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인간에 대한 예의 또는 도리

상인호 불문마(傷人乎 不問馬) 다칠 상, 사람 인, 어조사 호, 아닐 불, 물을 문, 말 마

등록 : 2017-03-0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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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친구가 최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동서 고전을 강학하는 고전학교를 열었다. 첫 개강을 앞둔 이 학교의 이름은 ‘문인헌’(問人軒)이다.

‘사람에 대해 묻는다’는 의미의 문인(問人)은 <논어> ‘향당’편의 ‘구분(廐焚). 자퇴조 왈(子退朝 曰), 상인호(傷人乎), 불문마(不問馬)’에 연원이 있다. 마구간에 불이 났는데, 조정에서 퇴근한 공자가 이 소식을 듣고 사람이 다쳤는지 여부를 살피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고대 중국에서 말은 매우 귀중한 재산이다. 그런데 공자가 이 소중한 재물의 손실 여부를 묻지 않고 마구간 일을 하는 사람들의 안전에 대해 먼저 물은 것이다.

주희의 <논어집주>는 공자의 이 ‘문인불문마’(問人不問馬)에 대해 “귀한 말을 아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생각이 더 커서 (말에 대해서는)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가축을 천히 여기는 도리가 이와 같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희의 해석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여긴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리 사람이 중해도 생명에 차등을 두는 식의 해석은 곤란하지 않은가라는 의문이다. 그래서 중국 명나라 때 성리학자 왕양명은 ‘상인호(傷人乎), 불문마(不問馬)’의 문장을 ‘상인호부(傷人乎不(否)), 문마(問馬)’로 새롭게 끊어 읽었다. 이렇게 읽으면, 사람이 다쳤는지 아닌지를 물은 뒤 이어서 말에 대해 물었다는 뜻이 되어 ‘인민애물’(仁民愛物)하는 공자의 참뜻이 제대로 드러난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은 이런 왕양명의 ‘친절(?)’에 동의하지 않았다. 필자 역시 다산과 같은 기분이다.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 인식 수준에서 보면 웬만한 사람 목숨값보다 귀한 말의 손상 여부에 관심을 두지 않은 공자의 행위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위대한 교사’인 공자가 그 상황에서 말에 대해 묻지 않은 것은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 맞춘 사려 깊은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재물이 소중한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그것이 사람의 가치와 다투는 지경까지 가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었다. 사람과 동물 생명의 차등을 따지는 따위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과 재물의 가치가 대립할 때 인간에 대한 예의가 드러나는 법이다. 적지 않은 사재를 털어 적자 운영이 뻔할지 모를 시민학교를 열고 그 이름을 ‘문인’이라 한 데는 나름 깊은 뜻이 있었다는 생각이다.

이인우 <서울&> 콘텐츠 디렉터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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