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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샹그릴라’
티베트어로 ‘해와 달을 품은 마음’ 뜻
중국 2곳에서 원래 지명 개명 뒤 사용
진위 모르지만 ‘인식 전환’ 체험 경험
아름다운 ‘고원 화장실’ 품은 스카설산 세상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경치 선사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겸손’ 배우고
음차어 ‘스카설산’ 어원 끝내 못 찾으며 ‘흔적 답사가’,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해
아름다운 ‘고원 화장실’ 품은 스카설산 세상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경치 선사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겸손’ 배우고
음차어 ‘스카설산’ 어원 끝내 못 찾으며 ‘흔적 답사가’,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해
스카설산 정상에서 보이는 메이리설산.
2016년 겨울 잠깐 들렀던 중국 윈난성 디칭(迪慶)주의 샹그릴라(Shangri-La, 香格里拉)에 2017년 겨울엔 좀 더 머물렀다. 그만큼 샹그릴라의 기억이 좋았기 때문이다.
샹그릴라는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1933)에 등장하는 이상향, 즉 또 하나의 ‘유토피아’다. 독일의 어느 비행사가 티베트에 불시착해 티베트인들과 살게 되는데 그곳의 자연이 너무 뛰어났다고 한다. 젊은 시절 필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이 하나의 산에 동시에 있다’는 소설 속 한 구절에 홀렸다. 그 소설을 읽으며 ‘그런 곳이 있다면 언젠가는 꼭 가보겠다’는 의지를 다졌고, 결국 이렇게 두 번이나 찾게 되었다.
샹그릴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이지만, 지금은 윈난성의 디칭, 그리고 쓰촨성의 야딩(亚丁)이 서로 소설 속의 샹그릴라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중 먼저 알려진 곳이 필자가 방문한 디칭 샹그릴라다. 디칭주 샹그릴라현의 원이름은 중뎬(中甸)이다. 중뎬이 샹그릴라로 개칭한 배경에는 ‘관광’이라는 거대한 산업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 이곳이 소설 속 바로 그 샹그릴라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디칭 샹그릴라는 정말 샹그릴라가 있다면 이런 곳이겠구나하는 느낌을 안겨주었다.
특히 디칭 샹그릴라의 스카설산(石卡雪山)은 그야말로 꼭 가볼 만한 곳이었다. 4500m의 정상은 태어나서 가본 곳 중 가장 높은 곳이었다. 멀리 메이리설산의 눈 덮인 정상도 아득하게 보였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스카설산의 정상도 볼만하지만 해발 3746m에 있는 산 중턱의 얄하첸보(Yarlha Chenpo) 목장도 신기했다. 스카설산 중턱에 자리잡은 고원 목장의 이름에 들어간 ‘첸’은 티베트어로 ‘크다’는 뜻이다. 남북 2.5㎞, 동서 1㎞이다. 3746m가 중턱이라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가다 중간에 내려서 목장 여기저기를 둘러볼 수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화장실도 갈 수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가다 화장실에 들르기 위해 내려서 쉴 수 있는 곳이라니…. 더욱이 ‘화장실 가는 길’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라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멋진 길이었다.
스카설산 정상을 가기 전의 고원목장. 케이블카에서 내려 화장실 가는 길.
스카설산을 숙소에서 소개해줘서 가게 됐지만 아마 가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것이다. 신장의 보그다산을 올라갈 때 산세와 분위기가 사진에서 보던 북유럽의 어디인 듯했고, 리장의 위룽설산(玉龍雪山·옥룡설산)을 오를 때 ‘빨간색의 중국 간판’을 배제하고 풍경을 보다보면 캐나다의 로키산맥 어딘가에 있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이 스카설산은 그렇게 다른 어느 지역과 연상되는 곳이 없었다. 내 과거 감각과 경험을 초월한 곳이었다. 그런 점에서 간쑤성 장예의 몽골리안 위구르자치현의 산과 비슷했다. 자신이 본 적이 없는 것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오래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사물을 볼 때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고 한다. 또 사람들이 대상을 볼 때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도 한다. 그런데 본 적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는 느낌은 ‘보고 싶은 것’만을 추리기도 힘들고 ‘아는 것’으로 더 깊이 볼 수도 없다. 그저 놀랄 뿐이다.
그 놀라움은 인식의 전환을 하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겸손함에 젖어들게 한다. 몽골리안 위구르 마을의 산이 그러했고 칭하이호와 유채꽃밭이 몇 시간 지속할 때 그러했다. 그런데 이 스카설산은 무언가 새로운 듯 하면서도 많이 본 듯하고, 그러나 경험하지 못했던 그런 느낌을 주는 묘한 곳이다.
