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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시대, 스트레스와 불안 해소는 ‘멈춤’에서 시작한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 스타트업 ‘디마인드 프로그램’ 진행
정신건강과 대화법, 회복탄력성 등의 주제로 전문가 특강 이어가

등록 : 2023-11-09 16:02 수정 : 2023-11-0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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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핵심 욕구’ 먼저 밝혀야 건강한 대화 이어갈 수 있어”

스트레스 대처

책읽기·산책 등 매일 가능한 계획 중요

불안 다루기

릴렉스 등으로 ‘과도한 뇌 예측’ 막아야

대화를 잘하는 방법

대화 때 중요한 것은 공감·존중·유대감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는 지난 10월24~26일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디마인드(d·mind)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정신건강 상태가 일반 성인보다 좋지 않은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위해 스트레스와 불안 해소법, 의사소통 방법, 회복탄력성 구축 방법 등을 살펴봤다. 사진은 디마인드 프로그램에 참여한 강사들. 왼쪽부터 ① 베스트셀러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저자 정문정 작가 ②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 ③ 인간 소통 문제를 다루는 박재연 리플러스인간연구소장 ④ 뇌과학자이면서 인기 유튜버인 장동선 박사 ⑤ 20여년의 실리콘밸리 근무 경험이 있는 김미루 피플앤컬쳐 대표. ①~④ 디캠프 제공, 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우울증 환자 100만 명 시대’에 스타트업 관계자의 정신건강법은 어떤 것일까?”

지난 10월24~26일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가 마련한 ‘디마인드(d·mind)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는 국내 시중 은행 18곳이 청년 창업을 위해 2012년 설립한 창업육성기관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작성한 ‘최근 5년간(2018~2022년) 우울증 진료 인원 현황’을 보면, 2022년 우울증 증상(질병코드 F32, F33)으로 병원을 찾은 이는 100만744명이었다. 우울증 증상으로 치료받은 환자는 2018년 75만2976명, 2019년 79만911명, 2020년 83만2378명, 2021년 91만5298명 등으로 꾸준히 늘어오다가 지난해 100만 명을 넘겼다.

스타트업 관계자의 정신건강 상태는 일반 성인보다 크게 좋지 않다. 지난해 디캠프가 발표한 ‘스타트업 창업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자. 국내 스타트업 창업자 27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분석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스타트업 창업자 중 중간 수준 이상의 우울을 겪는 사람은 32.5%(271명 중 88명)로 전국 성인 평균(18.1%)보다 높았고, 불안의 비율도 20.3%(55명)로 평균(12.2%)을 훨씬 웃돌았다. 또 창업자 10명 중 2명이 자살 위험성 고위험군에 속해 보다 정확한 평가와 개입이 필요한 상황으로 나타났다.

2019년부터 스타트업 창업자를 비롯한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디마인드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디캠프가 올해는 3일간에 걸쳐 4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도 ‘우울증 환자 100만 명 돌파’ 같은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만큼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정신건강에 더욱 관심을 쏟아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디마인드 프로그램’은 먼저 10월24일 저녁 ‘힘들고 지친 당신의 회복을 위한 이야기’로 출발했다. 뇌과학자이면서 인기 유튜버인 장동선 박사와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가 “정신의학·뇌과학에서 바라보는 불안과 무기력에서 회복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둘째 날인 10월25일에는 ‘인간관계가 어려운 당신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베스트셀러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저자 정문정 작가, ‘건강하게 말하고 듣는 방법을 다시 배우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는 박재연 리플러스인간연구소장과 함께 ‘인간관계와 소통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나’를 지키는 소통방법’을 찾아봤다.

셋째 날에는 두 개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먼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약 20년간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김미루 피플앤컬쳐 대표가 ‘내일부터 활용 가능한 단단한 내면 시스템 구축 방법’이라는 주제로 그룹코칭을 진행했다. 이어 저녁 7시부터는 배기홍 스트롱벤처스 대표와 신재명 딜라이트룸 대표가 주도해 ‘선배 창업자와 투자자가 함께하는 솔직담백한 이야기’라는 주제로 스타트업 선후배들이 함께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이 프로그램들은 스타트업 관계자를 위한 것이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이에 마포구 공덕동 프론트원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지난 10월말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가 마련한 ‘디마인드(d·mind) 프로그램’에서 정신과전문의 하지현 교수가 “정신의학·뇌과학에서 바라보는 불안과 무기력에서 회복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디캠프 제공

스트레스 대처법(하지현 교수)

100살까지의 삶이 점차 현실화하는 상황에서는 1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처럼 단거리를 빨리 달리는 것보다 송해 선생님처럼 60살에 전성기를 시작해 93살까지 전성기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관련된 세 가지 요소를 꼽자면 △예측 가능성 △조절 가능성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식 유무다. 어떤 일을 예측할 수 있고 자기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는 크게 줄어든다.

사실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문제는 지나친 스트레스인데, 이때 필요한 것은 ‘조금 김을 빼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모든 일에서 어떻게 하면 힘을 더 잘 줄까를 고민해왔다. 사람을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에 비유하면 ‘어떻게 하면 언제나 최적의 튜닝 상태로 둘까’ 그런 얘기만 있었던 것이다.

