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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덕산 겨울나무. 굵은 줄기를 비틀며 자란 나무에 눈길이 머문다.
굵고 가는 줄기들이 획 긋고 선을 친다
줄기 밖 불거진 옹이는 한 점 먹물 자국
이름팻말로 남은 예쁜 꽃들 기억하고
새봄에 피어날 생명 상상하며 걸었다
고려 말기 신돈의 전횡으로 죽을 위기에 처했던 학자이자 시인 이집이 은둔했던 굴이 강동구 둔촌동 일자산에 있다. 강동구 고덕동 고덕산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시작될 때 고려에 충절을 지켰던 이양중이 은둔했던 곳이다. 한파의 겨울을 이겨내고 있는 겨울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일자산과 고덕산을 걸었다. 일자산 기슭, 공원을 찾은 인근 마을 사람들은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겨울을 즐기고 있었다.
강동구 둔촌동 마을 이름의 유래를 품은 일자산
일자산 숲길. 일자산 숲길 일부 구간은 하남시와 강동구 경계다. 향나무가 있는 곳은 하남시 땅에 있는 공원묘지다.
강동구 동남쪽 일자산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북으로 이어지면서 명일산과 고덕산을 세웠다. 고덕산에서 숨을 고른 지맥은 한강으로 흘러든다. 일자산과 고덕산 숲길을 걸었다. 일자산 남쪽 서하남로에서 서하남로 23번길로 접어들어 주택가 골목을 지나면 일자산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초입부터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과 쓰러져 뿌리를 드러낸 나무들로 어수선하다. 산이 낮고 흙길이라 편하게 걷는다. 나뭇가지가 만든 터널 같은 길 끝에 푸른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커다란 향나무다. 일자산은 서울시 강동구와 경기도 하남시의 경계다. 향나무가 있는 곳은 하남시 감북동 공원묘지다.
일자산 숲길. 고려시대 말에 신돈의 전횡에 목숨이 위태로웠던 학자이자 시인인 이집이 잠시 숨어 살았다고 알려진 동굴. 동굴 이름이 둔굴이다.
향나무를 뒤로하고 걷다보면 둔굴이라고 적힌 안내판과 쉼터가 나온다. 쉼터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안내판에 적힌 둔굴이 있다. 둔굴은 고려시대 말기에 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이집이 신돈의 전횡에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몸을 피해 잠시 은둔했던 굴이라고 한다.
승려 신돈은 공민왕의 총애를 업고 국정에도 나섰다. 여러 제도 혁신으로 기득권 세력이었던 권문세족에게는 눈엣가시였고 핍박받던 사람들에게는 칭송받았다고 전해진다. 훗날 공민왕과 사이가 멀어졌고, 참형을 당했다.
이집은 고려 말기에 이색, 정몽주, 이숭인 등과 함께한 학자이자 시인이었다. 이집은 일자산 굴에서 은둔했던 것을 돌이켜 둔촌이란 호를 지었다. 지금의 강동구 둔촌동 마을 이름이 이집의 호인 둔촌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둔굴을 뒤로하고 걷는 숲길, 돌무지 성황당 하나쯤 있을 법한 곳에 뿌리를 드러낸 나무가 보인다. 커다란 나무가 편안해 보이니 성황당을 대신할 만하겠다.
잎 떨군 나무 빈 가지들이 빽빽하게 모여 만든 ‘나무터널’ 아래 계단으로 올라가면 일자산 해맞이 광장이다. 해맞이 광장이지만 시야가 트이지 않아 나뭇가지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봐야 한다. 광장 한쪽에 둔촌 이집이 후손에게 남긴 글을 새긴 비석이 있다. 시간을 아껴 부지런히 공부해라, 자식에게 금을 광주리로 주는 게 경서 한 권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그 말을 새기며 숲길을 걷다가 여러 정보를 담은 이정표를 만났다. 허브천문공원, 도시농업공원 이정표 방향으로 걷는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이정표에서 잔디공원 쪽으로 간다. 일자산 자락에 있는 공원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일자산 자락 공원 숲길을 거닐다
일자산 해맞이공원 잔디광장에 사람들이 제법 많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겨울 추위에도 공원에 나와 겨울을 즐기는 표정이다.
해맞이공원에서 도시농업공원, 강동그린웨이가족캠핑장, 허브천문공원이 차례로 이어진다. 허브천문공원까지 700m 조금 넘으니 공원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여유 있게 걷는다.
일자산 자락에 있는 도시농업공원.
