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서울살이를 좀 더 나아지게 하는 힘

전문가와 시민 500명이 선정한 5개 우수·장려구 혁신 사례

등록 : 2016-12-2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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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도 서울의 구청들은 혁신을 위해 애를 썼다. 현장이 혁신하면 주민들의 서울살이가 조금씩 나아지기 때문이다. 지난달 서울시가 개최한 ‘2016 자치구 행정 우수사례 발표회'에서 전문가·시민 등 500명이 투표해 뽑은 우수·장려구 다섯 곳의 혁신 사례를 소개한다.

양천구, ‘공공시설물 설치비’ 공개

행정과 재정의 투명성을 높여

우리 동네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공중 화장실은 얼마짜리일까.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든 공공시설물도 마트 진열대의 상품처럼 가격과 설치 정보를 알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양천구가 올해 시작한 공공시설물 설치비 표시 제도는 시민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평소 세금 쓰임새에 관심이 많았던 이영남씨는 “도로·하천 시설물, 자전거 보관대 등 구청에서 설치하는 시설물에 대해 설치 내용과 금액을 표시하면, 시설물이 적정하게 설치되었는지 시민들이 투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지난해 11월 설치 내용 공개를 제안했다.

시민의 제안이 사업으로 시행되기까지는 어려움도 많았다. 김향숙 양천구 성과관리팀장은 “제안의 실효성과 경제성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지만, 관련 부서 간 검토를 통해 이런 문제들을 중심으로 해결책을 찾아갔다”고 설명한다.

양천구는 시민 제안을 수용해 올해부터 발주하는 50만원 이상의 공공시설물과 1억원 이상의 공공건축물에 설치 시기와 금액 등의 정보가 담긴 표지판을 달고 있다. 지금까지 신정4동 주민센터(사진), 독서근린공원 야외 헬스기구 등 140건의 시설 정보가 공개됐다. 공공건축물에 대한 설치비 공개는 기존에도 있었지만, 운동·놀이시설 등 일반시설물까지 설치비를 확대 공개한 것은 양천구가 전국 최초다.

윤지혜 기자 wisdom@hani.co.kr, 사진 양천구청 제공


금천구, ‘빗물저류조’ 만들어

소통으로 기피시설이 생태공원으로

몇 해 전만 해도 금천구 시흥사거리 일대는 상습 침수 지역이었다. 2010년 추석 연휴 때는 기습적으로 쏟아진 폭우로 이 지역 961가구가 물에 잠겼다. 이듬해 7월에는 이틀 동안 퍼부은 비로 시흥사거리 주변의 1554가구가 침수 되고 2694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이에 금천구는 침수를 막기 위해 시흥계곡에 저류 용량 2만4000t 규모(사업비 151억원)의 빗물저류조 설치에 나섰다. 지하에 만드는 빗물저류조는 집중호우 때 빗물을 가두어 수해를 예방하는 거대한 물탱크다.

2013년 말 첫 삽을 뜬 빗물저류조 공사는 인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빗물저류조를 기피시설로 받아들이는 주민들은 사생활 침해, 경관 훼손 등을 이유로 사업 재검토를 요구했다. 저류조 위 8300㎡ 크기의 상부 시설을 놓고도 조용한 자연학습장을 원하는 주민들과 축구 전용구장 등 체육시설을 요청한 생활체육협회의 의견이 갈렸다.

이에 구는 인근 주민과 전문가, 공무원 등 24명이 모인 ‘주민참여 연구단’을 구성해 저류조의 순기능을 알리기 시작했다. 주민 의견 수렴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강행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저류조의 상부 공간에 대해서는 ‘다목적 잔디광장’을 희망하는 구민 설문조사 결과를 반영했다. 그렇게 주민의 마음을 하나하나 얻은 끝에 ‘시흥계곡 복합환경생태공원’(사진)이 들어섰다. 금천구 치수팀 이종석 주무관은 “빗물저류조가 주민들의 환영 속에 2015년 공사를 마쳤다. 지금은 누구나 좋아하는 복합환경생태공원이 됐다”고 말했다.

