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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원한다면 먼저 평화를 생각하세요”

김보근 선임기자 ‘전쟁기념관에서 평화를 말하다’ 프로그램 참가기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주최, 전시 안 된 내용으로 ‘다시 보기’ 시도

등록 : 2024-07-04 13:42 수정 : 2024-07-0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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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 민간인 사망, 남북이 진행한 평화 노력 등 눈에 안 보여”

평화 위해 ‘조금 다른 접근’ 열어둬야

남북 대치 상황에서 시민 역할 기대

지역시민단체도 ‘평화걷기’ 등 기획


2016년 6월18일 ‘전쟁기념관에서 평화를 말하다’ 첫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들이 용산구 전쟁기념관 광장에서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제공
2023년 6월25일 시민들이 ‘전쟁기념관에서 평화를 말하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펼쳐 보이고 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제공

“최근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풍선과 북한 ‘오물풍선’ 이야기를 계기로 ‘전쟁의 기운’이 어느 때보다도 가까이 있는 느낌이 들어서, 이번 기회에 꼭 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달 22일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만난 프리랜서 강혜정(59)씨의 말이다. 강씨는 이날 군 관련 평화시민단체인 ‘열린군대를 위한시민연대’(이하 열군)에서 진행하는 ‘전쟁기념관에서 평화를 말하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강씨 주변에는 대체수업으로 전쟁박물관 관람을 온 초등학생들로 붐비고 있었다.

지난달 22일 전쟁기념관 입구 모습. 김보근 선임기자
전쟁기념관은 1990년에 착공해 1994년 6월10일 대지 3만5천 평에 연건평 2만3천 평규모로 문을 열었다. 1만900여 평의 옥내전시실은 6개의 전시실인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대형장비실로 구성돼 있으며, 옥외전시실에는 대형 무기들이 전시돼 있다. 옥외전시실 광장 중앙 조형물에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기억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닫힌 군대를 열린 군대로 바꿔나가기 위해 2014년 출범한 열군은 2016년부터 ‘전쟁기념관에서 평화를 말하다’를 진행해오고 있다. 거대한 전쟁기념관에서 ‘보여주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평화적 관점에서 전쟁기념관 다시 보기’를 시도해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2일 박석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가 폭격으로 끊어진 대동강 철교 사진 앞에서 해설하고 있다. 김보근 선임기자
이날도 해설자로 나선 박석진(55) 열군 상임활동가는 2시간 넘게 진행된 해설에서 ‘전시되지 않은 것들’을 다양하게 지적했다. △민간인 사망 관련 자료 △한국전쟁이 일어나게 된 과정에 대한 설명 △남북한이 진행한 평화 노력 등이 그중에서도 주요한 내용이다.

박 상임활동가가 제일 먼저 지적한 것은 ‘민간인 사망 관련 자료의 부재’다. 전쟁기념관 입구에 들어선 박 상임활동가는 전시된 ‘한국전쟁 당시 전사자 명부’ 앞에 섰다. 전사자 명부는 어두운 방 가운데서 밝은 조명을 받고 있었다. 한국전쟁에서 숨진 젊은 군인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위로하는 듯했다. 정말 모두 소중하고 꽃다운 죽음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국군 전사자는 13만7899명에 이른다.

“하지만 전쟁은 군인들만의 일이 아닙니다. 전쟁이 어떤 시공간에서 발생하면 그 시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실질적으로는 사회적 약자인 노인, 아이들, 여성한테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 전쟁에서도 명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통계연감>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남한의 민간인 사망자는 24만5천여명, 학살된 민간인은 13만여 명이다. 희생된 민간인들 또한 모두 소중한 목숨이다. 하지만 전쟁기념관에는 이들을 기억하는 전시물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박 상임활동가가 두 번째로 지적한 것은 ‘한국전쟁이 일어나게 된 과정에 대한 설명 부재’다. 전쟁기념관은 “1950년 6월25일 새벽, 구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군이 대한민국을 공산화할 목적으로 기습 남침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기습’에 초점이 맞춰진 설명이다. 한국전쟁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처럼 느끼게 하는 설명이다.

“과정 없는 전쟁은 없습니다. 가자지구 전쟁만 해도 그 시작을 보면 멀리는 194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전쟁도 국방부 산하 연구조직에 따르면,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1년쯤 전부터 1천여 회 정도 남북 간 군사적 갈등·충돌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습니다.”

