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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생태공원 한강관찰데크에서 본 풍경. 늪지대 앞에 손바닥만한 백사장과 언 강물이 보인다.
되살아난 16만㎡ 규모 암사생태공원
멸종 위기인 동물 삵도 발견됐다 한다
겨울 숲 사이로 휑한 바람 불어와도
아이들 놀며 그린 그림 전시 따뜻하다
한강 개발 때 쏟아부은 콘크리트를 걷어낸 곳에 자연이 되살아났다. 암사생태공원과 고덕수변생태공원 숲길을 걸으며 복원된 자연을 보았다. 은파금파 빛나는 여울과 강가의 가래나무숲이 아름다워 마을 이름이 가래여울마을이 됐다는 그곳은, 옛 풍경은 사라지고 전해지는 이야기만 남았다. 후대에 마을 어귀에 심은 가래나무가 있어 마을의 맥을 잇고 있다.
양버들나무를 보며 옛 기억을 떠올리다
요정의 숲, 천호동 공원 어떤 나무줄기에 달린 팻말에 적힌 이름이다. 유리창 모양의 작은 장식품 몇 개가 팻말 아래 걸려 있다. 창틀 위에 앉은 작은 인형이 이곳에 사는 요정인가보다. 누군가의 상상이 빈 가지 겨울나무 차가운 공원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다른 나무에는 파랑새가 사는 둥지를 만들어놓았다. 파란 몸의 파랑새는 붉은 부리로 희망을 노래하는 듯했다.
운동하던 아줌마들이 카메라 렌즈가 향한 곳을 보더니 “저기에 파랑새가 있었네!”라며 웃는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에 매달린 여러 가닥의 길고 하얀 천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은 길고 하얀 천이 넘실대는 모양으로 왔다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는 소리가 되기도 했다.
운동하던 아줌마들이 카메라 렌즈가 향한 곳을 보더니 “저기에 파랑새가 있었네!”라며 웃는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에 매달린 여러 가닥의 길고 하얀 천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은 길고 하얀 천이 넘실대는 모양으로 왔다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는 소리가 되기도 했다.
광나루 한강둔치에 양버들나무가 줄지어 섰다. 옛 추억 속 신작로에 있었던 그 나무들 같았다.
장기 두는 아저씨들, 우두커니 앉아 있는 할아버지들을 비추는 건 따듯한 햇살이었다. 주먹인사로 오늘의 첫 안부를 묻는, 이제 막 공원에 나온 아저씨와 그를 반기는 사람들의 환한 웃음 덕에 공원에 생기가 돈다.
천호동 공원을 뒤로하고 천중로를 걸어 한강 둔치에 도착했다. 한강드론공원 앞 길가에서 추억의 풍경을 보았다. 하늘 높이 삐죽하게 자란 나무들이 먼 곳까지 줄지어 이어지며 소실점을 만들었다. 옛 시골 고향 마을 신작로에서 보았던 가로수의 풍경이 추억으로 가는 길을 인도했다.
흙먼지 날리는 신작로를 걸으며 고개를 한껏 젖혀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하게 치솟은 나무 꼭대기까지 올려다보던 얼굴을 비추던 건 쏟아지는 햇볕이다. 눈살을 찌푸리며 햇볕을 피해 바라본 길바닥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땅에서 땅으로 번지는 억세고 푸른 질경이의 생명력을 보았다. 돌아보니 어린 나이였지만 마음에 굵은 힘줄이 생겼던 것 같다.
한강드론공원 앞 그 나무들은 양버들나무라고 공원을 안내하는 사람이 알려줬다. 추억 속 신작로 가로수를 그때 어른들은 미루나무라고 일러줬었다. 추억 속의 나무가 미루나무였는지 양버들나무였는지 지금은 알 길 없다. 살아가며 마음 팍팍해질 때 보듬어주는 게 추억이라면, 추억 속 그 나무가 양버들나무였더라도 미루나무라고 여기고 싶었다.
소리로 숲을 보다
길은 암사생태공원으로 이어진다. 한강 개발 때 쏟아부은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16만2천㎡ 규모로 만든 생태공원이다. 새봄이 오면 붉고 흰 꽃으로 생명의 짙은 향기를 퍼뜨릴 서양수수꽃다리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그 뒤로 참느릅나무, 좀작살나무, 찔레나무, 뽕나무, 매실나무, 세로티나벚나무가 오솔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멸종 위기 동물인 삵이 암사생태공원에서 발견됐다는 글이 적힌 안내판 옆 숲은 어린이들이 노는 놀이터다. 휑한 바람 불어가는 겨울 숲에 그동안 이 숲을 다녀간 아이들이 색칠한 그림을 걸어놓았다.
