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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은 아빠’ 늘고 있지만, 육아 고민도 늘어

서울시건강가정지원센터 ‘아빠 육아 교육과정’ 신청 줄이어…“함께 있는 것이 곧 육아” 라는 생각이 중요

등록 : 2016-12-22 15:26 수정 : 2016-12-2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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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올 초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아빠 성동일은 자기 때문에 토라진 딸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이렇게 표현한다.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잖아. 아빠도 아빠가 처음인데, 그러니까 우리 딸이 좀 봐줘.”

드라마의 배경이 된 1988년만 해도 육아는 온전히 엄마의 몫이었다. 일에 지친 아빠들은 저녁 늦게 사가져온 통닭과 과자들로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표시했다. 그런데 최근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며 아빠들의 몫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같은 아빠 육아 예능 프로그램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제 육아·교육박람회나 키즈카페, 문화센터에 아이와 함께 오는 아빠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가 운영하는 아빠 육아 프로그램에도 아이들과 친밀감을 높이려는 아빠들의 신청이 줄을 잇는다.

친구 같은 아빠를 뜻하는 ‘프렌디’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아이 돌봄에 대한 아빠들의 관심은 높아졌지만 마음만큼 쉽지 않은 것이 육아다. 지난달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만 4~6살 자녀를 둔 부모 100명에게 조사한 결과, 아빠들은 ‘아이와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를 때’(52%) ‘아이를 돌보다 실수해서 아내 잔소리를 들을 때’(30%) ‘아이가 엄마만 찾을 때(18%)’ 순으로 육아 고충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엄마들은 ‘독박 육아에 대한 불만’이 53%로 가장 높았다. 아빠는 아이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를 몰라 힘들고, 엄마는 여전히 혼자 짊어져야 하는 육아의 짐이 무겁기만 한 것이다.

올해 ‘아빠와 함께하는 건축학교’ ‘부자유친 골목답사’ 등 남성 돌봄 사업을 진행해온 서울시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는 아빠들의 육아 고민을 덜어주기 위한 ‘아빠 육아 교육과정’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평소 궁금했던 육아 고민을 전문강사에게 일대일로 물어보고 해결책을 함께 찾아볼 수 있어 교육보다는 상담의 성격이 강하다.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를 둔 박찬희씨는 지난달 ‘아빠 육아 교육과정’에 참여해 그동안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6년째 육아와 가사를 도맡은 프로 아빠이지만,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아침마다 등교 전쟁을 치른다. “씻고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이가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아침부터 스트레스를 받아요. 마음 한편으로는 화내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어느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화를 내도 딸이 무서워하지 않고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며 논리적으로 대응해 오니 당황스러워요.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아빠 육아 교육과정’은 일대일 맞춤형 상담으로, 아빠들이 쉽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도 있고 전문강사에게 구체적인 해결책까지 얻을 수 있어, 아빠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윤지혜 기자 wisdom@hani.co.kr
박씨의 이야기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김영란 전문강사는 현재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원장이다. 평일 저녁과 주말을 이용해 아빠들의 육아를 돕고 있다는 김 강사는 “등교 전쟁은 육아 참여도가 비교적 높은 아빠들이 많이 물어온다. 주로 아이들에게 자기 생각이 생기면서 생기는 갈등인데, 아빠가 시간을 정해놓고 채근하기보다는 집에서 언제 출발하면 좋을지 아이에게 먼저 물어보길 바란다. 아이가 시간을 정하면 책을 보든 그림을 그리든 아빠도 기다려줘야 한다”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어 “개근상을 최고로 여기던 예전에는 학교에 일찍 가서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에는 정해진 시간에 딱 맞춰 가는 경향이 있다”며 변화된 학교 문화에 대해서도 귀띔해주었다.

이날 두 시간 넘게 전문강사에게 육아 비법을 전수한 박씨는 “그동안 아이에게 물어보지 않고 학교는 일찍 가야 한다는 내 관념에 아이를 맞췄던 것 같다”며 머쓱하게 웃으며 “아빠들은 육아나 아이와 관련해 고민이 있어도 밖에 드러내길 꺼린다. 주위 아빠들에게 솔직히 말한다 해도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데, ‘아빠 육아 교육과정’은 일대일 상담이다 보니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있고, 전문강사가 구체적인 팁까지 제시해주니 힘이 난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아빠 육아 교육과정’의 기본 상담 시간은 2시간으로, 시간과 장소는 원하는 대로 정할 수 있어 아빠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사업이 시작된 9월부터 11월까지 두 달간 ‘아빠 육아 교육과정’을 이용한 아빠는 모두 163명. 아빠들의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72점으로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강사는 “처음 아빠 육아 교육을 시작했을 때, 아빠들이 이렇게 육아에 궁금한 점이 많았구나 싶어서 놀랐다. 아빠들이 적게는 5개, 많게는 10개까지 질문들을 적어온다. 아내의 육아 방식이나 아이들의 행동 중에 궁금한데 서로 다툼이 될까 물어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의견을 구하기도 한다”며 아빠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고무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아빠들은 아이들과 놀아주려는 마음이 생기다가도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에 대해서는 부담을 많이 느낀다. 아이들과 꼭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 곧 육아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좀 더 쉽게 육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육아의 동반자인 엄마들에 대해서도 “아빠가 육아 참여 의지를 보일 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거나 가르치지 않는 편이 좋다. 아빠에게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관찰하고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지혜 기자 wisdom@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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