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엄마의 베를린살이

베를린 정착, 그 소리 없는 투쟁

등록 : 2017-03-3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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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클라바’와 ‘카다이프’ 이재인 제공
오늘 아침에도 나는 히잡 쓴 여성 둘과 함께 피트니스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동네 한구석에 있는 작은 여성 전용 피트니스센터다.

운동을 마치고 사우나에 들어갔더니 그 안에서는 ‘불구르샐러드’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었다. 불구르는 아랍 음식에 자주 등장하는, 가공된 밀의 일종이다. 몇 사람은 불구르샐러드에 볶은 채소를 넣는다는 반면, 다른 몇몇은 채소는 날것으로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 사람 중 가장 많은 수는 아마 터키인일 것이다. 게다가 공중목욕탕이 없는 독일에서 여성 전용 피트니스란 터키 여자 목욕탕이나 다름없다. 사우나 안에서 터키 수다를 듣고 앉아 있는 것은 사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평소와 달리 여자들은 독일어로 떠들고 있었다. 물론 청취자를 배려해서는 아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모국어로 서로 소통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좀 더 듣다 보니 한 그룹은 터키인, 다른 한 그룹은 시리아인들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터키 아주머니가 시리아 아주머니의 서툰 독일어에 적당히 추임새를 넣어가며 독일에 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에둘러 물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1년 반, 2년 정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불현듯 재작년 겨울, 눈을 맞으며 난민보호소 앞에 줄 서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베를린에는 여전히 곳곳에 난민보호시설이 남아 있다. 신문이나 뉴스에는 아직도 심심찮게 본국으로 송환되는 난민들의 사연이 실리곤 한다. 반면, 사회에 정착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드물다. 정착도 어찌 보면 송환에 못지않은 투쟁인데 말이다.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터키 거리로 산책하러 나갔다. 걷다 보면 아랍인지 독일인지 헛갈릴 정도로 아랍 상권이 밀집해 있는 길 하나를 우리는 그렇게 이름 붙였다.

그 길을 걸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중얼거렸다. “끊임없이 망하고 끊임없이 생기는구나.” 거리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 간판들로 가득했다. 알 수 없는 아랍어로 멋스럽게 새겨진 상호 위에는 희망이 하나씩 걸려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뜨이는 이상한 제과점이 있었다. ‘바클라바’, ‘카다이프’ 등 호두와 피스타치오, 꿀로 만든 아랍식 과자를 파는 곳임은 분명한데 어딘지 분위기가 달랐다. 제과점 한쪽 벽에서는 큰 모니터에 아랍 모 방송사의 프로그램인 듯한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었다. 하얀 건물들이 그림같이 아름다운 어느 도시의 일상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모습에 넋을 잃었다. 남편이 팔을 툭툭 치는 바람에 비로소 과자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순간, 나는 그 이상한 제과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모니터 한구석에 알파벳으로 쓰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다마스쿠스’ 그리고 우연히 한 종업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은 쭉 나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미소 속에서 나는 이런 말을 읽었다.

“그래요. 시리아는 아름다운 나라죠. 저곳이 싫어서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에요.”

과자 속에는 장미 향이 가득했다. 지금껏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바클라바 맛이었다.

글 이재인 재독 프리랜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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