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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린다는 뜻이다. 빈틈없이 포위돼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를 비유하여 말할 때 쓴다. 사마천이 쓴 <사기> ‘항우 본기’에 나오는 고사성어이다.
항우(項羽)는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과 천하 패권을 다툰 고대 중국의 영웅이다. 진나라를 멸망시켜 초패왕(楚覇王)이라 일컬어졌으나 최후의 싸움에서 유방에게 져 자살했다.
항우는 진나라를 멸망시킨 뒤 유방과 천하를 양분하기로 하고 고향 초나라로 철군하고자 했다.
그러나 유방의 책사 장량은 철군하는 항우의 배후를 쳐서 그를 멸망시킬 것을 진언한다. 이에 유방은 대장군 한신을 보내 해하라는 성에 초나라군을 몰아넣는 데 성공한다.
사방이 적에게 포위된 채 식량마저 떨어진 초나라군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이때 장량은 초나라 병사들의 사기를 완전히 무너뜨릴 심리전을 구사한다.
교교한 달밤, 해하의 성 밖에 노랫소리가 흘러넘친다. 초나라의 구슬픈 노래들이다. 안 그래도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초나라 병사들은 고향의 노래를 듣고는 눈물을 흘리며 앞다투어 도망친다.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패배를 직감한 항우는 최후의 주연을 베풀었다. 31살의 젊은이이기도 한 항우는 애인 우미인과 명마 오추의 슬픈 운명이 못내 가슴 아팠다.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었으나(力拔山兮 氣蓋世)/ 때는 불리하여 추는 가지 않는구나(時不利兮 不逝)/ 추가 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을꼬(不逝兮 可奈何)/ 우여 우여, 그대를 어찌하면 좋을거나(虞兮 虞兮 奈若何)”
그날 밤 항우는 자신을 따라온 강동의 팔백여 병사들을 이끌고 포위망을 뚫는 데 성공했으나 강동으로 가는 길목인 오강(烏江)의 나루에 이르렀을 때 남아 있는 병사는 20여 기에 불과했다. 그가 오강에 이르자 마을의 정장이 감춰둔 배를 내놓고 항우에게 후일을 도모할 것을 권했으나 항우는 “강동의 자제를 다 잃었으니 고향의 부로(父老)를 뵐 면목이 없다”며 거절했다. 자결한 항우의 시체는 수십 명이 죽고 죽이는 쟁탈전 끝에 추격대장을 비롯한 다섯 명의 장교가 나눠 가졌다. 그들은 나중에 제후에 봉해지고 항우의 땅을 차지했다. 이인우 <서울&> 콘텐츠 디렉터 iwlee21@hani.co.kr
그날 밤 항우는 자신을 따라온 강동의 팔백여 병사들을 이끌고 포위망을 뚫는 데 성공했으나 강동으로 가는 길목인 오강(烏江)의 나루에 이르렀을 때 남아 있는 병사는 20여 기에 불과했다. 그가 오강에 이르자 마을의 정장이 감춰둔 배를 내놓고 항우에게 후일을 도모할 것을 권했으나 항우는 “강동의 자제를 다 잃었으니 고향의 부로(父老)를 뵐 면목이 없다”며 거절했다. 자결한 항우의 시체는 수십 명이 죽고 죽이는 쟁탈전 끝에 추격대장을 비롯한 다섯 명의 장교가 나눠 가졌다. 그들은 나중에 제후에 봉해지고 항우의 땅을 차지했다. 이인우 <서울&> 콘텐츠 디렉터 iwlee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