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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성동구립 ‘와글와글도서관'에서 인근 함께주간보호센터의 발달장애인들이 책을 읽고 촉감판 놀이를 하고 있다. 온돌바닥에 좌식 테이블, 빈백 소파를 갖춰 발달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지내고 있다.
66㎡ 공간, 장애인부모회가 위탁운영
책 1600권, 전자칠판·촉감판도 설치
온돌바닥 좌식 테이블에 빈백소파도
“편하게 책 읽는 문화 경험하게 운영”
관련 기관 연계해 ‘책 프로그램’ 진행
발달장애인들이 소리 내고 돌아다니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성동구립 ‘와글와글도서관’이 지난 15일 문을 열었다. ‘와글와글’은 발달장애인은 물론 경계선 지능을 가진 ‘느린 학습자’도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자 보호자들의 사랑방이 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도서관은 지하철 왕십리역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있는 건물 2층, 66㎡ 규모의 공간에 자리 잡았다. 최근 국립장애인도서관이 펴낸 읽기 좋은 책 12권을 비롯해 발달장애인의 특성에 맞는 특화도서 600여 권과 일반 도서 1천여 권을 갖췄다.
개관 사흘째인 지난 17일 오전 발달장애인 5명이 와글와글도서관을 찾았다. 인근에 있는 함께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는 20~30대 청년들이 김성만 센터장, 복지사 등과 함께 왔다. 주간보호센터에서는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성동구청 1층에 있는 책마루도서관을 매달 한 번 정도 가곤 했는데, 소리를 내거나 과격한 행동으로 다른 이용자에서 피해를 주지 않으려 늘 구석진 곳에 있다가 왔다고 한다. 김 센터장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고 소리도 내며 편하게 책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곳이 센터 가까이에 생겨 참 좋다”고 했다.
발달장애인 특화도서관 건립은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민선 8기 공약 중 하나다. 정구청장은 장애인 부모들의 꾸준한 요청과 필요성 제기에 공감해 공약 사업으로 추진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공간 마련이었다. 기존의 공공기관에서는 여유 공간을 찾기 어려워 차선책으로 민간 건물 임대에 나서 지금의 장소를 마련했다. 정미랑 장애인복지팀장은 “장애인 이용시설에 대한 임대를 꺼리는 건물주가 적잖은데 다행히 임대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고 했다.
발달장애인 특화도서관 건립은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민선 8기 공약 중 하나다. 정구청장은 장애인 부모들의 꾸준한 요청과 필요성 제기에 공감해 공약 사업으로 추진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공간 마련이었다. 기존의 공공기관에서는 여유 공간을 찾기 어려워 차선책으로 민간 건물 임대에 나서 지금의 장소를 마련했다. 정미랑 장애인복지팀장은 “장애인 이용시설에 대한 임대를 꺼리는 건물주가 적잖은데 다행히 임대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고 했다.
복지사가 이용자와 책 읽기를 함께 하고 있다.
인테리어와 가구, 비품은 다양한 연령대의 발달장애인이 편하게 활동할 수 있게 갖춰졌다. 우선 이용자가 신발을 벗고 앉거나 누워 책을 볼 수 있도록 온돌 바닥을 만들었다. 좌식 원형 테이블, 푹신한 빈백 소파를 두고 부딪혀 다칠 수 있는 모서리 등에는 완충재를 붙였다. 한쪽 벽면에는 미세근육 발달을 위한 촉감판도 3개 설치했다. 영상을 보고 그림도 그릴 수 있는 등 다용도 76인치 전자칠판도 갖췄다.
이날 처음 와글와글도서관을 찾은 발달장애인들은 낯선 환경에 표정이 살짝 굳어있었다. 엉거주춤하다 좌식 둥근 테이블을 앞에 두고 꽃모양 방석에 앉거나 책장 사이 모퉁이 벤치 위에서 양반다리를 했다. 빈백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책을 뒤적거리는 이용자도 있었다.
이내 누군가가 불편한지 소리를 냈다. 소리가 점점 커지자 김 센터장이 다가가 그의 등을 다독거리며 진정시켰다. 10여 분 뒤 괜찮아진 그는 촉감판 쪽으로 가서 이것저것 만져봤다. 김 센터장이 가서 그를 도와줬다. 전자칠판에 손가락을 대보기도 했다. 중간중간 한 번씩 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그를 비롯한 나머지 이용자들 모두 공간에 적응해가며 한 시간을 보내다 갔다.
중증 발달장애인 고등학생 아들을 둔 명우미씨도 이날 도서관을 찾았다. 그는 “집 가까이에 걸어서 아이가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 생겨 다행이다”라고 했다. 명씨의 아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 처음 일반 도서관에 갔다 들어가자마자 ‘웅’ 하고 소리를 내, 명씨가 바로 데리고 나온 적이 있다. 그 뒤로 도서관 출입은 엄두를 아예 내지 못했다. 명씨는 “며칠 전 아이와 함께 와글와글도서관에 들렀는데 그 뒤로 아이가 또 도서관에 가고 싶다고 한다”며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아이에게 좋았던 것 같다”고 했다.
김성만 함께주간보호센터장이 이용자의 촉감판 놀이를 돕고 있다.
와글와글 도서관 운영은 ㈔서울장애인부모연대 성동지회가 맡는다. 박미라 회장은 “장애인 부모들이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책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너무 좋아한다”며 “도서관을 만들어준 구청에 감사하고 있다”고 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개인 블로그 글에서 “발달장애인과 느린 학습자, 그리고 그 보호자들이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고 책을 통한 성장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정 구청장은 ‘책은 청년에게는 음식이 되고, 노인에게는 오락이 된다. 부자일 때는 지식이 되고, 고통스러울 때면 위안이 된다’는 글을 인용하며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우리 모두에게 제각각 특별한 경험이자 의미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개관 뒤 다양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성동구에 있는 장애인 고용기업은 도서관을 찾아 직원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에 함께할 수 있는지 의논했다.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기관들은 도서관 이용방법에 대해 전화 문의를 해왔다. 책 기증 문의도 늘고 있다. 정미랑 팀장은 “책 기증을 위한 주소 문의가 꽤 있어 네이버와 카카오앱 등에 도서관 주소를 올릴 계획이다”라고 했다.
와글와글도서관은 앞으로 지역 작은도서관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와 연계해 구연동화, 책 만들기 프로그램 등을 운영할 예정이다. 책을 활용해 자녀와 함께 집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알려주는 부모 교육도 계획하고 있다. 성동구장애인가족지원센터 등 관련 기관 프로그램 연계도 추진한다. 방학 때 캠핑 경험을 해볼 수 있는 북 캠프도 진행할 계획이다.
운영시간은 월~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법정 공휴일은 쉰다. 박미라 회장은 “첫걸음을 뗐고 앞으로 더 많이 알려 운영시간도 늘리고 가능하다면 공간도 넓혀 장애,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해보고 싶다”고 했다.
글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