박 상임활동가는 “전쟁기념관처럼 ‘어느날 갑자기 전쟁이 일어났다’고 보면, 전쟁 대비 방법으로는 국방비를 더욱 많이 써 무기를 증강하고 군인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쟁은 억지되겠지만 긴장은 더욱 높아진다. 반면 “전쟁이 여러 차례의 충돌과 갈등이 쌓여서 일어나는 것으로 본다면, 중간에 전쟁으로 가는 길을 막으려는 노력이 가능하고 또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시민사회에서 진행하는 반전 캠페인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전쟁 등 충돌을 막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자 지난달 25일에는 607개 국내 시민사회단체와 80여개의 국외 파트너 단체가 참여한 ‘한반도평화행동’이 출범했다. ‘한반도평화행동’은 휴전 협정일인 7월27일을 ‘한반도 평화행동의 날’로 정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행동’에 참여한 각 단체도 자체적인 평화 활동을 기획 중이다. 참여 단체 중 하나인 ‘강동연대회의’의 경우 “그동안 주요 이슈가 있을 때 천호역 등지에서 지하철 캠페인을 벌여왔다”며 “앞으로 강동구 주민들과 함께 평화걷기 활동 등을 통해 평화의 중요성을 더욱 널리 알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 상임활동가는 이어 한강 다리 폭파, 고지전, 학도의용군 등 전쟁의 다양한 참상에 대한 소개를 이어갔다. 전쟁기념관 설명을 마치면서 그는 “남북한 간 평화 노력에 대한 전시가 없다”고 마지막으로 지적했다.

“물론 남북한 관계가 안 좋았던 적이 많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서로 화해하려는 노력이 꽤 여러 차례 있었거든요. 박정희 대통령 때는 남북 간 최초의 합의문서인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있었고, 김대중 대통령 때는 평양에서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 ‘6·15 공동선언’을 발표했어요. 없는 역사를 말하라는 게 아니라 이런 실제로 있었던 역사를 한편에 같이 전시해볼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박 상임활동가는 “만일 전쟁기념관에서 ‘현재 전시되지 않은 역사들’을 전시한다면, 전쟁기념관이 과거의 전쟁은 물론 미래의 평화에 대해서도 같이 얘기해보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가한 설치미술가 반재하(34)씨는 “우리 세대는 한국전쟁에 대해 잘 모른다”며 “해설을 들으면서 전쟁기념관을 둘러보니 전쟁기념관이 보여주려는 것을 넘어 말하지 않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반 작가는 이런 경험이 앞으로 작품 활동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 작가는 이미 지난 3월7~9일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 올린 작품 <메이크 홈, 스위트 홈>을 연출했다. 이 작품은 인공지능(AI)으로 형성된 북한의 이미지가 남한에서 어떻게 유통되는지를 살피고, 이를 통해 분단이 남한 주민들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고찰했다.

대체수업으로 기념관을 찾은 학생들 모습. 김보근 선임기자
한국전쟁 74주년인 지난달 25일 오후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육군 2군단 소속 병사들이 이곳을 찾은 시민들에게 태권도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또 다른 참석자인 재일동포 3세 김영화(56·가명)씨는 “전쟁기념관 전시는 북한이 우리의 적이라는 메시지만 던질 뿐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갈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며 “북한이 한국전쟁을 일으킨 것은 명확한 사실이지만, 그런 적대감만을 가지고 미래를 맞이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남북 갈등의 종착지가 전쟁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전시되지 않은 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며 “지금 남북관계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은 역시 이런 시민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프리랜서 강혜정씨는 “해설을 듣는 동안 줄곧 강대강으로 대치하는 현재의 남북 상황이 오버랩됐다”며 “북한을 힘으로 제압하려 할 때 평화로웠던 시기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 좀 다르게 접근할 방법을 열어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광장에 세워진 형제의 상. 국군인 형이 인민군인 동생을 끌어안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박 상임활동가의 해설을 듣고 난 뒤 다시 광장 중앙 조형물을 살펴본다. 뭔가 중요한 문구가 빠진 것처럼 느껴졌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기억하라’는 글 옆에 ‘그러나 미래의 평화를 원하거든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고민하라’는 문구가 새겨진 모습을 상상해 본다.

김보근 선임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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