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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얘기 진솔하게 쓰다보면 책 돼요”

에세이집 내고 ‘글쓰기 전도사’ 된 김나현 강남구 정책홍보실 주무관

등록 : 2022-11-2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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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현 강남구 정책홍보실 주무관이 18일 강남구청 앞에서 자신이 쓴 에세이집 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휴대전화에 매일 틈나는 대로 메모

지난해 ‘딩크 부부’ 삶 담은 책 내

만나는 사람마다 글 쓰라고 권유

“자신 내면의 중심 발견할 수 있죠”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나 원석 같은 이야기가 있어요.”

김나현(39) 강남구 정책홍보실 언론팀 주무관은 지난 18일 ‘일반인이 어떻게 하면 책을 낼 수 있냐’는 물음에 “편식하면 편식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방구석에 있는 걸 좋아하면 방에서 뭘 하고, 뭘 느끼는지 써보라”고 했다. “쓰다보면 자기 내면의 중심을 발견할 수 있어요.” 김 주무관은 “스스로 중심을 이루는 삶을 알게 되는 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최고의 깨달음”이라며 “글쓰기는 그 깨달음에 이르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김 주무관은 에세이집을 낸 작가다. 지난해 <2인 가족의 티스푼은 몇 개가 적당한가>(뜻밖 펴냄)를 썼다. 결혼과 출산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지 고민한 내용을 담았다. 결혼 뒤 6년 동안 아이를 두지 않는 ‘딩크 부부’의 삶에 대해 남편과 나눈 내밀한 대화, 일상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냈다. 김 주무관은 “제 이야기가 특별했던 건 결혼 전부터 자발적으로 아이 없이 살기로 한 사람의 솔직한 생각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김 주무관은 소설가의 꿈을 접고 2014년 1월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위에서 하라면 하는 거야’라는 위계적인 문화와 모든 것을 상사와 의논해 결정하는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했어요.” 김 주무관은 “글을 쓰면서 공무원 생활 초기에 가졌던 무기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어쨌든 내 글에는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내가 쓰는 문장 하나하나는 오직 내 결정으로 나오는 거니까요.”

하지만 조직 생활이 길어질수록 자신의 사고 체계가 그 안에 딱 갇혀버린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제 세상이 좁아지는 것에 공포를 느꼈어요. 조직 안에서만 사람을 만나고 영향을 받게 되더라구요.” 그럴수록 더 열심히 글을 썼다. 김 주무관은 “글쓰기를 취미로 갖게 되면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트렌드에도 민감해진다”며 “글쓰기는 거대한 조직에 매몰되지 않고 ‘나’라는 개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김 주무관은 자신보다 먼저 남편을 ‘닦달’해 2년 전 에세이집을 내게 했다. 40대 중반 남성이 겪는 애환과 서글픔, 그럼에도 또 오늘을 살아야 하는 희망,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남편은 공대 출신에 글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남편이 40대 중반이 되니까 그 나잇대 남자들이 겪는 체력 저하, 노화, 각종 질병이 한꺼번에 몰려오더라고요.” 김 주무관은 “남편이 젊은 시절을 뒤로하고 쇠락하는 몸을 받아들이며 사는 리얼한 이야기를 썼다”며 “그 이야기가 독특하고 신선했는지 결국 올해 드라마로 제작됐다”고 했다. 김 주무관은 “에세이 시장은 20·30대 여성 작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40·50대 남성 직장인 이야기는 작가도 책도 없는 블루오션”이라고 했다.

김 주무관은 매일 짧게 일기를 쓴다. “몇 년 전에 문득 1년 전 이때쯤 나는 뭘 했는지 떠올려보는데, 전혀 생각나지 않아 허무한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짧게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게 어느새 습관이 됐어요.” 김 주무관은 전철을 타고 출퇴근할 때,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밥을 먹을 때, 멍 때리고 쉬고 있을 때, 순간순간 떠오르는 내용을 휴대전화에 메모한다. “그러면 매일 짧게 쓰는 게 밥 먹고 양치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요.” 김 주무관은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면 글쓰기가 훨씬 쉬워진다고 했다.

김 주무관은 직장 생활을 하는 틈틈이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써왔다. “주제를 잡고 연재 형식으로 글을 써나갈 수 있으니 프로젝트처럼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어요.” 이곳에서 글을 쓰는 사람 중에는 ‘저녁 작가’ ‘주말 작가’ ‘새벽 작가’ 등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많다. “전업작가가 될 수 없지만 이렇게 글 쓰는 시간에 ‘잠깐 작가’로 변신할 수 있잖아요. 이런 정체성 부여가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김 주무관은 ‘글쓰기 전도사’다. 주위 사람을 만날 때마다 글을 써보라고 권한다. “빡빡한 조직 생활을 하며 자기를 소모하느라 지친 사람이라면 글쓰기는 스스로를 회복할 정말 쉬운 방법이에요. 다른 도구 필요 없고 컴퓨터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잖아요.”

김 주무관은 글을 쓰는 소재로 자신의 이야기만한 게 없다고 했다. “에세이는 누구나 시작하기 좋은 글쓰기 장르라고 생각해요. 출간을 목표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내 글은 출판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서점에 나가보면 나도 이 정도는 쓰겠다 싶은 책, 은근 하나씩은 발견할 수 있을걸요. 출판사는 좋은 원고에 언제나 열려 있어요.”

김 주무관의 책에는 자신의 콤플렉스도 솔직하게 써놨다. “그래서 에세이를 쓰는 데는 용기도 필요해요.” 김 주무관은 “적어도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로가 된다”며 “자기 생각을 공감해주는 누군가를 발견하는 건 고독한 삶에 햇살이 드는 따뜻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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