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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행촌동의 '딜쿠샤'
언덕 위의 이름 모를 붉은 벽돌 건물이 범상치 않음은 이전부터 느끼던 바였다. 서울성곽(한양도성) 바깥쪽에 집 한 채를 두고 바싹 붙어 있는 저 집은 무얼까? 근처의 홍난파 가옥은 꽤나 많이 알려졌지만, 수수께끼의 그 집에 대해서는 관심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양쪽에 박공지붕을 한 좌우대칭의 격식 있는 건물이 이런 언덕 위 주택가 골목 안에 딱 버티고 있다니!
금화고가 위를 지날 때면 버스 차창 밖으로 유난히 눈에 띄는 건축물도 있었다. 지붕은 겹처마 한옥식인데 건물 몸체는 콘크리트 빌딩인 그런 건물이었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사직터널 지나 금화고가를 지날 때 왼쪽으로 보이는 그 건물이 자꾸 잊히지 않았다. 나와는 별 관련도 없는데, 이 두 건물이 뇌리에 남아 자꾸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옛날 독립문역 로터리 부근 교남동 쪽으로 행촌연립(혹은 행촌아파트)이라고 있었다. 우리나라 연립주택의 효시쯤 될까? 지금은 교남동에 이른바 뉴타운 사업을 한다며 동네를 깡그리 밀어버리고 높은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는 중이지만 그 단지의 북서쪽 초입에 2층짜리 연립주택, 혹은 3층짜리 아파트가, 그보다 옛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바라보며 줄지어 서 있으니, 그 마을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기억이 날 법도 하다.
종로구 교남동에 있었던 '행촌연립'
권율 장군 집터에서 400년을 산 은행나무 아래서 이들 부부가 행복한 한국 생활 시절의 모습을 남기고 있다. 뒤편에 보이는 집이 딜쿠샤다.
그런데 한 5년 전까지 풍림각이라는 2류 요정이 거기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하필 여기에 요정이 있었을까? 2013년 당시에는 곱게 단청까지 한 겹처마의 한식 지붕이 3층 정도의 콘크리트 빌딩 위에 올라와 앉아 있으니 건축학도의 눈에는 당연 신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요정 건물이 옛 행촌아파트의 한 동이었다면 깜짝 놀랄 일이 아닌가? 지금 교남동주민센터 자리에도 행촌 연립이 있었고 그 연립들은 좌우로 죽 이어져 있었다.
금화고가와 사직터널 건설 당시의 이야기는 길다. 다음 기회에 얘기하자! 사직터널 위를 지나 인왕산 자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불과 2년 전에 사라진 옛 교남동 골목들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건너편 영천시장과 그 뒤로 보이는 안산은 변함이 없는데 눈 아래에 있던 마을이 안 보이니 ‘아재 용어’로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
골목길 따라 몇 걸음 더 올라가면 바스라져가는 붉은색 벽돌벽에 지붕을 군용천막으로 덧씌워 간신히 비막음을 하고 있는 처연한 모습의 건축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그 집 바로 옆에 400년 넘게 서 있는 권율 장군 집터의 은행나무보다 이 집에 더 관심이 많은지 이제는 그 집 앞에서 서성인다.
