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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청각장애인들에게 마음까지 전해요

강동구 공무원 ‘수어학습길드’ 창립

등록 : 2019-05-2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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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 몰려 두 차례나 정원 늘려

비장애인과 직원 더 많아

“필담 한계 넘어 존중하는 느낌 전해”

장애인 복지예산 100억원 이상 늘어

강동구 공무원들의 학습모임인 ‘수어학습길드’에 참여하는 장애인복지과 공무원들이 수어로 “농인과 청인(비장애인)이 소통하는 강동구 수어교실”(뒷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앞줄)라고 표현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균봉·하성민·김아름·유민지·김예나·조현수 주무관, 추호성 강동구수어통역센터 전문수어통역사(강사), 김희숙 장애인자립지원팀장, 류제승 장애인정책팀장, 박선희 선임 주무관.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지난 20일 강동구청 2층 장애인복지과에서 공무원 수어(수화) 학습동아리인 ‘수어학습길드’에 참여한 강동구청 공무원들이 손짓으로 열심히 만들고 있는 문장의 의미다. 아직 서툴지만 수어를 배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다리가 되겠다는 마음 때문인지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수어학습길드는 지난해 4월 새로 생긴 장애인복지과(과장 정영옥)가 과 설립 1주년을 맞아 ‘기획’한 동아리다. 지난 4월 과에서 “1주년 기념으로 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는 무엇인가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자연스럽게 ‘수어 배우기’로 뜻이 모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소통이 어려운 청각·언어 장애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말’(수어)로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직군 11명을 포함해 총 18명인 장애인복지과 직원들은 강동구에 사는 2238명의 청각·언어장애인들과 장애인생활지원금 지급 문제 등으로 일상적으로 만나고 있다. 이때 전문수어통역사가 통역을 맡거나 통역이 없을 때는 청각·언어장애인들과 필담으로 대화한다. 그런데 그 필담은 강동구청 공무원들의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고, 사무적으로 필요한 사항만을 전달할 뿐이다.

수어학습길드에 참여하고 있는 김균봉 주무관은 수어학습모임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외국 유명 스타들의 내한 공연 장면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들이 서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싸랑해요’라고 할 때 정말 한국을 사랑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잖아요. 우리의 수어를 하면 서툴지라도 청각·언어장애인들께서 ‘공무원들이 우릴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낄 거라 생각했어요.”

공무원 첫 보직으로 지난해 4월 장애인복지과에 온 하성민 주무관은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을 맡은 탓에 많은 청각·언어장애인들을 만나는데, 필담으로 소통하는 것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말로 하는 대화는 표정과 미소 등으로 호의적인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데, 필담으로는 그게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인사나 간단한 안내를 수어로 할 수 있다면 청각·언어장애인들도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모아 지난 4월 말 구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모집 공고를 내자 반응은 뜨거웠다. 2시간도 안 돼 예정 인원 30명을 훌쩍 넘는 인원이 신청했다. 정원을 35명으로 늘렸는데도 금세 마감돼, 40명으로 최종 학습자 수를 늘려야 했다.

이 중 장애인복지과 직원은 11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29명은 주민센터 근무자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 공무원들이다. 강동구청 공무원 전체가 수어 학습에 호응한 셈이다. 이들은 지난 9일 첫 모임을 한 뒤 앞으로 매월 둘째·넷째 주 월요일 저녁 7시에 모여 함께 수어를 공부할 계획이다.

수어학습길드 대표를 맡은 류제승 장애인복지과 장애인정책팀장은 “무엇보다 이정훈 구청장의 장애인 사랑에 구청 직원들이 호응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이 구청장의 취임 이후 강동구의 장애인 정책은 눈에 띄는 변화를 겪었다. 먼저 지난 2월 강동구수어통역센터를 확장 이전하면서 그 안에 서울시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농아인 쉼터를 만들었다. 쉼터는 소통 장애로 경로당에도 가기 어려운 청각·언어장애인들이 모여 서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장소다. 또 이 구청장은 핵심 공약인 장애인종합복지관 건립도 2022년 준공을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다. 정영옥 장애인복지과장은 “이 밖에도 장애인 복지 관련 사업을 전반적으로 확대해 올해 장애인복지 관련 예산은 265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00억원 이상 늘어났다”고 말했다.

수어학습길드에 참여하는 김희숙 장애인복지과 자립생활지원팀장은 “구청장님이 ‘장애인이 살기 좋은 곳이 비장애인도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하신 말씀에 공감하는 직원이 많다”며 “구청의 적극적인 장애인 복지 확대 정책이 이번 ‘수어학습길드 인기 폭발’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어학습길드 강사인 추호성 강동구수어통역센터 소속 수어통역사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서도 관심 가지고 장애인을 돕겠다고 먼저 손 내밀어주는 곳은 거의 없다”며 “공무원들이 스스로 수어를 배우겠다고 나선 것만으로도 강동구에 사는 청각·언어장애인들이 힘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강동구에서 해마다 열리는 수어 페스티벌을 주관하는 김아름 주무관은 “수어학습길드 차원에서 올해 11월에 열리는 수어 페스티벌에 수어 통역과 함께하는 노래나 공연을 하기로 했다”며 “수어학습길드가 이런 다양한 활동을 함으로써 장애인들이 좀더 편한 마음으로 구청을 찾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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