푸다춰(普達措)국가삼림공원. 비타하이(碧塔海)와 수더우후(属都湖)가 있다. 수더우후는 ‘우유잼이 바윗돌처럼 단단해지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역시 해발 3000m 넘는 고산지대의 호수. 고산버드나무가 많다.
샹그릴라는 티베트어 방언으로 ‘해와 달을 품은 마음’ ‘내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해와 달이 머문다고 이름을 지을 수 있는 티베트 사람들의 상상력과 사고의 유연함과 포용력에 더 빠져든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뜻은 많이 알려지기로는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곳’이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의 어느 학자는 ‘튀르크인들이 버리고 떠난 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튀르크어, 중국어에서는 산이나 강의 이름을 경험을 토대로 큰 의미를 부여하려고 붙인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의 ‘해와 달이 머무는 마음’이라는 이름 짓기는 경험이나 의미 부여의 차원이 아니다. 그들의 감성과 언어가 찰떡궁합을 이루어 나온 것이다. 한국인의 감성과 언어가 가지는 궁합과 비슷하다. 이는 박동환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표현하듯, 마치 ‘감 잡았다’라는 우리말과 유사하다. 서구어나 중국어로 번역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문장이다.
나파하이(納帕海). 티베트어 ‘나파’는 ‘숲 뒤의 호수’라는 뜻이다. 해발고도 3266m에 위치한 고원호수. 생태자연지구이다. 나파하이는 샹그릴라 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이다. 넓은 호수와 평원은 생태적 보고이다.
이곳 스카설산의 한자(石卡)는 분명 티베트 방언의 음차다. 돌(石)이 많아서 그런가 생각도 했지만 카(卡)는 외래어 표기를 위해 최근 만들어진 한자이다. 혹시 ‘사카(Saka)족’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르네 그루세에 따르면, 그리스에서는 사카를 스키타이라고 하고, 페르시아에서는 스키타이인을 사카라고 부른다. 미국의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베크위스는 색족(塞族 Sai)이 바로 스키타이-사카라고 한다. 차마고도를 따라 올라오는 윈난성의 이 길이 티베트의 라싸로 연결되지만, 중간에 실크로드로 연결되기도 하며, 남서쪽으로는 페르시아와 인도로 연결된다. 그러나 끝내 어원을 찾지 못하면서, ‘길 위에서 우리를 찾기 위해서는 더 많은 학습과 독서가 필요하겠구나’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된다.
샹그릴라의 숙박 장소에서 주인 여자와 우리 일행은 차를 마시며 많은 얘기를 했다. 싱가포르에서 살던 얘기며, 어린 시절 지린성 연변(옌볜)에 살던 얘기. 그러다 이 중국인이 갑자기 ‘도라지’라는 우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조선족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기에 그 노래를 알고 있다고 했다.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데 노래 가사만은 정확히 발음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러 간 곳에는 식사와 함께 티베트의 전통 춤과 노래 공연이 있었다. 많은 중국인 관광객과 섞여 식사했다. 유일한 한국인 관광객이 왔다며 마이크를 들고 사회를 보는 중국인이 “한국인들도 여기 왔다”며 환영의 박수까지 유도했다.
샹그릴라에 있는 쑹짠린사(松贊林寺)는 리틀포탈라궁이라 불리는 사원으로 라싸의 것을 축소해 만들었다고 한다. 1968년 문화혁명 때 파괴된 것을 복원했다. ‘문화 파괴’로 악명 높은 문화혁명은 새로운 중화주의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소수민족의 문화도 파괴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자가 우리 팀을 가리키며 취한 우리 일행에 장기자랑을 권했고 그들이 권하는 독주를 한국인 동료가 세 잔이나 연거푸 마시자 장내는 완전히 뜨기운 열기와 환호로 가득 찼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는데 마당에서는 캠프파이어로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고 있었다. 야외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젊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춤추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마지막 춤곡으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흘러나오자 모든 중국인이 우리를 가리키고 박수를 쳐대며 싸이의 말춤을 요청했다. 얼큰하게 취한 우리 일행 중 싸이와 체구가 비슷한 영화인이 흥겨운 말춤을 추자 식당 앞마당은 완전히 열광의 도가니로 변해버렸다. 그 순간은 한국의 사드 배치 이후 한한령이 떨어진 중국의 한류 억제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한-중 관계는 좋지 않았으나 싸이의 말춤은 중국인과 티베트인에게 이미 최고의 노래와 춤이 되어 있었다.
글·사진 장운 자발적 ‘우리 흔적’ 답사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