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숲길과 쉬고 싶은 숲길, 모두 ‘봄’을 품었다

가만히 꽃을 보니 봉오리 터지는 순간

그 기운이 소리 없는 온 산천을 울린다

작은 나무, 잎 내밀어 꽃들과 어울리고

큰 나무, 빈 가지 뻗어 마음으로 반긴다

하루가 다르게 숲의 풍경이 바뀐다. 산천에 아무렇게나 자라는 개나리, 진달래, 매화, 산수유가 앞다퉈 봉오리를 터뜨린다. 가만히 꽃을 보면 봉오리가 터지는 순간의 기운이 소리 없는 총성으로 온 산천을 울리는 것 같다. 봄 숲의 생동을 느끼러 길을 나섰다. 서울시 동작구 까치산에서 관악구 관악산까지 숲길이 이어진다. 낙성대 지나 청룡산까지 걸었다.

매화가 반기고 진달래가 인사하는 동작구 까치산 숲길

사당역에서 연주대로 가는 관악산 등산길은 바위 능선 구간이 많아 시야가 잘 트인다. 고도를 높인 뒤 뒤를 돌아보면 관악산에서 시작된 푸른 숲이 한강까지 닿은 형국을 볼 수 있다.

관악산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동작구 까치산으로 이어지고 까치산 산줄기는 북으로 흐르다 아파트 단지 때문에 잠시 숲을 잃지만, 이내 생태통로로 서달산과 연결된다. 국립서울현충원을 품은 서달산의 북서쪽 숲길은 노들역에서 끝난다. 노들역 노들나루공원 앞이 한강이다. 북동쪽으로 난 숲길은 동작역에서 끝난다. 동작역 역사 아래 반포천이 한강으로 흘러든다.

그러니까 서달산과 까치산 사이 아파트단지 도로만 빼면 한강부터 관악산까지 숲길로 연결된 셈이다. 그 숲길 중 까치산에서 관악산으로 연결되는 구간을 걸었다. 솔밭로로 끊어진 까치산을 잇는 솔밭로생태다리에서 출발했다.

솔밭로에서 솔밭로생태다리로 올라가는 길 초입에 커다란 매화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다. 빈 가지 가득한 숲에 홀로 꽃을 피운 매화나무 앞에 머물렀다. 개나리꽃도 아무렇게나 피었다. 가꾸지 않은 매력이 순수하다.

솔밭로생태다리를 건너다 또 멈췄다. 동작구 사당동과 관악구 봉천동을 잇는 솔밭로, 옛 이름 원당고개를 굽어본다. 조선시대에 땅의 소유권을 두고 분쟁이 있었는데, 고을 원님이 원당고개에 직접 나와서 살펴보고 서로 불만 없이 땅을 나눠 가지도록 판결했다고 해서 원당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작은 나무에 푸른 잎이 돋는다. 꽃들은 작은 나무와 어울려 피었다. 큰 나무들은 빈 가지다. 빈 가지 사이로 관악산과 삼성산 능선이 보인다. 이 숲길만 따르면 도로를 걷지 않고 숲길만 걸어서 관악산도 가고 삼성산도 갈 수 있다.

능선 숲길이 넓은 흙길이라 걷기 좋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이 빈 가지 촘촘하게 엮은 숲길은 보기만 해도 걷고 싶다. 산비탈에 드문드문 진달래꽃이 피었다. 돌무지를 지나 ‘연주대 4.9㎞’라고 적힌 이정표를 만났다. 산 아랫마을 사람들이 쉬고 운동하는 작은 마당 한쪽에 매화꽃이 피었다. 누군가는 훌라후프를 돌리고 누군가는 따듯한 봄 햇살 받으며 앉아 책을 읽는다. 북카페라고 적힌 책을 보관하는 시설이 있어 누구나 책을 꺼내 보게 했다.

관악산 둘레길 커다란 소나무가 있는 쉼터, 그리고 전망대

숲길 옆 그루터기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에 앉았을까? 내리막 계단 옆 이제 갓 핀 진달래가 숲속 놀이터 아이의 얼굴에 겹쳐진다.

까치산과 관악산을 잇는 관악까치생태다리를 건너 관악산으로 접어들었다. 관악산 둘레길이 시작된다는 이정표를 지나 개나리꽃 피어난 목책길을 걷는다. 갈림길 이정표에 인헌시장 800m, 남현먹자골목 1㎞라고 적혔다. 일상이 가득한 생활공간에서 멀지 않은 숲길이다. 편안한 차림에 빈손으로 숲길을 걷는 사람들은 아마도 산 아래 살 것이다. 이 숲길을 걷는 것도 그들의 일상 중 하나일지도 모를 일이다. 작은 소나무숲을 그냥 지나친다. ‘관악산 가는 길 쉼터’에 있는 나무로 만든 조형물들을 보면서 천천히 걷는다.

