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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동 계곡.
북한산 지맥, 계곡에서 끊긴 듯하지만
또다시 백악산·인왕산으로 되살아나
겨울나무, 매운 꽃샘추위에 숨죽여도
감췄던 새잎, 새봄이면 푸르게 돋아나
굽이굽이 산골짜기 산비탈에 빼곡하게 들어선 집과 건물, 도로를 다 지우면 산줄기가 끊어지는 곳이 없다. 물길을 만난 산줄기는 물밑으로 지맥을 흐르게 하고 물 건너편에서 다시 산을 일으킨다. 북한산, 백악산(북악산), 인왕산이 놓인 형국도 그렇다. 그 산기슭에 있는 고목을 보고 숲길을 걸었다. 겨울보다 혹독한 꽃샘추위였지만 마음은 벌써 봄이었다.
북한산 남쪽 기슭 주택가의 고목들, 그리고 백악산(북악산) 북쪽 기슭 소나무 북한산과 인왕산이 만나는 홍제천 세검정 부근, 북한산 기슭 종로구 구기동 40번지 300년 넘은 느티나무를 찾아가던 날 꽃샘추위가 겨울 한파보다 심했다. ‘봄바람은 임바람’이라는 옛말처럼 품으로 파고드는 꽃샘추위에 옷깃을 여민다.
북한산 남쪽 기슭 주택가의 고목들, 그리고 백악산(북악산) 북쪽 기슭 소나무 북한산과 인왕산이 만나는 홍제천 세검정 부근, 북한산 기슭 종로구 구기동 40번지 300년 넘은 느티나무를 찾아가던 날 꽃샘추위가 겨울 한파보다 심했다. ‘봄바람은 임바람’이라는 옛말처럼 품으로 파고드는 꽃샘추위에 옷깃을 여민다.
북한산 남쪽 기슭 종로구 신영동 주택가 느티나무 고목.
빌라 단지 작은 놀이터 가운데 우뚝 선 느티나무 고목 뒤로 북한산 줄기까지 훤히 보인다. 쇠기둥이 받친 늙은 가지 둘레에 놀이기구가 몇 개 있다. 오랜 세월 이곳을 지키고 있는 나무도, 시소와 그네, 미끄럼틀도 봄처럼 활짝 웃는 아이들을 기다리며 꽃샘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300년 느티나무에서 남동쪽으로 직선거리 250m 정도 되는 곳, 종로구 신영동 주택가에 290년이 다 돼가는 느티나무가 있다. 조용한 주택가 골목에 우뚝 솟은 느티나무의 사연을 알 길 없었으나, 고목의 존재만으로도 까닭 없이 동네가 넉넉해 보였다.
엇비슷한 수령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는 북한산 남쪽 산기슭은 홍제천과 만난다. 물을 건넌 지맥은 산줄기를 밀어 올려 백악산(북악산)을 세운다. 백악산 북쪽 비탈면 평창동 248번지에는 300살을 바라보는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나무 줄기라도 쓰다듬고 싶었지만 사유지라서 접근하지 못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만 봐야 했다.
소나무 고목이 있는 곳은 백악산 북쪽 백석동천 백사실계곡 부근이기도 하다. 소나무 고목과 백사실계곡 사이 낮은 고개를 넘는 숲속 오솔길이 부드럽고 아기자기해서 걷기 좋다.
예로부터 백악산 계곡은 물 맑기로 잘 알려졌다. 백악산 북쪽에 있는 백사실계곡에는 지금도 1급수에서만 산다는 도롱뇽이 산다. 남쪽 기슭에는 물도 맑고 경치도 아름다웠던 삼청계곡이 있었다. 도시화로 인해 삼청계곡의 옛 풍경은 거의 다 사라졌다. 사라지지 않은 옛 삼청동의 흔적 중 하나가 바위절벽에 새겨진 ‘삼청동문’이라는 글자다.
백악산 남쪽 삼청계곡의 숲과 느티나무 고목 조선시대에 삼청동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표시했던 ‘삼청동문’이라는 글자는 국무총리 공관 맞은편 바위절벽에 새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빼곡하게 들어선 집들과 상가건물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옛 삼청계곡의 아름다운 풍경을 짐작할 수 있는 실화가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삼청계곡 출입을 금지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당시 사대부집 부인들이 이를 어기고 계곡 나들이를 즐겼다가 관아에 끌려간 일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풍경이 사라졌지만 삼청공원이 있어 숲의 향기를 느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삼청공원을 찾았던 날도 꽃샘추위가 매서웠다. 종로11번 마을버스 종점에서 내려 삼청공원 서쪽 삼청테니스장을 지나 데크로 만든 길을 걷는다. 길 오른쪽에 계곡이 보인다.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다. 곳곳에 웅덩이처럼 고인 물이 있다. 계곡 건너편 바위절벽은 몇 해 전 봄에 왔을 때 붉은 진달래가 피었던 곳이다. 새봄이 오면 물가 나무에도 연둣빛 새순이 돋을 것이다. 옛 모습 그대로의 삼청계곡은 아니겠지만, 바위절벽에 울긋불긋 꽃 피고 물가 나무에 푸른새잎이 나던 몇 해 전 봄 계곡도 좋았다.
