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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과 줄리엣’, 셰익스피어 원작을 비틀어 동성애자 목소리를 내다

등록 : 2021-11-1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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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과 줄리엣(~21일)

“여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 첫머리에 등장하는 외침은 100분간 이어지는 이 연극에서 중요한 복선으로 다가온다. 본격적인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반역할 수 없을 것 같은 명제’를 미리 서두에 깔면서 시작한다.

대학로 브릭스씨어터에서 11월21일까지 계속되는 <줄리엣과 줄리엣>(한송희 작가, 이기쁨 연출)은 많은 이가 당연하게 여기는 ‘사랑은 남녀 간에만 일어나는 것’이라는 논리와 처절하게 신경전을 벌이는 성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한 이 작품은 한마디로 여성이 사랑하는 여성의 이야기다.

공연은 철저하게 비주류인 약자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여기에서는 동성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퀴어(성소수자)뿐 아니라 16세기 베로나를 지배했던 기독교에 저항하는 불교를 가상으로 들여와 성소수자의 입장을 뒷받침했다.

무대엔 줄리엣만 두 명이 등장한다. 베로나의 주요 가문인 몬테규 집안과 캐플렛 집안의 딸인 줄리엣 몬테규와 줄리엣 캐플렛이 그들이다. 로미오는 줄리엣 몬테규의 동생이다. 이 두 줄리엣은 무도회장에서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을 맺게 된다.

공연의 대부분은 두 여성이 커밍아웃하는 과정에서 가족을 비롯해 주위 사람들과 충돌하는 심리 상태를 담아냈다. 눈앞에서 펼쳐지듯 생생한 대사 전달과 고통의 순간이 돋보인다. 남동생 로미오는 동성애를 이해하지만 바로 옆에서 끔찍하게 아끼던 가족조차도 사회가 쳐놓은 울타리를 벗어나지 말라며 주인공을 압박한다.

작품에서는 다양한 성소수자의 모습도 만난다. 사랑해본 적도 느끼지도 못하는 무성애자인 하녀와 남자인지 여자인지 예측할 수 없는 승려는 남녀로 구분되는 이분법적 논리에서 설명할 수 없는 성소수자를 대변한다. 모든 배우는 마지막 순간을 제외하곤 흰색 옷을 입고 등장한다. 색깔이 던져주는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배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백지상태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공연을 보라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장소: 종로구 동숭동 브릭스씨어터 시간: 평일(화 쉼) 오후 8시, 주말·공휴일 오후 3시·6시 관람료: 4만5천원 문의: 070-7724-1535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홍보아이티(IT) 팀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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