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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가 행복한 도시, 관악구

‘자봉장려’ 서울 구청 우수행정 1위, 할인카드·릴레이 봉사 등 주효

등록 : 2016-12-29 15:27 수정 : 2016-12-2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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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자원봉사로 행복했던 관악구 자원봉사자들과 관악구청 직원들이 지난 20일 조촐한 송년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임록수·신상문씨, 정창교 관악구 정책실장, 이수진·이옥순씨, 임현주 자원봉사센터장, 이연경 자원봉사팀장, 김정준 자원봉사주임, 김상돈·경선옥씨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지금, 여기!”

임현주 관악구청 자원봉사센터장이 막걸리잔을 치켜들고 선창을 했다.

“사람들!”

김상돈(63), 경선옥(61), 이옥순(49), 임록수(48), 이수진(28), 신상문(25)씨가 힘있게 화답했다. 톨스토이가 말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다’를 압축한 건배사다.

지난 20일 저녁 관악구 관악구청 맞은편의 ‘우리가 참순대’ 식당. 나이대도, 성별도, 직업도 제각각인 관악구 주민들이 하나의 끈으로 엮여 모였다. ‘자원봉사'라는 끈이다. 자원봉사센터가 순댓국, 막걸리로 조촐하게 차린 송년회 자리다. 식탁의 안주 ‘시락(시래기)순대’는 가게 주인 이수진씨의 ‘서비스'다.

송년회 손님인 정창교 관악구 정책실장이 재빨리 ‘관악구 삼행시'를 제안했다. 서로를 잘 기억하기 위해 이름 석 자를 다른 사람이 풀어보는 관악구만의 인사법이란다. 이옥순씨 차례가 되자 누군가 “이 사람이 뭐시여(뭣이여)? 옥이여! 순수여!”라고 풀었다. 일제히 웃음이 터져나왔다. 삼행시가 이어지면서 서먹했던 분위기가 금세 부드러워진다.

이옥순씨는 10년 가까이 4117시간 봉사를 한, 그야말로 자원봉사 베테랑이다. 올해는 12월10일까지 282시간의 자원봉사를 했다. “특별히 신경을 썼다기보다 어느샌가 자원봉사가 일상이 됐네요.” 이씨는 다른 봉사자들의 놀라움과 칭찬을 계면쩍어했다. 그는 발마사지와 테이핑으로 봉사를 하는 ‘헬스리더 봉사단'의 부단장이다. 2008년부터 경로당과 요양원, 치매지원센터 등에서 1주일에 두 차례 꾸준히 봉사를 해왔다.

발달장애 아동의 사회성 향상을 돕는 서울대 동아리 ‘골뱅이 인연맺기'의 신상문(자유전공학부 4) 회장은 서울대생 30명과 봉사활동을 함께했다. 봄가을에 20차례, 토요일 오후에 관악구 자원봉사센터 교육실에서 17명의 장애 아동을 상대로 주말학교를 열었다. 음악과 미술 등 실내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숲 견학 같은 야외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세상과 소통하도록 도왔다. 신 회장은 자원봉사에 대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의무감 또는 시혜라는 느낌을 받지 않고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선옥씨는 사랑의 도시락 배달과 경로당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이·미용 봉사를, 임록수씨는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시각장애인용 녹음도서 제작 등의 봉사를 주로 한다.

이들의 다양한 활동은 관악구의 자원봉사 장려 정책과 맞물리며 큰 결실을 맺었다. 대표적인 게 우수자원봉사자 인정보상제다. 관악구는 1년에 36.5시간 이상 자원봉사를 하면 발급받을 수 있는 우수자원봉사자 카드가 봉사자에게 경제적 도움이 되도록 지난해 7월 이 제도를 시작했다. 우수봉사자 기준 36.5시간은 사람의 체온 36.5도에서 따 왔다. 365일 봉사를 하자는 뜻도 담겨 있다. 관악구는 봉사자가 구청과 협약을 맺은 가게나 공용시설에서 이 카드를 사용하면 5~30%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봉사자와 제휴 가게가 ‘윈윈'하는 모델이다. 송년회가 열린 ‘우리가 참순대'도 ‘좋은 이웃가게'다.

‘우리가 참순대'의 이수진씨는 우수자원봉사자를 돕는 자원봉사자다. 그는 지난해부터 우수자원봉사자 365명에게 순댓국 대접을 시작으로 홀몸노인, 장애인 등에게 ‘순댓국 봉사'를 해왔다. 이씨는 “자원봉사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그러나 내가 해서 스스로 더 발전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고 했다.

지난 2월부터 시작한 릴레이 자원봉사 ‘날자'(‘날개를 단 자원봉사’의 준말)의 효과도 컸다. 3명 이상의 단체가 봉사활동을 끝낸 뒤 다음 단체를 지명하고 ‘날개' 깃발을 넘기는 방식이다. 깃발을 받으면 2주 안에 봉사활동을 하도록 약속돼 있어, 봉사활동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좀 더 쉽게 시작하고, 좀 더 쉽게 활동하고, 좀 더 오래 지속하자는 취지다.

임 센터장은 “올 1월에 시작해 11월 말까지 212회에 걸쳐 2166명이 ‘날자' 릴레이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들이 더해져 관악구의 자원봉사는 크게 늘었다. 서울시 자원봉사센터의 집계를 보면, 관악구가 ‘자원봉사도시'를 선언한 2015년 7월부터 올 6월까지 1년 동안 관악구의 ‘실질 자원봉사자'(연간 1시간 이상 자원봉사를 한 사람) 수는 1만8163명으로 집계됐다. 그 이전 1년 동안의 1만1682명보다 55.5%나 늘어난 규모다. 또 2015년 한 해에만 자원봉사로 58억1300여만원의 경제적 효과도 거뒀다고 한다. 이 기간 관악구의 전체 자원봉사 시간인 28만5630시간에 전 산업 남녀 시간당 평균임금인 2만351.6원을 곱해서 나온 수치다. 관악구의 자원봉사 정책은 지난달 서울시가 주최한 ‘2016년 서울시 자치구 행정 우수사례 발표회’에서 1등에 해당하는 최우수상을 받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전문가는 물론이고 공무원, 시민 등 500여 명이 평가한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송년회에서 가장 연장자이지만, 올해 처음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한 ‘새내기’ 김상돈씨는 “봉사는 행복”이라고 정의했다. 김씨는 “관악구청 자원봉사평생대학을 수료한 뒤 관악산 텃밭에 직접 씨를 뿌리고, 가꾸고, 수확을 해 김장봉사를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어려워 하지 말고 간단한 봉사부터 시작하면 곧바로 행복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1년 만에 ‘자원봉사 전도사'가 된 셈이다.

임록수씨는 새해엔 다문화 가정 여성과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며 한글이 편해지도록 돕는 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김상돈씨는 “나는 악기 연주를 하는 동아리를 만들겠다”고 맞장구를 친다.

알딸딸한 술기운과 함께 송년회는 덕담으로 한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리고 아쉬운 마무리는 역시 건배사. “지금, 여기, 사람들!”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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