서울둘레길 이정표와 서울시 테마산책길인 인헌공 강감찬 길 안내판도 보인다. 하나의 길에 붙은 세 개의 이름,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관악산둘레길을 알리는 리본을 따라 걷는다. 바위에서 자라는 커다란 소나무가 있는 쉼터에 사람들이 여러 명 앉았다. 힘들지 않아도 쉬고 싶은 곳이다.

길에서 보기엔 그저 넓은 바위 정도로 보였는데 길옆에서 보니 바위 절벽의 꼭대기였다. 그 절벽에 뿌리내린 커다란 소나무가 바위 절벽 위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소나무 주변에 긴 의자가 놓였고, 절벽 윗부분 한쪽에 전망데크와 의자를 만들었다. 빈 의자가 없어 바위 절벽 위에 서서 풍경을 본다. 숲이 퍼져나가 멀리서 도심과 경계선을 만든다.

발길은 또 다른 전망대에서 멈춰졌다. 숲 밖으로 머리를 내민 넓은 바위 위로 나가 선다. 사위는 푸른 숲이다. 숲 밖 서울 도시 풍경이 숲 위로 보인다. 시야가 시원하게 터지지는 않지만 서쪽의 구로구부터 동쪽의 송파구까지 넓게 펼쳐진 서울을 볼 수 있다.

하늘 열린 너럭바위는 쉼터다. 몇몇 사람이 그곳에 앉아 일어설 줄 모른다. 차 한 잔 과일 한 쪽도 이곳에선 만찬이다. 휴대전화 넘어 누군가에게 지금까지 지나온 숲길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 표정에 자랑이 가득하다. 자리를 뜨는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갈림길에서 그들과 헤어졌다. 관악산둘레길은 낙성대로 이어졌다.

청룡산에서 만난 정겨운 오솔길

낙성대는 고려 명장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낙성대 안 안국사에 장군의 영정을 모셨다. 실제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은 낙성대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다. 낙성대 외삼문(안국문)으로 들어가면 삼층석탑이 있는데 그 석탑이 강감찬 장군 생가터에 있던 것이다. 삼층석탑 뒤에 목련꽃과 산수유꽃이 피었다.

낙성대를 나와 낙성대로를 건너 서울영어마을캠프 건물 왼쪽에 난 길로 접어든다. 관악산둘레길은 그렇게 청룡산으로 이어진다. 낮은 산 흙길이라 걷기 편하다. 서울둘레길(사당역), 서울둘레길(석수역), 관악산둘레길1구간, 서울대입구역을 가리키는 이정표에서 서울대입구역 쪽으로 내려간다. 잠시 숲에서 나와 관악로를 건너 우회전, 청룡초등학교 뒤쪽으로 가면 다시 청룡산 숲길로 들어가게 된다. 도로와 아파트 건물 등으로 청룡산이 나뉜 것이다.

길은 유아숲체험장 방향과 청룡산 순환등산로 방향으로 갈라진다. 청룡산을 크게 한 바퀴 돌려면 청룡산 순환등산로 쪽으로 가야 한다.

해발 160m가 채 안 되는 산, 넓은 흙길에 나무로 만든 계단, 죽은 나무로 만든 목책으로 숲길이 아기자기하다. 청룡산 순환길(헬기장) 방향으로 걷는다.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오르막길 언덕 위 작은 동산은 숲속의 숲이다.

이내 능선길을 만났다. 햇볕 잘 드는 능선길은 개나리꽃길이다. 멀뚱멀뚱 서 있는 커다란 나무들 사이를 지나 헬기장에 도착했다. 헬기장은 넓은 마당이다. 시야가 시원하게 트이지는 않지만 마당을 돌며 나뭇가지 사이로 주변 풍경을 살펴본다.

헬기장에서 길은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청룡산 생태숲길(산림욕장) 방향으로 내려가려는데, 길 바로 옆에 꽃을 활짝 피운 매화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향기가 고혹하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꽃을 보았다. 서울 도시의 외곽, 산에서 피어서 그런지 꽃잎이 맑고 밝다. 꽃술 끝도 샛노랗다. 건강한 아름다움이다.

내려갈수록 숲길이 좁아진다. 사람 다닌 흔적이 적다. 낮은 산이지만 제법 숲 같은 숲이다. 그 숲에 깊은 산 오솔길 같은 길이 났다. 산굽이 따라 오솔길이 오르내리고 모퉁이를 돌아간다. 보기만 해도 정겹다. 보고 있으면 걷고 싶어진다. 그런 오솔길 옆 산비탈에 붉은 진달래가 피었다. 오가는 사람 하나 없다. 적막이 깊다. 그런 길 끝에서 잣나무산림욕장을 만났다. 숲속의 숲이다. 보고 있으면 그냥 쉬고 싶은 숲이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