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카페서 하는 근무, 치매 진전 막아줘요”

개점 한 달여 지난 강서구치매안심센터 ‘초록기억카페’ 1호점

등록 : 2023-10-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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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등촌동 강서구치매안심센터 내 ‘초록기억카페’ 1호점에서 지난 5일 초로기 치매 환자들이 음료를 만들고 있다.

초로기 치매 환자 치료·참여 프로그램

자존감 회복, 무기력감 낮추는 데 도움

사람 자주 만나면 인지 기능 유지 효과

“초록기억교실과 함께 시너지 기대”

강서구 등촌동 강서구치매안심센터에 들어서자 ‘초록기억카페’ 1호점이 한눈에 들어왔다. 주문이 들어오자 종업원으로 근무하는 초로기 치매 환자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음료를 만들어 가져다줬다.

“여기 오기 전에는 건강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많이 건강해졌어요.” 초로기 치매 환자 엄순남(57)씨는 2021년부터 강서구치매안심센터에 왔다. 초로기 치매 환자를 위한 프로그램 ‘초록기억교실’에 꾸준히 다니고, 초록기억카페가 문을 열자 종업원으로 근무한다. 손님이 주문하면 야채주스, 생강차, 매실차, 커피 등을 만들어준다. 엄씨는 5일 “주문받는 것이나 음료를 만드는 게 어렵지는 않다”고 했다. 지난 추석 연휴 전에는 월급도 받았다.

“기분 좋았죠. 애들에게 엄마가 ‘쏜다’고 했더니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엄씨는 매일 집에서 강서구치매안심센터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초기에는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일은 없어요. 혼자 다닐 정도로 치매가 심하지는 않아요.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으면 좋죠.” 엄씨는 “애들도 모두 건강하게 잘하고 있으니 저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으면 무척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엄씨 옆에 서 있는 전준광(49)씨에게 언제부터 일하기 시작했냐고 묻자 “오늘부터”라고 짧게 답했다. 이어 나이가 몇 살인지 묻자 “스물네 살”이라고 했다. 순간 조금 의아했다. 마흔 살은 넘어 보이는데 스물네 살이라고 하니 잠시 잘못 들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아니”라고 알려줬다.

전씨의 엉뚱한 대답은 치매 때문이다. 전씨는 2014년 뇌병변으로 쓰러진 이후 혈관성 치매 진단을 받고 강서구치매안심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 “쓰러지기 전에 일어난 일은 대부분 잘 기억하지만, 쓰러진 이후 일은 잘 기억하지 못해요.” 전씨와 함께 온 어머니 노미자(80)씨는 “쓰러진 이후 한동안 말도 안 하고 걸음도 잘 못 걸었지만 강서구치매안심센터를 다니고부터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카페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니 좋죠. 밖에 자주 나와 버릇해야 해야 더 이상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을 듯해요. 그리고 젊은 사람들끼리 모여 대화도 하면 좋겠어요. 같이 마음 맞춰서 얘기하면 좋잖아요.” 노씨는 “아들의 상태가 더는 나빠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무인단말기로 주문한 음료 주문서.

강서구치매안심센터가 8월부터 초로기 치매 환자들이 운영하는 초록기억카페 1호점을 열었다. 서울시광역치매센터의 초로기 치매 환자를 위한 프로그램 중 하나인데, 다른 자치구보다 일찍 초로기 치매 환자를 위해 초록기억교실을 운영해온 강서구치매안심센터에 처음으로 만든 것이다. 초록기억카페는 초로기 치매 환자들이 자연스럽게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치료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위축된 사회생활을 다시 할 수 있도록 돕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치매는 발병 시기에 따라서 초로기 치매와 노인성 치매로 나뉜다. 초로기는 노년의 초기를 뜻하는데, 초로기 치매는 65살 이전에 발병하는 치매를 가리킨다. 조기 발현 치매라고도 하는데, 대부분 알츠하이머, 전두측두엽, 혈관성, 루이체 치매 등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초로기 치매는 질환 상태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비전형적이다. 뇌의 손상 정도가 크고 진행 속도도 빠르다. 이로 인해 자존감이 크게 떨어지고 좌절이나 우울 증세도 매우 심하다. 사회적 낙인과 편견, 고립감과 단절도 겪는다.

강선옥 강서구치매안심센터 총괄팀장은 “초로기 치매는 65살 이전에 발병하는 치매로 전체 치매 환자의 약 9%를 차지한다”며 “노인성 치매에 비해 진행 속도가 빨라 조기 발견과 치료가 중요하지만, 조기 발견이 어렵고 치료나 돌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돌봄과 치료가 어려운 건 치매 환자 치료와 돌봄 서비스가 대부분 노인성 치매 환자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카페 종업원이 카페 좌석을 정리하고 있다.

강서구치매안심센터는 2019년부터 초로기 치매 환자를 위한 초록기억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2021년부터 2개 반, 올해는 3개 반으로 늘렸다. 초로기 치매 환자 30여 명이 ‘힐링팜 프로젝트’, ‘틀려도 괜찮아, 안심마켓’, 원예수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초록기억카페 1호점에는 초로기 치매 환자 10명이 근무한다. 무인주문기로 주문받기, 손님 응대하기 등 카페 운영을 통해 인지 기능과 일상생활 수행 능력을 높이고 경제 활동 기회도 얻는다. 실내에서 직접 수경 재배한 신선한 채소로 음료를 만들어 판매한다.

“치매 환자들이 단어를 곧바로 떠올리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사물을 직접 보면 단어를 떠올리기 쉽죠. 이런 기능을 계속 유지해주는 게 중요해요.” 강 총괄팀장은 “집에만 있으면 말하고 싶은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지만, 여기서 일하면 그런 단어들을 떠올릴 수 있다”며 “누군가를 만나고 얘기하는 것이 인지 기능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돼 계속 밖으로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강서구치매안심센터는 초록기억카페를 통해 초로기 치매 환자들의 일상생활 능력을 높이고, 치매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방지하며, 가족의 돌봄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강 총괄팀장은 “자신의 수행 능력에 확신이 없어 불안감이 높아진 치매 환자에게 의미 있는 낮 시간 활동으로 자존감을 높이고 무기력감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며 “초록기억교실과 함께 좋은 프로그램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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