한 바이올리니스트를 조명한 다큐멘터리가 기억난다. 그 바이올리니스트는 30분 동안 정성 들여 튜닝한 바이올린을 공연이 끝나고 다 풀어버렸다. 내일 공연이 있는데 왜 푸느냐고 묻자 그는 “밤새 텐션이 걸린 채 있으면 프레임에 무리가 갈 수 있다”고 답했다. 우리 몸과 스트레스를 잘 비유한 장면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김을 빼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매일매일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기다. 바다낚시, 캠핑, 제주 한 달 살기도 좋은 방안이지만 매일 할 수 있는 계획이 더 좋은 방안이다. 전세계 135개국 1만8천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 ‘잘 쉬는 기술’ 10가지에 책 읽기, 음악 듣기, 아 무것도 안 하기, 산책, 목욕 등이 포함돼 있다.

지난 10월말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가 마련한 ‘디마인드(d·mind) 프로그램’에서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가 불안에서 벗어나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디캠프 제공

불안 다루기(장동선 박사)

인간의 뇌는 살아남으려 두 가지를 위해 진화했는데, 그중 하나가 ‘예측’이고 다른 하나는 ‘공감’이다. 바뀌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래 예측 능력이 있어야 하고, 또 세상을 헤쳐나가려면 하나의 뇌만으로는 모자라니까 협력해야 하는데, 이때 다른 뇌들이 어떤 감정을 가졌나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위기가 오지 않았는데도 뇌가 과잉 시뮬레이션을 하면 불안이 생겨난다. 이렇게 불안은 미래 예측을 잘하기 위해 진화한 뇌가 과잉행동을 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따라서 불안을 없애려면 운동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 등으로 이 과잉행동을 끊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스트레칭을 하는 등 몸을 릴렉스시켜주거나, 감동적인 음악을 들음으로써 주의를 그곳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박재연 리플러스인간연구소장이 지난 10월말 진행된 디캠프의 디마인드 프로그램에서 소통 잘하는 법을 강연하고 있다. 디캠프 제공

올바른 의사소통 방법 (박재연 리플러스인간연구소 소장)

올바른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핵심 욕구가 무엇인지 말한 뒤 나의 요구사항을 덧붙이는 것이 좋다.

가령 부하가 가지고 온 보고서가 너무 산만하고 복잡해서 이해가 안 된다고 하자. 이때 부하에게 다짜고짜 화낸다면 둘 사이 관계는 나빠지고 원하는 것도 얻을 수가 없다. 이때는 “그 보고서가 명료했으면 좋겠다”는 내 요구사항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한번은 집안 물건을 당근마켓에 내다판 딸을 “미친×”이라고 욕해서 딸아이가 가출한 사례를 상담한 적이 있다. 이때의 해결책도 자기의 핵심 욕구가 무엇인지 찾는 것이다.

당시 부모에게 어떤 욕구를 가졌는지를 적어보라고 했다. 아버지는 ‘신뢰’, 어머니는 ‘이해’를 적었다. 아버지에게 지금 중요시하는 것을 딸에게 그대로 얘기해보라고 했다. “아빠는 너하고의 관계에서 신뢰가 중요해. 그런데 너는 왜 집안 물건을 몰래 내다팔았는지 듣고 싶어.” 딸도 아버지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신뢰라는 사실을 듣고는 서로 화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대화에서 내가 원하는 욕구가 무엇인지 밝힌다면 갈등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베스트셀러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저자 정문정 작가가 대화를 잘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디캠프 제공

대화를 잘하는 방법(정문정 작가)

말을 잘하는 사람도 대화는 못할 수 있다. 말에서 중요한 것은 발음과 발성, 목소리, 메시지, 눈빛 등인데,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공감, 존중, 유대감 등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이 사람이 왜 이야기를 할까” 하면서 숨어 있는 메시지를 봐야 한다. 이때 공감은 특히 중요하다.

그 밖에도 대화를 잘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그 첫 번째가 ‘반응의 강도 줄이기’다. 대화할 때 상대와 비슷한 표정을 짓거나 가만히 쳐다보기를 시도해보면 좋다. 또 친교의 표현을 줄이고 필수적인 대답만 해보면 좋다.

또 즉각적인 반응을 하지 않고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군요” 등과 같이 상대의 질문을 되돌려주거나 상대방 말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도 좋다. 이를 통해 상대방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고 답변할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이 이상한 행동을 할 때면 ‘분노보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대할 필요가 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하게 됐을까?” “무슨 논리로 자신을 방어하고 있을까?” 등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화났을 때 얘기하면 그 대화는 파국으로 간다. 그러므로 호기심을 갖고 생각하는 동안 잠시 쉬면서 분노를 잠깐 돌린 뒤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미루 피플앤컬쳐 대표가 지난 10월말 열린 디캠프의 디마인드 프로그램에서 회복탄력성 회복 시스템을 갖추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단단한 내면 시스템 구축 (김미루 피플앤컬쳐 대표)

단단한 내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자기 인식 및 관리를 하고 △가치와 비전을 점검한 뒤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자기 인식과 관리를 위해 호흡과 명상에 집중하고 하루하루의 감정을 기록해두는 것도 유용하다.

스타트업 대표들이 지난 10월26일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지원 센터인 ‘프론트원’에서 김미루 피플앤컬쳐 대표가 주도하는 코칭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가치는 인생의 지도다. 내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큼 떨어져 있는지 어떤 방향이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자기가치를 알기 위해 존경하거나 본받고 싶은 인물 세 사람을 적어보고 왜 그들을 존경하는지 살펴보자. 이를 통해 자기에게 중요한 핵심가치 다섯 가지를 뽑을 수 있다.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우선 내면의 안정이 중요하다. 이후 감정적 회복탄력성과 인지적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방안을 갖춰나갈 필요가 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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