도시농업공원 잔디밭에 누런 황소가 끄는 소달구지 조형물이 보인다. 옛날 시골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소달구지 뒤에도 펼쳐진다. 흙길 신작로 가에 줄지어 서 있던 미루나무 풍경이다. 미루나무 곁을 지나 산길로 올라가다 움을 맺은 목련나무를 보았다. 움마다 햇살이 빛난다. 엄마와 딸이 그 아래를 지난다. 엄마는 아픈 기색이 역력한 딸의 회복을 위해 딸의 걸음에 맞춰 걷는다. 오르막 숲길에서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딸 옆을 묵묵히 지키는 엄마의 등이 숲 같다. 강동그린웨이가족캠핑장을 지나 허브천문공원에 도착했다. 잘 꾸민 작은 공원이다.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햇볕 가득한 공원을 걷는다. 하늘과 땅을 잇는 해, 달, 별, 바람, 구름, 비, 서리, 눈 등 우주를 담고 있다는 설명이 적힌 안내판에 봄, 여름, 가을 풍경 사진도 있다. 겨울 지나 새봄에 피어날 생명을 상상하며 걸었다. 코로나19로 온실은 돌아볼 수 없었지만, 공원 한쪽 자작나무 군락과 그 앞 전망 좋은 곳에서 한참 머물렀다. 자작나무 군락을 배경으로 아주머니 두 분의 사진을 찍어드리기도 하고, 길을 묻는 사람에게 길을 안내해주기도 했다. 조금 더 있다가 길동생태공원으로 향했다.
길동생태공원 습지에 놓인 데크길을 따라 걷는다.
1999년에 문을 연 길동생태공원에는 2985종의 생물이 산다고 한다. 빼곡하게 자란 나무들이 하늘을 가렸다. 그 아래에 습지와 연못이 있다. 숲과 습지, 연못을 잇는 탐방로가 1.5㎞다.
정문을 지나 숲으로 들어가는 데크길로 걷는다. 습지와 연못으로 갈라지는 길에 이어 반딧불이 서식지를 지난다. 반딧불이 불 밝히는 계절을 상상하며 걷던 발걸음을 ‘아름다운 우리 꽃 화단’ 앞에서 멈췄다. 가는범꼬리, 털부처꽃, 민백미꽃, 윤판나물, 한라개승마, 수영, 태백기린초, 뻐꾹나리, 자주조희풀, 가침박달… 이름도 처음 듣는 우리 꽃의 사진과 이름이 새겨진 팻말을 꽃 대신 보았다. 정문으로 나가는 길, 숲속 초가지붕과 그곳으로 난 길이 어울린 풍경 앞에서 걸음이 저절로 멈춰졌다. 옛 시골 고향 마을 풍경이 그랬다.
고덕산을 걷다가 소나무 숲에 누워 쉬다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날, 해거름은 좀 남았지만 금세 햇살이 사그라질까봐 고덕산은 다음에 가기로 했다. 다음날도 쾌청했다. 아리수로에서 아리수로65길로 접어드는 길 어귀에 고덕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산이 낮고 흙길이라 산책하듯 걷는다.
겨울 숲의 매력 중 하나는 겨울나무가 만드는 풍경이다. 잎 떨어진 나무 굵고 가는 줄기와 가지들이 획을 긋고 선을 친다. 먹물 머금은 붓이 거침없이 지나간 자국 같다. 제 몸 비틀며 자란 나무줄기의 꺾인 곳, 줄기 밖으로 불거진 옹이는 붓을 멈춘 화선지에 번진 먹물 자국쯤 되겠다. 숲이 온통 수묵화다.
언덕에 의자가 놓였다. 따듯한 차를 마시는 한 남자의 시간이 그곳에서 멈췄다. 나뭇가지 사이로 숲 밖 풍경이 보인다. 자리를 조금 옮기면 시야가 트인다. 그 앞에 한강이 흐르고 강 건너편 경기도 구리시 땅이 펼쳐졌다.
함부로 보면 길섶의 바위 같은 돌이 고인돌이란다. 2003년 세종대박물관이 이곳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청동기시대에 사람들이 살던 흔적이다. 고덕산 남쪽 산기슭 마을의 옛 이름이 가재울(골)이다. 예로부터 가재가 많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고덕산은 이름 없는 낮은 산이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지는 역사의 격동기를 살았던 이양중이란 사람이 있었다. 고려시대 말기에 고려 조정에서 일했으나 새 나라 조선의 조정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관직 제수와 갖은 회유에도 고려에 충절을 지켰던 인물이다. 그가 은둔했던 산이 지금의 고덕산이다.
고덕산 정상 아래 소나무 숲이 좋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운동 삼아 올라오는 뒷동산 솔숲이다. 손뼉을 치며 맨손운동을 하는 아저씨, 등산복을 차려입고 바쁘게 걷는 아줌마들을 지나쳐 지팡이를 짚고 느릿느릿 걷는 할아버지 뒤를 따라 솔숲 계단에 올라선다. 고덕산 정상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한강이 보인다. 정상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산길을 내려간다.
고덕산 정상 남쪽에 소나무 숲이 있다. 등을 기대고 편히 누울 수 있는 의자가 솔숲에 몇 개 놓였다. 배낭을 벗고 의자에 누웠다. 빼곡하게 들어선 소나무들이 하늘을 가렸다. 솔숲 높은 공중에서 솔향이 내려와 몸을 감싼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