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쏙 과학

‘과학적 태도’ 확산될수록 ‘SDGs 해결 가능성’ 커진다

㉖ 과학책방 ‘갈다’에서 배우는 과학 문해력

등록 : 2022-02-17 16:15

크게 작게

교양과학책방 갈다의 이명현 대표(오른쪽)와 이미영 총괄디렉터.

‘갈릴레오’와 ‘다윈’의 앞글자 딴 ‘갈다’

이명현 대표와 110명 과학자 힘 합쳐

북토크·아카데미 열리는 공간 만든 곳

인기 떠나 ‘과학 문해력’ 높일 책 진열

‘일반인 교양’으로 알아야 할 과학지식

기후위기 등 해결 위한 중요성 높아져

과학책 읽고 서평 쓰면 실력 향상 도움


‘다큐·오디오·유튜브 활용’도 효과적

갈다 내부 전경.

서울 삼청동 국군서울지구병원 옆 좁은 골목에 자리 잡은 과학책방 ‘갈다’. 과학철학자인 장대익 서울대 교수가 과학자 ‘갈릴레오’와 ‘다윈’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옛집을 장남이자 천문학자인 이명현 작가에게 내줬고, 110명의 과학자와 출판인들이 돈을 모아 과학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북토크와 아카데미가 열리고 과학서평지 <시즌>(SEASON)이 나오는 곳이다.

이곳은 책 수집광에게 상당히 위험하다.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를 친구네 집보다 자주 드나들고 아무리 바빠도 <한겨레> 토요판 S의 ‘BOOK’(북) 세션은 꼭 찾아 읽는다 해도, 이전에 몰랐던 명저들의 빛나는 통찰을 귀로 듣고 새 책의 영롱한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게 되면 결국은 지갑을 열게 될 것이므로.

입춘을 넘겨 부드러워진 햇살이 빛나는 창가에는 ‘갈다가 주목하는 신간’들이 저마다 손바닥만 한 흰 종이를 얹고 있었다. 그 위엔 7~8줄짜리 추천사가 적혔다. “현실에 존재했던 진짜 미친 과학자를 보여준다”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질문의 가치는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답을 추구하는 것에 있다”는 <궁극의 질문> 등등.

<앞으로 100년, 인류의 미래를 위한 100장의 지도>는 몇 장 넘기다가 얼른 덮어버렸다. 지름신의 강림을 막으려. 그러나 눈은 이미 가격표를 확인한 뒤였다. 시각물의 아름다움이 가격의 부담감 대신 소유 욕망을 끌어올렸다. 1482년 복원된 프톨레마이오스 <지리학>의 지도, 어두컴컴한 저개발국과 별처럼 빛나는 개발국이 대비되는 지구의 밤 사진, 난민의 흐름을 붉은 실타래로 표현한 인포그래픽 등등.

몰랐던 책은 읽고 싶어졌고 서평으로만 알던 책은 갖고 싶어졌다. 이 얘기를 듣더니 ‘갈다’의 이미영 총괄디렉터가 “큰 서점에선 서가에 꽂혀 안 보였던 책들이 여기선 잘 보이게 진열돼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회심의 미소를 짓던 그는 다른 코너도 소개하겠다며 안내했다.

갈다 추천 어린이 책 코너.

어린이 코너로 가니 딸 생각이, 여성과학서 코너로 가니 ‘나부터 읽자’는 생각이 들었다. 주고 싶고 읽고 싶다고 다 살 수는 없는 일. 갈다에는 약 2900종 1만2천 권의 책이 있다. 잘 팔릴 만한 책을 잘 보이게 둔 대형서점들과 달리 이곳은 과학자와 과학 저술가들이 ‘좋은 책’이라고 여기는 책들을 잘 보이게 진열했다. 요즘 뜨는 용어로, ‘과학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책들이다.

갈다는 매달 북토크 등 각종 프로그램을 연다. 2월2일엔 SF <붉은 실 끝의 아이들> 출간 기념 전삼혜·김보영 작가의 북토크가 열렸다.

문해력(文解力)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렇다면 과학 문해력은 과학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일까? 이명현 갈다 대표는 시대적인 맥락 속에서 과학 문해력의 뜻을 설명했다.

“사이언스 리터러시(Science Literacy) 즉 과학 문해력은 일반인이 핵심 교양으로서 알아야 할 과학 지식입니다. 기후위기 등 21세기의 많은 문제가 과학기술로 인해 촉발된 만큼 그것을 해결하려는 시민들한테도 과학 지식과 과학적 태도가 필요해졌습니다.”