돌아가는 길에 삼청파출소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서 140m 정도 거리에 있는 250년 넘은 느티나무를 찾았다. 나무가 있는 곳은 삼청동문 밖이지만 삼청동 언저리에서 사는 느티나무 고목을 보며 아름다웠던 옛 삼청계곡을 상상해보았다.
삼청동 거리에서 큰길로 나와 경복궁 서쪽 사직단으로 걸었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물의 신인 직(稷)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조선 태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길 때 사직단을 가장 먼저 설치했다. 농사가 천하의 근본이었던 시절, 백성 모두가 밥 걱정 없이 살기를 바라는 나라의 가장 큰 염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부속건물도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강제로 제사를 폐지하고 부속건물을 철거한 뒤 공원을 만들었다. 사직단 대문은 지금도 남아 보물로 지정됐다.
사직단 향나무 고목을 보고 인왕산 숲길을 걷다
사직단 앞 건널목 한쪽에 250년 넘게 그자리를 지키는 향나무가 있다. 조선시대에 농사와 관련된 제단은 동대문구에도 있다. 동대문구 제기동 선농단은 조선시대에 임금이 참석해서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그곳에도 500살 넘은 향나무가 있다. 선농단과 사직단의 향나무는 제사를 지낼 때 향을 피우기 위한 재료로도 쓰였겠지만, 언제나 푸르게 오래도록 사는 향나무의 기상이 그곳에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겼을 것이다.
사직단 대문과 200년 황철나무.
사직단을 보고 나오는 길에 사직단 대문 옆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200년 정도 된 황철나무다. 종로구에서 선정한 아름다운 나무 중 하나다. 황철나무를 뒤로하고 사직단 담장을 오른쪽에 두고 걷는다. 모퉁이를 돌아서 200m 정도 가면 고조선의 시조인 단군왕검을 모신 단군성전이있다. 그 길로 계속 걸으면 대한제국 시절 궁술을 연마하던 황학정 터가 나온다. 원래 이곳은 조선시대에 무사들이 궁술을 연습하던 등과정이 있던 곳이다. 등과정 터를 알리는 푯돌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인왕산 숲길로 접어드는 입구다.
조선시대 무사들이 궁술을 연마하던 등과정 터.
인왕산 숲길은 이곳부터 윤동주문학관까지 이어지는 2.5㎞ 숲길이다. 멀리서 보는인왕산은 온통 바위산인데, 그 산기슭에 난숲길은 인왕산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인왕산 숲길에서 처음 만난 곳은 택견수련 터다. 대한제국 때 택견을 배우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모여 수련도 하고 기량도 겨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택견 금지령을 내렸지만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그 맥이 이어졌다. 택견은 1980년대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인왕산 숲길에 있는 택견수련터.
택견수련터는 지금은 산 아랫마을 사람들이 올라와 운동하는 곳이자 쉼터이고 놀이터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돼 보이는 두 아이와 엄마 아빠가 숲속 오솔길에서 택견수련터로 오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은 나뭇가지를 손에 쥐고 뛰어다니며 숲속을 누빈다. 오래전부터 엄마 아빠를 따라 이 숲을 다녔나보다. 숲에서 뛰어노는 모습이 익숙해 보인다.
수성동 계곡 이정표를 따라 발길을 옮긴다. 도롱뇽 서식지를 만났다. 1급수 지표종이자 서울시 보호종인 도롱뇽을 아껴달라는 안내판 옆에 작은 웅덩이가 있다.
오르내리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숲길이아기자기하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인왕산의 바위 능선이 보인다. 길은 이내 수성동 계곡에 닿았다. 숲을 울리는 계곡 물소리가 좋아 수성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절벽과 절벽 사이에 돌다리가 놓였다. 서울시 기념물 기린교다.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등장한다. 암반바위, 절벽과 절벽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 소나무숲이 어울린 풍경이 인왕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안평대군이 살던 곳이다.
윤동주문학관 쪽으로 이어지는 인왕산숲길에서 벗어나, 옥인동 산비탈 마을 꼭대기로 발길을 옮겼다. 집채보다 큰 비탈진 바위절벽에 새겨진 옥류동이라는 글자를 찾아간 것이다. 공사 중이라 바위에 새겨진 옥류동 글자를 볼 수 없다. 이곳이 인왕산의 절경 옥류동 계곡이 있던 곳이다. 공사가 끝나면 다시 오기로 하고 골목길을 따라 옥류동을 내려갔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