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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가을은 잿빛 숨을 쉰다. 도시가 온통 잿빛에 젖어들고 있다. 게다가 요즈음은 슈퍼마켓이며 백화점마저 시커멓게 도배를 하고 나섰다. 핼러윈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진)
‘All Hallows' Eve’를 줄여서 ‘Halloween’이라고 하는데, 그 유래를 따라가 보면 꽤 역사 깊은 켈트 족의 명절이다. 다음 날인 가톨릭의 모든 성인 대축일보다도 역사가 깊다면 깊다. 하지만 오늘날 핼러윈의 모습이 그 깊은 역사와 맥을 같이하느냐는 또 다른 이야기다.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핼러윈은 한 바퀴를 크게 돌아 독일에 들어왔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연합군의 공습으로 이라크가 쑥대밭이 되자 독일인들은 해마다 열리던 대규모 카니발을 취소했다. 화려한 가면과 의상을 입고 웃고 떠들며 파티를 즐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정말 웃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카니발용 제품을 납품하던 장난감·의류업체 관련 종사자들이다. 일 년에 한 번 대목을 보는 업종인 만큼 그 충격은 대단했다. 작은 회사들은 도산의 위기에 부닥쳤다. 이때 이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미국의 핼러윈이다.
당시 독일에도 뿌리식물에 얼굴을 조각하는 비슷한 풍습이 있었고 이미 생산된 장신구며 화장품 그리고 의상들만 가지고도 핼러윈 산업의 반 이상은 이루어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공장들은 즉시 추가 생산에 들어갔고 아시아산 고무 탈이며 플라스틱 거미와 해골들이 다량으로 수입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적극적인 핼러윈 홍보도 시작되었다. 이국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영화나 출판물로 포장되어 핼러윈은 급속도로 독일 전역에 퍼져나갔다.
오늘날 문화의 전파 속도는 그야말로 빛의 속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내용은 외형을 흉내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독일의 핼러윈이 그렇듯 한국에서도 한국의 실정에 맞게 적당히 왜곡된 핼러윈 파티가 열리고 있을 거라 짐작해본다. 여기서 필자는 오늘날의 핼러윈이 본래의 종교적, 역사적 의미를 넘어 상업화될 대로 상업화된 수조 원 규모의 소비 축제라는 점을 한번 상기시키고 싶다.
독일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많은 학부모들과 공유했던 생각이다. 유치원 때부터 몇 년 동안 해마다 아이들의 파티 의상을 만들어 입히면서 원하는 대로 입혀 보내지 못하는 것이 참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흘낏거리는 의상을 사자니 하루 치 즐거움의 값으로는 터무니없이 비쌌다.
한편 이제는 어른이 다 되어 핼러윈 파티를 하지 않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핼러윈을 너무 나쁘게만 보지는 말라는 조언이 돌아왔다. 좋은 면도 있다는 뜻이다. 성탄절이나 부활절과는 달리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날이라는 점이 그중 하나며, 또 어린아이들에게 귀신놀이만큼 큰 재미를 선사하는 것도 드물다는 주장이다. 듣고 보니 수긍이 가는 점이 없지는 않다. 모쪼록 핼러윈이 이런 점마저 잊어버린 채 몇몇 잡귀들의 호화 파티로 자리 잡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재인 재독 프리랜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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