한강관찰데크로 가는 길에 나무가 빼곡하다. 강기슭 늪 앞에 손바닥만한 모래밭이 보인다. 개발 이전 자연 그대로의 한강 백사장이다. 강가의 물이 얼었다. 언 강물을 지나는 찬 바람이 빈 숲으로 불어간다.
조선시대 구암서원 터.
강가 자전거 길을 따라 동쪽으로 간다. 멀리 언덕 위에 정자와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조선시대 구암서원 터다. 구암서원은 고려시대 말기에 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이집, 고려가 망한 뒤 새 나라 조선의 관직에 나가지 않고 고덕산에 은거하며 고려에 충절을 지켰던 이양중 등을 배향했던 곳이다. 백제시대에는 백중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구암정이라는 정자와 소나무 몇 그루가 그 터를 지키고 있다.
구암서원 터 동쪽에는 고덕수변생태공원이 있다. 정문으로 들어가서 화장실 앞을 지나 숲길로 들어선다. 고덕천과 한강이 만나는 곳, 콘크리트 옹벽 아래 물가에 새 한 마리가 앉았다. 깝짝도요 아니면 삑삑도요 같다고 공원을 관리하는 사람이 일러줬다. 원래 나그네새였는데 토착화됐단다. 그들과 함께 걷던 숲길에서 만난 건 되새였다. 나뭇가지에 앉아 ‘삐쭝삐쭝’ 소리를 내더니 금세 ‘파르락’ 날아간다.
고덕수변생태공원에서 본 새.
공원 숲에서 들리는 소리를 얇은 나무 도막과 천에 새긴 설치물을 만난 건 조류관찰대가 있는 숲 오솔길이었다. 2021년 6월부터 9월까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들은 소리를 모은 것이다. 공원 숲의 새소리, 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 고라니 소리, 한강 물소리, 나뭇잎 소리, 바람 소리, 심지어 공원 숲 밖의 인공의 소리까지 적었다.
‘쓰르르, 삐-삐, 사그락, 사륵사륵, 스슥 지지지지, 또르르르, 찌르르, 퍼러럭, 짝짝짜악, 애애애앵, 스꼬잉, 째째부리 찍, 찌삐찌삐, 피룔료료, 새새새새...’ 소리를 읽으며 숲을 본다.
한강의 여울과 가래나무가 있던 가래여울마을 이야기
고덕수변생태공원 숲과 한강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적어 놓은 설치물 앞에 쉽게 볼 수 없는 두충나무숲이 있다. 작은 동산 위에 두충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찼다. 생태공원이 들어서기 전 이 숲의 주인이 두충나무를 심어 관리하던 곳이다. 두충나무 껍질은 약재로 쓰인다. 당시 숲 주인은 사람들이 두충나무 껍질을 벗겨갈까봐 나무줄기를 철조망으로 묶어놓았다고 한다. 생태공원을 만들면서 두충나무 동산을 그대로 두기로 하고 나무껍질을 감쌌던 철조망을 제거했다.
은행나무 숲 아래는 지난가을에 떨어진 은행잎이 수북하다. 관리사무실 방향 이정표 쪽으로 걷는다. 짧은 쥐똥나무 터널을 지난다. 생태공원을 나서는 사람들을 배웅하는 건 야생동물 먹이 공급대에 매달린 땅콩과 감이었다.
가래여울마을 유래비 옆에 있는 가래나무.
가래여울마을은 서울 한강 남단 동쪽 끝 마을이다. 그 경계를 경기도 하남시와 나누고 있다. 게가 서식하던 게내 아래쪽에 있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하일동이었는데 강일동으로 이름을 바꿨다. 가래여울마을은 강일동으로 묶인 자연마을 중 하나다. 예로부터 한강 여울 가에 가래나무가 많아서 가래여울마을이라고 불렀다.
가래여울마을은 남평 문씨 집성촌이었다. 예전에 그곳에서 만난 남평 문씨 후손에게 마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강동대교가 놓인 곳에 여울이 있었다. 한강 북쪽은 경기도 구리시 돌섬이었다. 수위가 낮아지면 걸어서 여울을 건너 돌섬까지 오갔다. 마을 앞 한강 가 백사장은 미사리까지 이어졌다. 노 젓는 나무배를 타고 뱃놀이도 했다. 덕소, 금곡, 광주 등지에서 우시장이 서는 날이면 사람들이 소를 사서 배에 싣고 이 마을 나루에 내리기도 했다. 그들이 쉬어가던 주막이 현재 감나무집 부근이었다.
지금은 나루도 없어지고, 여울도, 옛 가래나무 군락도 다 사라졌다. 몇 년 전 남평 문씨 후손을 만났던 마을 가게 앞 버드나무도 없어졌다. 다만 가래여울마을의 맥을 잇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가래나무를 몇 그루 심었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을 유래비 옆에 서서 마을을 지키는 가래나무를 보았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