침이 살던 청송당 터다. 기묘사화로 인해 조광조 등 개혁을 부르짖던 사림의 꿈이 꺾이자 성수침은 청송당에 은거하며 학문을 닦았다. 가난은 늘 그를 따라다녔지만 학문이 높아 그의 아들 성혼 등 그의 문하에서 인재가 여럿 나왔다. ‘솔바람 소리 들리는 집’이라는 ‘청송당’은 현재 경기상고 본관 뒤 깊숙한 곳에 있었다. 겸재 정선의 그림에서 청송당과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림 속 계곡에 소나무가 빼곡하다. 솔숲에 안긴 집 한 채가 청송당이다.

현재 경기상고 본관 건물 앞에 적송군락이 있다. 솔숲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솔바람 소리 들리던 청송당 주변, 현대판 솔숲 풍경 또한 소쇄하다.

경기상고에서 길을 건너 좌회전해서 걷다보면 청운초등학교가 나온다. 청운초등학교 담장을 왼쪽에 두고 자하문로33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백세청풍’ 각자 바위가 나온다. 이곳이 인왕산 자락의 청풍계이고, 각자 바위가 있는 곳은 조선시대 김상용이 살던 집터다. 김상용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 피란지에서 성이 함락되면서 죽었다. 그의 동생이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끝까지 싸울 것을 주창했던 김상헌이다.

청풍계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으나, 각자바위 남쪽 바로 아래 서울농학교에 270년 넘은 느티나무와 290년 넘은 은행나무가 남아 있어 옛 청풍계의 백세청풍, 선비의 맑고 높은 지조를 닮은 푸른 바람 소리를 전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8호·제9호 백송들

헌법재판소 안에 있는 재동 백송. 2016년 봄에 촬영. 코로나19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안에 있는 ‘재동 백송’은 600년 넘게 살고 있는 천연기념물 제8호다. 조선시대 중국을 오가던 사신들이 묘목을 들여와 심은 것이라고 한다. 1885년(고종 22년)에 서양식 의료기관인 제중원(첫 이름은 광혜원이었다)이 백송 옆에 문을 열었다. 제중원이 들어선 곳은 원래 홍영식의 집이었다. 김옥균, 박영효 등과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홍영식이 1884년에 죽었고, 이듬해에 그가 살던 집에 제중원이 들어섰다. 조선시대 말 우의정을 지내며 근대화를 주장한 박규수의 집과 조선시대 말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쳐 정치·사회운동가로 활약한 이상재의 집도 백송 옆에 있었다.

천연기념물 제9호는 조계사 백송이다. 재동 백송보다 약 100년 정도 어린 500살 정도 된다. 조계사는 1910년 창건됐으니,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만해 한용운의 발길도 백송 앞을 지나쳤을 것이다.

조계사 백송을 뒤로하고 통의동 백송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됐던 통의동 백송은 1990년 태풍에 쓰러진 뒤 고사하여 1993년에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됐다. 지금은 그 밑동만 남았다. 백송의 그루터기 주변에는 백송에서 떨어진 씨앗으로 자란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창경궁에도 백송이 있다. 수양버들, 주목 사이에서 하얗게 빛나는 백송이 춘당지 연못 빙판에 제 모습을 드리운 풍경을 먼발치에서 바라본다. 연못 둘레를 걸어 백송으로 다가가는 길, 보물 제1119호 팔각칠층석탑을 지나 소춘당지 앞에 선다. 소춘당지가 원래 춘당지다. 춘당지는 창덕궁 절벽인 춘당대와 한 풍경이었으나 지금은 담장이 풍경을 나누고 있다. 지금 춘당지로 부르는 곳은 1909년에 만든 것이다. 소춘당지를 지나 백송 앞에 도착했다. 흰빛으로 빛나는 줄기, 그 끝에 핀 푸른 잎, 한 그루가 아니라 모두 세 그루의 백송을 보았다. 한 그루가 유독 흰빛이 강했고, 나머지 두 그루는 약간 푸른빛이 돌았다. 어린 백송이 푸른빛을 띤다고 한다.

조계사 백송.

한옥과 어울린 겨울나무

창경궁에는 백송 말고도 혹독한 겨울에 더 빛나는 나무들이 있는데, 함인정 앞 너른 뜰 가운데 서 있는 주목이 그 첫 번째다. 기이하게 자란 줄기가 무슨 기호처럼 보인다. 안간힘으로 버티며 지내온 세월이 느껴지는 줄기 끝에 남아 있는 잎은 겨울이라 더 지조 높아 보인다. 두 번째는 주목 옆 200년 정도 된 향나무다. 나무의 속살이 붉은빛을 띤 보라색이라서 자단이라고도 한다. 두 나무는 함인정, 숭문당, 경춘전, 환경전 등 전각과 궁궐 담장, 담장 안 다른 나무의 배치와 어울려 보는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창경궁 홍화문으로 들어서서 옥천교를 건너지 말고 바로 오른쪽으로 돌아 춘당지 쪽으로 가다보면 기이한 나무가 나온다.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줄기 밑동부터 부둥켜안고 자라고 있다. 그 앞에 누군가 정조와 그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궁궐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서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는 안내 글을 적어 놓았는데, 그보다는 사랑하는 남녀가 포옹하는 모습 쪽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서로 부둥켜안고 영하의 한파를 견디는 겨울나무 앞에서 사랑을 축복하는 함박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그려보았다.

서울 문묘 수복청, 대학당이라는 편액이 걸린 건물 옆 주목.

성균관대학교 내 서울 문묘는 명륜당 앞 거대한 은행나무 고목의 단풍으로 유명한데, 대성전과 그 앞 측백나무의 겨울 풍경도 좋다. 측백나무는 군자를 상징한다. 대성전 편액이 조선의 삼대 명필 한석봉의 글씨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대성전 건물 옆 수복청에는 기이하게 자라는 주목이 한 그루 있다. 줄기 가운데가 갈라지고 비틀리며 굽어 자란 나무가 대학당이라는 편액이 붙은 건물 지붕을 감싸는 듯하다. 엄마가 자식의 등을 어루만지며 위로하는 것 같다. 수복청은 성균관의 잡일을 돌보던 남자 하인들의 거처다.

인왕산 자락 석파정 소나무를 만난 건 겨울 오후 짧은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때였다. 석파정은 흥선 대원군의 별장이었다. 원래 조선 후기 문신 김홍근의 것이었다. 김홍근은 이곳을 삼계동이라 했다. 세 물줄기가 이곳으로 모여 흐른다는 뜻이다. 석파정 소나무 옆 절벽에 삼계동 각자가 남아 있다. 김홍근과 대원군 이전부터 숲과 너럭바위, 그 위를 흐르는 계곡물, 바위 절벽 등이 어울린 풍경에 구름이 드리울 때 펼쳐지는 풍경이 이곳의 진면목이라는 글이 전한다.

보통 소나무와 다르게 넓게 퍼져 자란 석파정 소나무의 모습이 한옥 기와지붕과 어울려 예사롭지 않다. 흥선 대원군이 벗 삼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가지를 넓게 퍼뜨리며 자라는 석파정 소나무.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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