언젠가 몰래 들어가 기웃기웃하던 중 그 건물에는 열 가구가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어느 문에는 이름 대신 ‘뽕짝 아줌마 김XX 010-XXXX-XXXX’라는 매직으로 쓴 안내문이 붙어 있음도 보았다.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지 짐작은 했다. 우리말로 ‘이상향’, 힌디어로 ‘딜쿠샤(Dilkusha)’라는 이 건물이 세월의 풍우에 씻겨 쇄락한 모습으로 집 없는 사람들의 안식처가 된 것은 꽤나 오래전의 일인 것 같다. 그런 건물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2006년 2월28일 KBS의 3·1절 특집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나라’는 신예 장상일 감독이 제작한 프로그램이었다. 서울 행촌동 1번지 딜쿠샤의 주인 앨버트 W. 테일러(1875~1948)가 그의 부인 메리 테일러(1889~1982)와 31년을 함께 살면서 이 집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는 프로그램이었다. 앨버트 테일러는 금광기술자, UPI통신·AP통신 서울특파원이었고, 영화 수입도 했다. 특히 3·1운동을 처음으로 전 세계에 타전했던 사람이다. 연극배우였던 메리 테일러는 일본에서 공연하던 중 앨버트 테일러(부르스라 부르기도 한다)를 만난다. 앨버트는 금광업자인 아버지 조지 테일러(1829~1908)의 뒤를 이어 운산금광을 운영할 2세였는데, 일본을 여행하면서 메리를 만났다. 그는 열 달 뒤 메리가 공연하고 있는 인도로 달려갔다. 청혼을 하고 수락을 얻어 인도에서 둘은 결혼한다. 그리고 메리는 31년을 함께 살 한국으로 앨버트를 따라온다. 메리는 한국에 살면서 자전적 글도 틈틈이 썼는데, 그 글을 모아 책을 냈다. 2014년 <호박 목걸이>란 제목으로 우리나라에도 번역돼 소개되었다. 메리가 한국의 전통 목걸이인 ‘호박 목걸이’를 사랑해 호박들을 줄에 꿰어가며 자기의 삶을 완성해갔다는 이야기이다. 그 호박들에는 티끌이 있는 것, 공기방울이 있는 것, 더러는 꽃의 파편이 들어 있는 것도 있다고 했다. 서울시와 문화재청 등 관련 기관에서는 이 건물을 보수하고 복원해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에 새로 개관할 예정이다. 사진 김란기, 국가기록원, 장상일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언젠가 몰래 들어가 기웃기웃하던 중 그 건물에는 열 가구가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어느 문에는 이름 대신 ‘뽕짝 아줌마 김XX 010-XXXX-XXXX’라는 매직으로 쓴 안내문이 붙어 있음도 보았다.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지 짐작은 했다. 우리말로 ‘이상향’, 힌디어로 ‘딜쿠샤(Dilkusha)’라는 이 건물이 세월의 풍우에 씻겨 쇄락한 모습으로 집 없는 사람들의 안식처가 된 것은 꽤나 오래전의 일인 것 같다. 그런 건물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2006년 2월28일 KBS의 3·1절 특집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나라’는 신예 장상일 감독이 제작한 프로그램이었다. 서울 행촌동 1번지 딜쿠샤의 주인 앨버트 W. 테일러(1875~1948)가 그의 부인 메리 테일러(1889~1982)와 31년을 함께 살면서 이 집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는 프로그램이었다. 앨버트 테일러는 금광기술자, UPI통신·AP통신 서울특파원이었고, 영화 수입도 했다. 특히 3·1운동을 처음으로 전 세계에 타전했던 사람이다. 연극배우였던 메리 테일러는 일본에서 공연하던 중 앨버트 테일러(부르스라 부르기도 한다)를 만난다. 앨버트는 금광업자인 아버지 조지 테일러(1829~1908)의 뒤를 이어 운산금광을 운영할 2세였는데, 일본을 여행하면서 메리를 만났다. 그는 열 달 뒤 메리가 공연하고 있는 인도로 달려갔다. 청혼을 하고 수락을 얻어 인도에서 둘은 결혼한다. 그리고 메리는 31년을 함께 살 한국으로 앨버트를 따라온다. 메리는 한국에 살면서 자전적 글도 틈틈이 썼는데, 그 글을 모아 책을 냈다. 2014년 <호박 목걸이>란 제목으로 우리나라에도 번역돼 소개되었다. 메리가 한국의 전통 목걸이인 ‘호박 목걸이’를 사랑해 호박들을 줄에 꿰어가며 자기의 삶을 완성해갔다는 이야기이다. 그 호박들에는 티끌이 있는 것, 공기방울이 있는 것, 더러는 꽃의 파편이 들어 있는 것도 있다고 했다. 서울시와 문화재청 등 관련 기관에서는 이 건물을 보수하고 복원해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에 새로 개관할 예정이다. 사진 김란기, 국가기록원, 장상일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