이 대목에서 그가 낸 퀴즈를 풀어보자. 유네스코(UNESCO)라는 유엔 전문기구가 있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하면서 최근 언론에서 많이 언급된 이름이다. 이 이름에 들어간 ‘에스’(S)는 무슨 뜻일까? 그가 힌트를 줬다.

“유네스코의 첫 출발이 교육과 과학이었어요. 생물학자 줄리언 헉슬리가 초대회장이었고요.”

눈치챘을 것이다. 답은 ‘과학적’(Scientific)의 S. 이 기구의 전체 이름은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The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다. ‘세계인 간 교육적, 과학적, 문화적 관계를 통해 세계 평화와 인류 공동의 복리라는 목적을 촉진하기 위해’ 1945년 창설됐다.

유엔이 세계 평화와 인류 공동의 복리를 촉진하기 위해 왜 교육, 문화뿐 아니라 과학적 관계도 필요하다고 본 걸까. 그는 “국제연합이 2030년까지 국제사회가 해결해야 할 최대 공동목표로 세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17가지를 살펴보면 어느 것 하나 과학과 관련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세계시민이 17대 과제를 해결하려면 과학을 알아야 합니다. 기후위기, 에너지, 환경오염, 물 문제, 생물 다양성 같은 지구 환경문제를 자각하고 해결하려면 과학 문해력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빈곤, 질병, 교육, 성평등, 난민, 분쟁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 해도 과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과학과 기술의 적용이 필수적이고요.”

과학 문해력과 함께 그는 사이언티픽 리터러시(Scientific Literacy), 즉 과학적 태도를 고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시행할 때도 쓰는 용어인데, 한국의 교육학자들은 ‘과학적 소양’이라고 번역했다.

OECD에 따르면, 과학적 소양이란 ‘교양 있는 시민으로서 과학 관련 문제와 과학적 아이디어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이다. 현상에 대한 과학적 설명, 과학 탐구의 평가·설계, 자료와 증거의 과학적 해석 등 세 가지 역량이 요구된다고 한다.

이보다는 사이언티픽 리터러시를 ‘과학적 태도’라고 설명한 이 대표의 말이 좀더 가깝게 와닿았다. 그는 “과학적 태도란 내 감정, 내 욕망보다는 상식과 논리 체계를 먼저 보는 것이며 나를 넘어서 가족, 사회, 지구까지 인식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이 교양이자 문화로 자리잡으면 누구나 과학적 인식론으로 사고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독서를 통해 과학적 지식을 습득했다면, 또 과학적 태도를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과학적 인식론을 얻었다면 과학적 소양을 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삼청동 교양과학책방 갈다 전경.

스토리텔링으로 과학을 배워 ‘유레카’는 아는데 ‘부력’의 원리는 잊은 아이들, 과학기술로 각종 사회환경 문제를 만들어내면서 해법은 이끌어내지 못하는 어른들 모두에게 필요한 게 과학적 소양이겠다. 그래서 갈다에서 나올 땐 빈 배낭을 꽉 채웠다. 아름다운 과학책들로.

글·사진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과학 문해력 높이는 법

과학은 다른 분야에 비해 변화 속도가 빠르다. 과학책을 읽을 때 인터넷으로 과학용어사전이나 위키피디아 같은 백과사전을 이용해 최신 정보를 찾아보라.

과학책은 대체로 장마다 독립성을 유지한다. 여기저기 펼쳐서 읽고 싶은 부분부터 보다가 어려우면 몇 장을 건너뛰어도 된다. 정독보다는 완독을 목표로 삼아라.

오디오북, 다큐멘터리, 동영상 강의, 저자의 북토크 등 비독서 행위를 과학책 독서에 적극 활용하라. 독서의 본질은 내용을 잘 이해하고 소양을 기르는 것이다. 비독서 행위는 독서를 도울 수 있다.

과학책 전문 출판사의 유튜브 채널, 과학 크리에이터들의 과학책 소개를 참고하라. 과학자들도 인정하는 탄탄한 콘텐츠가 많다.

과학책을 읽고 서평을 쓰거나 토론에 참여하라. 책을 읽으면서 질문을 만드는 과정은 과학적 사고를 기르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발췌·정리: <복잡한 세상을 횡단하여 광활한 우주로 들어가는 사×과×책>, 문병철·이명현 지음, 도서 출판 유영 펴냄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