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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의 ‘독립출판 지원’ 덕에 책 냈어요”

지원 프로그램 ‘위 메이크 북스’ 도움으로 ‘사라질 곳에 살던 사람들’ 출간한 김민지씨

등록 : 2023-05-1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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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는 8일 중구청 1층에서 독립출판 제작지원 사업으로 만든 책 전시회를 열었다. <사라질 곳에 살던 사람들-반포주공 기억하기>를 출간한 김민지씨가 자신이 만든 책을 가리키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19대1의 높은 경쟁률 뚫고 선정된 뒤

중구, 저자-인쇄회사 짝지어 도움 줘

사진·삽화 그리고, 친구 2명 인터뷰로

반포주공아파트에 살았던 기억 ‘저장

“굉장히 행복해요. 예상대로 책이 만들어져 만족스럽습니다. 완성본을 봐도 실감이 안 나요.”

김민지(25)씨는 8일 자신이 만든 책을 들어보이며 무척 기뻐했다. 김씨는 중구가 지원하는 독립출판 프로그램에 참여해 <사라질 곳에 살던 사람들-반포주공 기억하기>를 펴냈다. 직접 찍고 그린 사진·삽화와 친구 두 명의 인터뷰 내용을 엮어 재개발로 사라지는 반포주공아파트를 기록했다. 흔한 ‘강남 아파트로 상징되는 욕망’보다 가장 소중한 시기를 보냈던 ‘삶의 공간’을 아쉬움을 담아 추억한다. 김씨는 “오래돼 낡은 아파트였지만, 그곳 기억의 순간을 영원히 저장하려 한다”고 했다.

반포주공아파트는 1973년 한국토지주택공사(당시 대한주택공사)가 서울에 처음 만든 대단지 주공아파트다. 강남 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50년이 지나 2·3단지는 이미 철거됐고, 가장 먼저 지어진 1단지는 철거를 시작했다. 서울시는 반포주공아파트의 역사 가치를 살리려고 1단지 한 동을 보존해 마을 박물관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베이비붐세대 자녀인 20~30대는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파트 키드’죠. 그래서 유년시절이나 학창시절을 떠올릴 때면 아파트라는 공간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1960~70년대 지어진 저층 아파트는 20~30대에게는 공유하고 공감하는 ‘추억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김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인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반포주공아파트 1단지에서 살았다. 김씨는 “추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래된 아파트가 재건축으로 사라지고 있다”며 “개인이 오랜 시간을 보낸 공간, 특히 거주했던 공간이 사라지는 것은 추억과 시간도 함께 사라지는 듯한 상실감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그래서 김씨는 ‘사라질 곳’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개인의 마음이나 바람과 상관없이 재개발, 도시정비사업 등으로 사라져가는 곳들을 다룬다. “사라질 공간을 우리가 아는 나름의 방식으로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 장소가 반포주공아파트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김씨가 직접 삽화를 그리고 사진도 찍었다.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라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래도 텍스트로도 전달하고 싶어 적당한 방법을 찾다가 인터뷰가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반포주공아파트에 살았고, 다른 한 친구는 김씨가 이사 간 이후부터 살았다. 김씨는 “같은 아파트에 살았지만 같은 시기에 산 적도 있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며 “친구지만 한 공간을 두고 서로 다른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해 2월 대학을 졸업했다. ‘사라질 곳’은 졸업 프로젝트로 2021년 이미 원고를 완성했다. 하지만 어떻게 책으로 펴낼지 막막했다. 출판하려고 여러 곳을 알아봤지만, 원고를 보내고 나면 감감무소식이었다. “전화도 했지만 출판을 안 해주더라고요. 쌀쌀맞게 구는 곳도 있었죠.” 한동안 원고를 방치해 놓은 김씨는 독립책방에 들렀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중구에서 하는 프로그램 알림을 봤죠.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김씨는 “이것이라면 내가 만든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중구는 지난 3월10일부터 4월 말까지 ‘중구 독립출판제작 지원사업’을 펼쳤다. 독립출판 교육과정 ‘위 메이크 북스’와 ‘시작, 작가’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지원사업은 중구의 인쇄사업 기반을 활용하고 지원금, 컨설팅, 강의 프로그램으로 독립출판을 돕는 사업이다. 프로젝트 경쟁률이 19 대 1에 이르는 등 독립출판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최종적으로 독립출판을 원하는 저자 30명과 중구 내 인쇄(출판)회사 32곳이 참여했다. 서로 멘토-멘티로 짝지어 독립출판 저자가 책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배울 수 있게 했다. 구는 이렇게 30권의 책을 만들어 8일 중구청 1층에서 출판 기념식과 전시회를 열었다.

김씨는 멘토 덕분에 책 만드는 과정이 무척 순조로웠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것이나 어려운 것을 얘기하면 대안을 제시해줬어요. 그래서 일반 인쇄에서 도전하기 힘든 것을 해봤죠.” 김씨의 책은 표지에 네모 구멍을 뚫은 ‘표지 타공’, 책등에 겉표지를 입히지 않은 ‘노출 제본’을 해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김씨는 “멘토인 인쇄회사 이사님이 무척 친절하게 잘 설명해줬다”며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덕분에 쉽게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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