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약자 삶 나아지게 하고 환경 살리고”…젊은 사회적기업이 쏘는 ‘희망’

기업 활동으로 사회문제 푸는 ‘3인 3색’ 청년 사회적기업가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2022년 육성 사업 우수 창업팀에 뽑혀

등록 : 2023-10-26 15:15 수정 : 2023-10-26 16:20

크게 작게

“사회에 긍정적 영향 주는 지속가능 기업이 되는 게 목표”

안무서운회사

은둔·고립 위기 청년 발굴하고 지원

이야기프로덕션

사배자 대상 웹툰 교육·일자리 연계

로우리트콜렉티브

버려진 병뚜껑에 쓰임·디자인 입혀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은 2011년부터 해마다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을 펼쳐왔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기업 활동을 통해 풀어가고자 사회적기업 창업에 도전하는 팀들에 교육, 멘토링과 사업비 지원 등을 하는 사업이다. 지난 한 해 800여 팀을 육성해 이 가운데 의미 있는 성과를 낸 우수 팀 39곳을 선정해, 오는 30일 열리는 성과공유회에서 시상한다. <서울&>은 이 가운데 서울 지역의 청년 사회적기업가 3명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은둔·고립 위기 청년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안무서운회사'의 유승규 대표가 18일 강북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 있는 사무실 앞에 서 있다.

‘안무서운회사.’ 세상에 둘도 없을 것 같은 회사 이름이다. 은둔형 외톨이 경험이 있는 두 명을 포함해 4명이 지난해 2월 만든 회사다. 대표를 맡은 유승규(30)씨도 5년 동안 은둔 생활을 했다. 그가 용기를 내 사회 복귀를 할 수 있었던 건 케이투(K2)인터내셔널코리아 덕분이었다. 일본에 본사를 둔 한국 지사였는데, 코로나19로 재정난을 겪으며 2021년 12월 문을 닫았다.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케이투 사업은 ‘안무서운회사’로 이어졌다. 지난해 연말 서울시 창의혁신형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았다.

유 대표가 같은 날 삼양동에 있는 셰어하우스 내부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18일 강북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유 대표는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제대로 된 지원 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그간 우리 사회는 은둔·고립 청년을 개인 문제로 치부해왔는데, 이를 사회문제로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청년 고립이 장기화해 은둔·고립 청년이 중장년이 되면 훨씬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든다는 조사도 있다. 유 대표는 “전통적 개념의 취약계층 틀에서 벗어나 은둔·고립 청년의 취약 상태를 인정하고 지원하는 법 제도가 마련될 수 있게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했다.

회사의 주요 사업은 셰어하우스 운영, 은둔·고립 청년 피어서포터즈 ‘은둔 고수’ 양성, 발굴과 인식개선 등을 위한 콘텐츠 제작사업 등 세 가지이다. 지난해 7700만원이었던 매출은 올해는 3배 정도 늘어 2억5천만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기부금이나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고 10여 개의 용역사업을 열심히 수행했다. 유 대표는 “비즈니스적으로 큰 수익을 내기는 어렵지만, 나름의 성장과 활로를 찾아가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안무서운회사’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콘서트 ‘꼭꼭 숨었쇼'에서 직접 만든 음원과 연극으로 공연하고 있다. 안무서운회사 제공

현재 강북구 삼양동 셰어하우스 두 곳엔 8명이 생활한다. 그간 셰어하우스를 거쳐 간 12명 가운데 8명은 취업·학업에 복귀했고, 나머지 4명도 재고립되지 않아 실효성이 높다고 본다. 은둔 고수 프로그램으로 양성한 5명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콘텐츠 사업에서는 당사자들에게 닿을 수 있게 유튜브, 개인 방송 등의 채널에 홍보 영상 콘텐츠를 준비한다. 가족 등 주변인 교육을 위한 콘텐츠도 개발하고 있다.

유 대표는 10년 뒤 ‘안무서운회사’에 무섭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져 누군가가 조금 더 빨리, 쉽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 있길 기대한다. 그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우리 회사가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게 성장해가려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배려 계층의 청소년·청년을 대상으로 웹툰 교육을 하고 일자리를 이어주는 ‘이야기프로덕션'의 김다솜 대표가 17일 대방동 사무실 교육장에서 기업활동에 관해 설명하며 웃고 있다.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사를 꿈꾸며 사회적 배려 계층 청소년·청년에게 웹툰 교육과 일자리를 연계하는 이야기프로덕션의 김다솜(26) 대표. 그에게 지난 3년은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의 시기였다.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한부모가정, 자립준비청년, 취약계층 등 사회적 배려 계층의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지난해 사회적기업 창업 도전에 나섰다.

이야기프로덕션은 웹툰을 제작하고 유통하면서 지난 한 해 1억72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20여 명의 사회적 배려 계층 청소년에게 웹툰 관련 교육을 하고, 이 가운데 80%는 일자리나 진학으로 이어질 수 있게 도왔다. 경제적, 사회적 성과를 함께 내는 점을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의 일자리형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됐다.

