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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웠지만 사고 안 나 천만다행이었죠”

땅꺼짐 신고하고 복구 작업 도와 양천구 모범구민 표창 받은 3인

등록 : 2022-10-1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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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씨가 6일 집 근처 도로에서 발생한 땅꺼짐 장소를 손으로 가리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씨는 지난 8월17일 출근길에 땅꺼짐을 발견해 119에 신고함으로써 주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김성환씨, 출근길 땅꺼짐 발견 신고

조씨 자매, 한밤중에 주민 대피시켜

토박이 육완호씨, 구청 복구작업 도와

“앞으로도 주민과 이웃 생각하며 살 것”

“축구공보다 조금 큰 구멍이 뚫려 있더라고요. 어제저녁에는 분명히 구멍이 없었는데 갑자기 생긴 게 이상했죠. 심상찮아서 구멍 안으로 휴대폰 불빛을 비춰보니 안 보였어요.”


양천구 신정동에 사는 김성환(63)씨는 지난 8월17일 오전 10시께 도로에 난 구멍을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일산 싱크홀 사고가 생각났죠. 이런 게 싱크홀이구나 싶었습니다.” 김씨는 곧바로 차량 통행을 막았다. “차들이 못 다니니 왜 막냐며 언성이 높았죠. 그래도 사고는 막아야 하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김씨는 6일 땅꺼짐이 발생했던 이면도로 삼거리 현장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신고한 뒤 10여 분이 지나자 경찰과 소방대원이 왔어요. 1시간 뒤 공사를 시작했는데, 포클레인을 갖다 대자 땅이 푹 꺼지더라고요.” 김씨가 발견한 도로 표면에 생긴 구멍은 축구공보다 조금 크지만, 그 아래는 차 한 대가 빠질 정도로 넓고 깊었다. “그 정도로 땅이 꺼질 줄은 몰랐죠. 깜짝 놀랐어요.” 땅꺼짐이 발생한 곳은 이면도로지만 차량 통행이 잦은 곳이라 조금만 조치가 늦었어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김씨는 “사고가 안 나서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착한 일 하면서 살자는 생각을 해요. 할 일 없으면 주위 쓰레기라도 줍죠.” 김씨가 땅꺼짐을 발견하고 신고한 것은 평소 사소한 일도 쉽게 넘기지 않고 이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다. 집 근처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는 김씨는 어려운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도로변에서 열심히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을 보면 그냥 안쓰럽죠. 여름에 덥잖아요. 땀 흘리고 하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음료수값 몇천원밖에 안 하잖아요.” 김씨는 “더운데 얼마나 힘들까 싶어 평소 환경미화원들에게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건네주기도 한다”고 했다.

“매일 아이스크림 가게에 오는 노인이 있어요. 집에 전기가 안 들어와 휴대폰 충전을 하러 왔다고 하더라고요.” 김씨는 하루는 아이스크림을 몰래 먹었다는 할아버지의 고백을 들었다. “괜찮으니 매일 와서 드시라고 했죠.” 김씨는 “지난 추석 때는 지금까지 아이스크림 11만원어치를 먹었는데, 우선 5만원을 주겠다는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오히려 고마웠다”고 했다. 김씨는 “동네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서로 돕고 어려운 일도 먼저 나서서 하는 게 이웃에 대한 도리”라며 “세상 혼자 사는 것 같아도 주위 사람이 없으면 나도 살 수 없다”고 했다.

신월7동에 사는 조영숙(가명·40)씨는 8월8일 밤 10시30분께 언니와 함께 땅꺼짐을 신고했다. “언니가 창문 밖으로 핸드폰 불빛을 비추면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했어요. 누군가 물웅덩이에 돌을 던지는 것처럼 ‘첨벙’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조씨는 무심코 넘기려는 순간에 또다시 ‘첨벙’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처음에는 누가 장난치나 싶었어요.” 궁금해서 밖으로 나간 언니가 조씨에게 싱크홀이 생겼다고 알렸다. 언니 목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간 조씨는 아파트 앞 도로에 가로세로 2~3m가량 되는 땅꺼짐이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 “흙탕물이라서 깊이는 알 수 없었지만, 아스팔트가 꺼진 곳에 물이 고여 있었어요.”

조씨는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 이날 서울에 폭우가 쏟아져 곳곳에 사고가 나서 통화가 쉽지 않았다. 조씨는 119와 112에 번갈아 신고 전화를 하고, 조씨 언니는 이웃들에게 땅꺼짐이 발생했으니 차를 빼고 대피해야 한다고 알렸다. 김씨는 신고하고 10분 정도 지나서 경찰과 소방대원이 왔는데, 2~3m 정도였던 땅꺼짐 구간이 그사이 더 커졌다고 했다. “가로세로 3~8m 정도로 커졌죠. 물이 모두 빠져나갔더라고요. 흙이 빠지면서 물이 아래로 빠졌나봐요. 속이 다 드러났죠.” 조씨는 “지대도 높고 축대도 있어 건물이랑 다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어 무서웠다”고 당시 심경을 말했다. 땅꺼짐 공사로 조씨와 주민 68명은 근처 주민센터와 경로당으로 대피했다. 공사 기간이 길어 조씨 자매와 주민들은 월요일 밤에 대피해 토요일 저녁에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주민 육완호(70)씨는 땅꺼짐 복구작업에 힘을 보탰다. 신월동 토박이인 육씨는 지역에 있는 각종 기반시설을 비롯해 땅속 하수관 배관 위치까지 공공기관보다 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 구청 복구작업팀이 공사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땅꺼짐을 알려 주민 안전을 지키고 복구작업에 힘을 보탠 이들은 9월19일 양천구 모범구민 표창을 받았다. 조씨는 “크게 한 일도 없는데 구민 표창을 받아 고맙다”며 “앞으로도 주민과 이웃을 생각하며 살겠다”고 했다.

글·사진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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