윤지혜 기자, 사진 금천구청 제공

성북구, ‘아동청소년 복지플래너’ 사업

더 촘촘한 복지 그물을 짜다

성북구 안암동 주민센터의 김에덴 ‘아동청소년 복지플래너’(아청플래너)가 김하나(16·가명)양을 처음 방문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집단따돌림과 폭력으로 여러 차례 학교를 옮겼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67일이나 등교하지 않고 있었다. 하나 양이 방문을 열고 김 플래너의 얼굴을 마주 보고 얘기하기까지 꼬박 두 달이 걸렸다. 하나 양은 지난 8월 중졸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 양은 “학교에 가는 것은 나에 대한 도전이고 모험”이라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2014년 ‘찾아가는 동마을복지센터’로 가장 빠르게 찾아가는 복지를 시작한 성북구가 지난해부터 전국 최초로 아청플래너로 생애 맞춤형 복지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아청플래너는 돌봄과 양육 지원이 필요한 아동과 부모를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과 복지를 제공한다. 성북구 20개 동에 1명씩 배치돼 활동하고 있다.

성북아동청소년센터의 손이선 센터장은 “아동청소년 문제는 대부분 가정이 출발점이기 때문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취학 대상 아동 전수조사는 물론 아동학대와 취약계층 아동 명단 등을 대상으로 방문조사를 벌였다”고 설명했다.

성북구는 아청플래너 프로그램을 통해 올해 들어 11월까지 아동청소년 1613명에게 물품을 지원하고, 복지 안내, 기관·후원금 연계, 상담 등을 했다.

박용태 기자 gangto@hani.co.kr

중구, ‘을지유람’ 프로젝트

낡은 골목길을 관광상품으로 만들다

서울 중구 을지로3가의 허름하고 좁은 골목. 골목에 들어서자 ‘OO후렉시블’ ‘??정밀’ ‘XX빠우’ ‘**시보리’ 등 페인트로 직접 그린 옛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에 이런 곳도 있었네” “시보리가 뭐지?” 젊은 연인은 보물을 찾은 듯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을지로3가 일대 골목의 숨은 볼거리와 특색 있는 이야기가 ‘을지유람'이라는 이름의 골목길 여행으로 탄생했다. 쇠락하고 있는 을지로의 활성화를 위해 골목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 시민들에게 선보인 것이다. 중구는 곳곳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홍보물을 만들어 을지유람을 알리고 있다. ‘해설사와 함께하는 도보관광’도 지난 4월부터 시작했다.

을지로3가역 주변 타일거리에서 시작하는 을지유람은 시원한 맥주 한잔과 함께 피로를 날릴 수 있는 ‘노가리 골목’, 한때 사업 논의 장소로 을지로 사장님들이 붐볐던 을지다방, 평양냉면 마니아라면 모를 수 없는 을지면옥, 손글씨로 쓰인 간판이 전혀 낯설지 않은 공구거리, 가전제품을 싼값에 살 수 있었던 ‘세운상가’ 등의 코스로 짜여 있다. 정명호(74)씨는 “내가 살던 시대를 아들 내외, 손자와 함께 체험할 수 있어서 정말 뿌듯했다”며 을지로 골목 시간여행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도보관광은 무료이지만, 적어도 이틀 전에는 중구 누리집(junggu.seoul.kr)에서 신청해야 한다.

김정엽 기자 pkjy@hani.co.kr, 사진 중구청 제공

광진구, ‘악취 지도’ 제작

나쁜 냄새와 전쟁 벌여

악취 때문에 서울 시민들이 제기한 민원은 2010년 1735건에서 지난해 3572건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광진구도 예외가 아니다. 악취 관련 민원은 지난해 150건 정도였다. 구는 ‘나쁜 냄새와의 전쟁’을 벌이기로 작정했다.

광진구는 2014년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함께 하수 악취 저감 방안 연구에 나섰다. 연구 결과, 하수 악취의 주원인은 대형 정화조에서 배출된 오수와 하수관 안에서 썩은 음식물 쓰레기였다. 구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관내 500인조 이상 대형 정화조를 비롯해 하수박스, 전통시장, 악취 민원 발생지 등 789곳을 조사해 전국 최초로 ‘악취 지도’를 만들었다. 악취 지도는 1~5등급의 농도로 악취 지역을 구분했다. 악취 저감 대상인 4~5등급은 485곳으로 나타났다.

구는 하수박스 상단에 분무식 장치를 설치해 물을 뿌려 악취의 주원인인 황화수소를 녹이고, 대형 정화조에서는 악취를 없애는 황산화 박테리아를 배양하고, 정화조 하단에 공기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악취를 줄였다. 7억1000여만원의 예산을 들여 악취 차감 시설을 설치해, 4등급 312곳과 5등급 104곳을 3등급으로 개선했다.

구의동에 사는 이영래(53)씨는 “여름에 아파트 주변 하수구에서 악취가 심했다. 구에서 직접 만든 악취 저감장치를 설치한 뒤 냄새가 사라졌다”며 고마워했다.

박용태 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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