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사냥 뒤 사냥개 신세로 자신을 비유한 정치인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 토, 죽을 사, 개 구, 삶을 팽

등록 : 2016-07-1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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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자기 역할이 끝나서 조직이나 모임에서 내쳐질 때 사람들은 “팽당했다”고 한다. 이때 팽의 어원이 ‘토사구팽’(兎死狗烹)이다.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말인 토사구팽은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도 필요 없으므로 잡아먹히게 된다는 의미이다. 쓸모가 있을 때는 실컷 부려먹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헌신짝 버리듯 내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원문인 ‘교토사양구팽’(狡兎死良狗烹)을 줄여 ‘교토구팽’(狡兎狗烹)이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에서 초나라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건국의 제일공신인 대장군 한신을 초나라 왕에 봉했다. 그런데 한신의 절친한 친구이면서 항우의 장수가 되어 유방을 괴롭혔던 종리매가 한신에게 투항하자 유방은 한신이 종리매와 함께 모반하지 않을까 의심했다. 유방은 여차하면 한신을 주살할 계획이었다. 한신 진영에서는 종리매를 죽여 황제의 의심을 풀어야 한다고 진언했다. 한신의 마음이 흔들리자 종리매는 자결하며 친구에게 말했다. “자네가 무사한 건 내가 자네 곁에 있었기 때문일세. 이제 내 목이 필요하다니 내주겠지만, 자네도 결국 망하게 된다는 걸 잊지 마시게.” 한신이 종리매의 목을 들고 유방을 찾아가 허리를 굽혔으나 유방은 의심을 풀지 않고 한신을 포박했다. 분개한 한신이 옥중에서 한 말이 바로 토사구팽이다.

“재빠른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좋은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교토사양구팽 狡兎死良狗烹), 하늘 높이 나는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은 곳간에 처박히며(고조진양궁장 高鳥盡良弓藏), 적국을 격파하고 나면 책사도 버려진다(적국파모신망 敵國破謀臣亡)고 하더니, 이제 천하의 주인이 정해졌다고 하니(天下已定) 내가 삶기는 것도 당연하겠지(我固當烹).”

유방은 한신을 죽이지 않고 회음후(淮陰侯)로 좌천시키는 데 그쳤지만, 한신을 견제한 여태후 세력은 유방이 장안을 비운 틈을 노려 한신을 죽였다. 끝내 토사구팽이 실현된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말이 대중적으로 유행한 것은 김영삼 정부 때의 일이다. 얼마 전 작고한 월간지 <샘터>의 창간자는 국회의장을 지낸 정치인 김재순 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에 반대해 정계를 떠났다가 노태우 정부 때 정계에 복귀했다. 그는 야당 출신 김영삼 씨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고 김영삼 정부의 초대 국회의장에 올랐으나 이어지는 재산공개 파동 때 숙정의 표적이 되어 불명예퇴진했다. 이때 그가 물러나면서 한 은퇴의 변이 바로 토사구팽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을 향한 가시 돋친 항변이었다.

이인우 <서울&> 콘텐츠디렉터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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