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 농사짓자

비닐하우스에서 ‘잘 사는 법’을 묻다

굽고, 마시고, 묻고…한겨울 노루뫼농장에서 여물어가는 인문학

등록 : 2016-12-2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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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에 열렸던 비닐하우스 안 인문학 강좌 모습. 도시농부들의 인문학 공부는 지식을 얻기보다는 사람답게 사는 길을 묻고 나누는 데 목적이 있다. 

18일 낮 고양시 구산동 노루뫼농장에 예닐곱 도시농부들이 모였다. 목적은 올겨울 인문학당 운영 문제를 논의한다는 것이지만, 속셈은 딴 데 있었다. 먼저 도착한 ‘민정 쌤’의 손에는 묵직한 삼겹살 봉지와 손수 담근 고추마늘장아찌가 들려 있다. ‘아침바다’는 막걸리 네댓 병과 식수를 가져왔고, ‘찬우물’은 겨울 추위를 견디고 있던 당근 등을 캐왔다.

‘번개’를 청한 농장지기 ‘지우도농’은 이미 상을 차려놨다. 토종파무침, 배추장아찌, 절인무양파무침 그리고 칼칼한 절임고추맑은탕도 내놨다. 생강·마늘·양파 등으로 맛을 낸 물을 절임배추에 부어 만든 배추장아찌는 ‘지우도농’의 자랑이다. 어떤 육류와도 잘 어울려 그야말로 고기도둑이다. ‘지사우천’은 일찍부터 화목을 장만했다.

몸으로 묻고 몸으로 답하다

과연 논의는 간단하게 끝났다. 올겨울도 인문학당 해야죠? 일단 1월7일 개강하는 걸로 하고, 첫 강좌는 안철환 선생께 부탁하면 어떨까요? 좋습니다! 오늘 논의는 이걸로 끝. 자 어려운 과제를 풀었으니 한잔! ‘민정 쌤’은 ‘힘든’ 논의를 하는 식구들을 위해 열심히 삼겹살을 구워낸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간판 하나가 걸려 있다. ‘풍신난 농부들’ ‘비닐하우스 인문학당’. 지난 1월 시작했다. 기나긴 농한기, 농장 식구들을 만나고는 싶은데, 적당한 핑계가 없었다. 지우도농이 공부 모임을 제안했다. 울고 싶은데 뺨 맞은 듯, 노루뫼 식구들은 전폭적으로 동의했다. 남종훈 선생의 논어 강좌 ‘2500년 전 공자와 21세기의 공자를 만나다’, 임원경제연구소 정정기 박사의 ‘공자의 식탁, 풍석의 밥상’ 등 6차례 진행했다. 참석자들이 1만원씩 내, 재능기부를 한 강사에게 차비 5만원을 드리고, 나머지로는 술과 안주를 장만했다.

인문(人文)이 아니라 인문(人問)이다. 사람에 대해 묻는다니, 거창하다. 답이나 있을까? 답이 있었다면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이렇게 자신과 이웃을 힘들게 하며 살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노루뫼 농부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입이 아니라 몸으로 묻고 몸으로 답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 잘 살고, 모두가 행복하자는 것 아니겠는가. 욕심 조금씩 내려놓고,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것 아닐까. 농사가 그것인데 무엇을 또 궁구할 것인가.


사실 농장을 조금만 둘러봐도 ‘잘 사는 법’이 속살을 드러낸다. 농장은 초입부터 어수선하다. 나뭇잎이나 왕겨가 담긴 대형 포대가 쌓여 있고, 버섯 배지나 나뭇잎, 농작물 부산물이 비닐에 덮인 채 퇴비로 숙성되길 기다리며 길게 쌓여 있다. 이어 10평이나 될까? 덧댄 비닐이 겨울바람에 휘파람을 불어대는 비닐하우스가 있다. ‘풍신난 도시농부들’의 ‘생태적 가치와 자급하는 삶을 추구하는 공동체’의 베이스캠프이자, 학당이다.

가족용 캠핑 텐트가 이어진다. 털다 만 콩대가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곳간이다. 옆에는 철제 선반과 나무 패널로 만든 농기구 거치대가 있다. 버려진 것들이 여기서는 이렇게 요긴하다. 스무 발자국 떨어진 곳에 각목과 플라스틱 슬레이트 등을 얽어 만든 변소가 있다. 내부는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앞쪽에는 남자 소변기. 플라스틱 통에 물받이를 끼워 만들었다. 안쪽에는 여자용 소변기가 있고 이어 큰일을 위한 변기가 있다. 옆에 왕겨 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을 본 뒤 한 바가지 퍼서 덮으라는 것이리라.

도시민들은 기겁할 구조지만, 청담동 여자도, 도곡동 ○○팰리스 남자도 거기서 일을 본다. 그렇게 모인 것들은 숙성되어 작물의 간식인 웃거름(오줌액비)이 되고, 주식인 밑거름이 된다. 최고급 유기농 매장까지 딸려 있는 팰리스에 사는 남자는, 그렇게 밑거름 웃거름 먹고 자란 무와 배추, 마늘, 양파가 대한민국 최고라고 평가한단다.

‘배출’도 생산이 되는 농장의 삶

‘풍신난’이란 ‘개갈나지 않는다’(시원치 않다,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뜻의 충청도 사투리)는 뜻. 어느 날 한 관행농 농부가 벌레 먹어 망사가 되어버린 노루뫼 배추를 보고 혀를 차며 한 말이다. 약을 치지 않으니 벌레가 꼬일 수밖에 없고,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니 배추는 헐렁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제법 숙달된 지금은 관행농 배추만은 못해도 속이 제법 실하다. 그게 똥과 오줌 덕이라고 풍신난 농부들은 믿는다.

900여 평의 밭은 서른 명 남짓 되는 도시농부들에게, 작물 공동체 농사에, 혹은 개인 텃밭으로 분양됐다. 텃밭 가드너 마늘공동체, 찬우물 양파 마늘 공동체, 팝콘 옥수수 공동체 등. 청담동 여자는 혼자서 20평씩이나(?) 경작한다. 물이건 퇴비건 인공적 투입을 억제하고, 김매기도 되도록 줄인다. 남는 시간에는 함께 먹고 마시고, 요컨대 많이 논다. 단 먹고 배출하는 건 농장 변소에서 한다. 그게 잎채소가 되고, 알뿌리가 되고, 열매가 되고, 밥이 되는 것이니. 욕심 낼 게 없다.

배도 부르고 불콰하니 술기운도 돌고, 밭으로들 나간다. 양파 싹이 벌써 한 뼘이나 자랐다. 왕겨, 짚으로 덮은 마늘밭은 조용하다. 갓은 이파리를 흙에 붙인 채 겨울을 이기고 있고, 새파란 시금치와 쪽파는 여전히 기운이 성성하고, 마른 풀 사이로 고수도 꼬물꼬물 새잎을 내고 있다. 지우도농이 변소로 간다.

글·사진 지우도농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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