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숲에서 길을 헤맸다, 그것조차 숲이라서 좋았다

㊷ 서울 한강 이북 서쪽의 시루봉, 봉산, 앵봉산 숲을 걷다

등록 : 2022-01-2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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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 편백나무 숲. 푸른 숲과 도시의 풍경이 대조적이다.

산은 얕지만 숲속 오솔길 여러 갈래다

오랜 세월 사람들 다닌 흔적이 만든 길

산신제 제단 옆의 오래된 우물 안에선

옛날이야기 샘처럼 샘솟을 것 같았다

봉산과 앵봉산 줄기가 서울 한강 이북 서쪽에 솟아 남북으로 흐른다. 산줄기 동쪽은 서울이고 서쪽은 경기도 고양시다. 그 산줄기를 걸으며 만난 팥배나무 군락지와 편백나무 군락지는 숲속의 숲이다. 팥배나무 가지에 앉은 새들, 편백나무 숲 오솔길을 뛰어가는 강아지도 명랑하다. 시루봉 숲속을 거닐다 놀란 건 숲속의 우물 때문이었다. 옛날에 인기 많았던 드라마 <전설의 고향>의 한 장면 같았다.

숲속에 우물이 있는 이유

은평구 증산로9길 44-28은 시루봉(반홍산) 산기슭 꼭대기 집이다. 좁은 골목을 벗어나면 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으로 올라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들어온 건 숲속의 우물이었다.


아니! 이런 숲속에 우물이라니…. 옛날에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 나올 것 같은 장면에 적잖이 놀랐다. 그러면서도 반가웠다. 무슨 옛날이야기가 샘에서 샘솟을 것 같아서였다. 샘 옆 작은 소나무 숲에는 돌로 만든 제단이 있었다. 우물과 소나무 숲속 제단을 보며 이곳에 전해지는 옛날이야기를 짐작해보았다.

이곳은 수백 년 전부터 산신제를 지내던 곳이었다. 시루봉과 삼각산의 산신을 모시고 동네의 액운을 물리치고 동네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제를 올렸다고 한다.

시루봉 산신제단 옆 옛 우물.

우물은 제단이 있는 소나무 숲 바로 옆에 있다. 예로부터 이 우물물로 밥을 지어 제단에 올렸다. 1990년대 초반까지 산신제에 올릴 밥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현재는 우물물을 먹지 못하게 됐지만 수백 년 동안 이어오는 산신제의 전통을 알리기 위해 우물을 그대로 둔 것이다. 예전에 우물 턱은 지금보다 낮았다. 우물 주변에 돌을 낮게 쌓아 턱을 만들었는데 안전을 위해 턱을 더 높게 쌓고 뚜껑도 만들어 덮었다.

1960년대 서부이촌동에 물난리가 났을 때 수재민들이 현재 수색동 대림아파트 부근에 정착하게 됐는데, 그 사람들이 이 우물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한다.

서울 한강 이북 서쪽에 솟아 남북으로 흐르는 봉산과 앵봉산의 이름에 묻힌 시루봉은 이렇게 마을 사람들의 생활과 하나 되는 공간이었다.

제단이 있는 소나무 숲과 옛 우물터를 뒤로하고 오솔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간다. 봉산 능선에 난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산기슭 마을 사람들이 오랜 세월 다니다보니 숲속 오솔길이 여러 갈래다. 길을 헤매기도 했지만 숲이라서 그것도 좋았다.

팥배나무 군락지, 편백나무 군락지

시루봉은 봉산 줄기 남쪽 끝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있다. 그곳에서 봉산 능선길로 접어들어 북쪽으로 걷는다.

봉산과 앵봉산은 서울둘레길 7코스가 지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평일인데도 오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서울둘레길 구파발역 방향 이정표를 따라가다가 갈림길을 만났다. 팥배나무 군락지를 가리키는 쪽으로 걸었다. 돌탑이 있는 빈터에서 시야가 트인다. 산 아래 마을부터 멀리 북한산 능선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그곳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팥배나무 군락지다.

봉산 팥배나무 숲에 놓인 데크길.

은평구 신사동 산 93-16 일대는 봉산 생태경관보전지역이다. 이곳에 자생하는 팥배나무 숲이 있다. 팥배나무는 참나무와 생육 경쟁에 밀려 대규모 군락을 이루기 쉽지 않은데, 이곳 팥배나무 군락은 5천㎡ 정도로 서울의 다른 팥배나무 군락보다 넓다고 한다. 팥배나무 군락은 봉산 산기슭 40도 넘는 경사진 비탈에 있다. 그 산비탈에 데크길을 만들어 편하게 걸으며 팥배나무 군락을 볼 수 있게 했다.