지난 17일 동작구 대방동 이야기프로덕션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그는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졸업할 즈음에 웹툰으로 눈을 돌렸다. 주위의 추천으로 웹툰 기획자 교육을 받고 대기업의 사회공헌 사업으로 진행하는 웹툰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개인사업자로 시작했다. “재능은 있는데 실력을 갈고닦을 기회를 얻지 못한 친구들을 보니 안타까웠다”며 “좋은 교육과 함께 자립에 도움이 되는 취업이나 진학 연계 서비스도 제공하기 위해 사회적기업을 만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해 4월 드림메이커스 교육 참가자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이야기프로덕션 제공

좋은 교육이 되기 위해 무엇보다 수강생들이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데 중점을 두며, 웹툰을 만드는 기술만 알려주기보다는 전체 과정을 다 거쳐 한 화를 만들어볼 수 있게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을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일자리를 얻거나 진학 때 활용할 수 있게 돕는다. 김 대표는 “작품 하나를 온전히 만들면서 기술은 덤으로 익힐 수 있게 진행해 교육 만족도가 높다”고 전했다. “잘 배웠다며 자신도 나중에 어려운 여건의 후배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얘기를 들으면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매출을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는 데 김 대표는 역점을 둔다. 지속가능한 사회적기업이 되는 데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야기프로덕션 매출 대부분은 외주 작품 제작에서 나오고 있다. 김 대표는 “30~40명의 인력풀을 두고 있어 콘티와 각색, 선화, 채색, 배경, 보정 등 단계마다 인력을 안정적으로 투입하고 있다”며 “작품 연재가 끊기지 않게 납품하면서 원청사의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프로덕션은 장기적으로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사로 발전해나가려 한다. 김 대표는 “웹툰으로 시작했지만 콘텐츠의 원 소스 멀티 유스로 드라마, 영화 등으로 넓혀가고 싶다”고 했다. 그가 함께 이뤄내고 싶은 또 다른 목표도 있다. 취업 연계를 진행한 경험을 계속 쌓아가면서 기업 업무와 작가 성향을 맞추는 구인·구직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는 “웹툰 업계의 ‘사람인’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버려진 병뚜껑에 쓰임과 디자인을 입혀 제품을 만들며 플라스틱 다회 사용을 지향하는 ‘로우리트콜렉티브'의 최재식 대표가 18일 금천구 독산동에 있는 공장에서 제품들 앞에 앉아 있다.

‘플라스틱은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소재인데 왜 한 번 쓰고 버려질까?’ 최재식(31) 로우리트콜렉티브(로우리트) 대표를 창업의 길로 이끈 질문이다. 로우리트는 재활용조차 잘 안 되는 병뚜껑 등 작은 플라스틱에 쓰임과 디자인을 입혀 가구, 인테리어 자재 등을 만드는 기업이다. 2021년 시작해, 지난해 연말 창의혁신형으로 환경부의 예비사회적기업 지정을 받았다.

지난 19일 오후 금천구 독산동에 있는 로우리트의 공장. 50여 평 공간은 작업대, 열성형 가공실, 프레스 가공실 등으로 나뉘어 있고 곳곳에 스툴, 테이블 등의 제품들이 쌓여 있었다. 금천시니어클럽 어르신 3명이 병뚜껑 분류 작업에 한창이었다. 최 대표는 “만들어진 제품이 오랫동안 쓰임새를 갖고, 사용 뒤에 또다시 재활용될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여긴다”고 했다.

‘태산 벤치’는 최 대표가 창업 3년차인 로우리트의 대표적인 성과물로 꼽는다. 로우리트가 디자인하고 제작해 지난해 도심 쉼터 ‘청계천’에 10대 설치했다. 대기업의 ‘재활용을 통한 플라스틱 순환경제 체제 구축을 위한 사회공헌 프로젝트’에 참여해 만든 공공벤치다. 최 대표는 “수묵화 속 켜켜이 쌓인 먹색 북한산에서 영감을 받았고, ‘티끌 모아 태산’처럼 재활용이 어려워 폐기되는 ‘티끌’ 플라스틱을 모아 만들었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며 “판재의 품질과 원료 배합 기술을 업그레이드해 만들어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최 대표가 같은 날 직원들과 기획 회의를 하고 있다.

로우리트는 재활용 폐플라스틱 자재가 더 널리 쓰이고 오래갈 수 있도록 천연섬유를 배합하는 등의 연구 개발을 진행해오고 있다. 태산 벤치에는 대마 줄기, 조명기에는 굴 껍데기 등을 섞었다. 최 대표는 “물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천연섬유나 바이오매스를 배합해 양산성이 높고 기능성과 강도가 좋은 폐플라스틱 자재를 개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로우리트 임직원 5명은 각자의 전공을 살려 역할을 한다. 소재에 대한 연구는 주로 최 대표가 한다. 소재 관련한 여러 논문을 읽고 폐플라스틱과 천연섬유 비율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물성 강화를 테스트한다. 최 대표가 소재와 제품의 콘셉트를 만들면, 현대미술 전공자가 비주얼화하고 산업디자인 전공자는 제작을 맡는다.

지난 9월 영국 런던 디자인페어에서 전시하고 돌아온 조명 작품의 포장을 벗기고 불을 켜자 모두 작업하던 손을 멈추고 “와! 멋지다”며 박수를 쳤다. 로우리트는 버려지는 플라스틱이 일으키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 이들에게 생활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물건으로 다가가려 한다. 최 대표는 “언젠가는 재활용 제품을 쓰는 게 일상적인 시대가 올 거라고 본다”며 “버리지 않고 계속 갖고 있을 만한 이유가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