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해먹거나 사먹거나

감히, 최고의 닭백숙

닭백숙

등록 : 2016-07-14 16:19 수정 : 2016-07-1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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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제공

예전에는 개가 복날을 두려워했다지만 요즘에야 되도 않을 소리. 여름을 온전히 나기 힘든 축생의 대명사는 닭이다. 그렇잖아도 일년 내내 치킨으로 소천하는 이 축생은, 여름이 되면 끓는 물과 증기 속에서 삼계탕이 되고 백숙이 되어 보양의 재단에 바쳐진다. 오리, 소, 돼지 등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도축되는 이 동물은, 특히 한국 휴양지의 ‘시그니처 푸드’(대표 음식)라 이를 만하다.  

삼면의 바다에 각각 있는 제철 생선들과 각지의 산과 들을 대표하는 먹거리들은 온갖 축제의 이름을 달고 관광객의 지갑을 유혹하지만, 축제는커녕 홍보 문구 한 줄 없이 어디에나 닭백숙은 존재하지 않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반드시 삼겹살집이 있어야 하고, 놀러 다니는 곳에는 닭백숙집이 있어야 한다는 법조항이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차는커녕 면허도 없는 주제에 사람들을 꼬드겨 여기저기 쏘다니는 걸 좋아하다 보니, 산과 들과 바다와 계곡을 막론하고 닭백숙 간판 걸린 걸 봐야 놀러왔다는 마음이 든다. 이것저것 먹고 마신 후 마지막 한 끼 정도를 닭백숙에 할애할 때, 여행의 마침표를 찍는 기분이다. 닭백숙이란 맛으로 먹고 운치로 먹는 음식이다.  

산에 오른 후 들어간 백숙집에서 누가 봐도 하림에서 생산한 게 분명한 작은 닭이 나오면 김이 빠진다. 제 아무리 토종닭을 사용한다고 커다랗게 내걸었어도 주변에 보이는 풍경이 온통 아파트뿐이라면 들어갈 맛이 안 난다. 공장이 아니라 산속, 최소한 마당에서 자랐을 거라는 기대와 푸르른 나무와 흐르는 개울이 만났을 때 닭백숙은 비로소 완성된다. 그래서 하림표 영계를 사 집에서 만든 백숙은 왠지 백숙이라기보다는 닭찜이라 일러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얼마 전 제주도에 다녀왔다. 제주, 하면 회와 돼지고기를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자꾸 다니다 보면 일반적인 식사에는 질리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제주 일정이 잡히면 이번엔 뭘 먹어 볼지 온종일 궁리하게 된다. 보말칼국수, 고메기탕, 꿩메밀국수, 몸국, 접짝뼈국 등 그 이름도 낯선 음식들을 섭렵할 때마다 트로피를 하나씩 받는 기분이 든다. 이번에도 트로피를 얻었다. 그 이름도 친숙한 닭백숙.  

한라산을 누비며 자란 후배가 고향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일정이 맞아 밤새 퍼마신 다음 날, 잠이 덜 깬 나를 싣고 차를 몰았다. 남쪽 바다에 면한 그곳은 식당이라 하기엔 황량하다. 가건물 앞으로 테이블 십여 개가 깔려 있을 뿐이다. 단, 그 테이블이 한라산에서 흘러온 민물과 태평양으로 흐르는 바다가 만나는 곳이라는 게 중요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서귀포 앞을 지키고 선 범섬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무릉도원이 여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도낏자루 썩는 줄도 모르고 신선들의 바둑을 지켜보던 나무꾼처럼, 때마침 나타난 돌고래 한 무리의 유영에 멍하게 취해 있다 보니 커다란 닭 한 마리가 담긴 냄비가 놓인다.  

맛이 어땠냐고?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하지도 않다. 먹는 내내 계곡과 바다의 소리가 섞여 귀에 감겼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나도 모르게 나온 탄성은 일어설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이런 낙원에서만큼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적용되지 않는다. 생각을 비우고 오직 마셔야 한다. 뒷일정 따위를 마음에 담아 두면 안 되는 것이다. 중천에 채 이르지도 못한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한라산 소주병은 증발하듯 비어 갔다. 가장 맛있는 닭백숙을 나는 두어 개 정도 꼽을 수 있다. 가장 운치 있는 닭백숙을, 나는 여기 말고 평생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글 김작가 음악평론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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