산비탈 눈밭 위 빼곡하게 자라는 팥배나무 가지에 빨간 열매가 남았다. 새 두 마리가 날아와 높은 가지에 앉는다. 열매를 쪼더니 금세 날아간다. 숲 위 하늘을 맴돌던 새들은 다시 숲으로 돌아와 앉는다. 새소리가 팥배나무 숲에 명랑하게 퍼진다.

팥배나무 군락을 지나면 길은 서울둘레길 7코스와 다시 만난다. 걷기 좋은 숲길을 따르다보면 편백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2014년부터 5년 동안 12만㎡의 편백나무 숲을 만들었다. 숲을 만든 지 얼마 안 돼 나무들은 아직 어리다. 편백나무 숲을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편백나무 숲이 앙상한 겨울 숲을 푸르게 물들인다. 멀리 북한산, 백련산, 안산이 보인다. 안산 뒤로 남산의 서울엔(N)타워가 솟았다. 한강 건너편 관악산도 눈에 들어온다. 통쾌한 전망을 감상하고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어린 편백나무지만 숲을 이룬 모습이 싱그럽다. 편백나무 숲 오솔길이 발길을 이끌었다. 어디까지 어떻게 오솔길이 이어지는지도 모르고 그저 길이 이끄는 대로 걸었다. 간혹 숲을 걷는 사람들을 만났다. 아주머니와 함께 나온 강아지가 목줄이 더는 늘어나지 않을 때까지 편백나무 숲 오솔길을 뛰어간다. 그 표정이 참 맑다.

봉산 너머 앵봉산 너머

편백나무 군락지 전망대를 뒤로하고 봉산 정상으로 걷는다. 봉산을 봉령산이라고도 하는데, 산꼭대기에서 좌우로 뻗은 산줄기가 봉황이 날개를 편 형국에서 유래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봉산 꼭대기에 봉수대가 있었다. 꼭대기 넓은 터 주변을 돌며 전망을 즐긴다. 동쪽으로 북한산, 백악산(북악산), 인왕산, 남산, 백련산, 안산, 청계산까지 시야가 트인다. 서쪽으로 펼쳐진 풍경에 망월산, 개화산, 행주산성, 계양산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하늘공원, 노을공원 풍경이 열린다.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3·1 만세운동 당시 마을 사람들이 봉산 꼭대기에 올라 횃불을 밝히는 것으로 만세 운동을 펼쳤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길은 다시 숲속으로 들어간다. 가파른 내리막길에 눈이 남았다. 조심스레 계단을 밟으며 내려간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데크길을 만났다. 그쪽으로 걸으면 서오릉에 있는 숙종과 인현왕후가 묻힌 명릉의 능침사찰인 수국사가 나온다. 다른 길은 서오릉 고개로 가는 길이다. 그 길은 앵봉산으로 이어진다. 그 갈림길에서 잠시 쉬며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눈 쌓인 겨울 숲, 앙상한 가지 빼곡하게 들어선 나무들 사이 계단 길이 마음에 남는다. 해거름에 앵봉산은 내일 가기로 하고 수국사 쪽으로 내려갔다.

다음날도 날은 맑았지만 미세먼지가 심했다. 서오릉 고개와 구파발역 사이 앵봉산 산길을 걷는다. 구파발역에서 앵봉산으로 향했다. 거대한 굴뚝이 있는 건물 옆 도로로 걸어서 산기슭 공원으로 접어들면서 앵봉산 산길은 시작됐다. 산이 낮아 오르막길도 짧다.

앵봉산 산길 쉼터. 하늘로 가지를 뻗은 나무 아래 의자가 놓인 풍경이 잠시 쉬게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능선에 올라서서 걷는다. 촘촘하게 들어선 나무들이 장벽을 만들었다. 그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오르내리는 산길, 숨이 찰 때면 의자가 놓인 쉼터가 나온다. 제멋대로 자란 나뭇가지가 파란 하늘에 수묵화를 그렸다. 그 아래 긴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른다.

앵봉산 정상 바로 아래 전망대가 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망망하게 펼쳐진 풍경을 보며 숲속의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앵봉산 자락이 서쪽으로 넓게 퍼지며 멀리서 도시와 만난다. 풍경의 끝은 미세먼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앵봉산에서 서오릉 고개 위 생태통로를 지나면 봉산이다. 봉산 숲길 초입에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있다. 그 앞에서 앵봉산을 돌아보고 봉산 숲으로 들어갔다.

앵봉산 정상을 넘어 이어지는 숲길은 고양시 서오릉과 경계를 이루며 계속 이어진다. 그 길 끝에 서오릉 고개가 있고, 도로 위 생태통로를 지나면 봉산이다. 생태통로 지나 봉산으로 올라가는 길 초입에 윤동주 시인의 시 ‘새로운 길’을 새긴 시비가 있다. 시비 앞에서 앵봉산을 돌아봤다. 그리고 다시 봉산으로 향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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