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넘게 한국인의 체질과 생활, 상황에 따라 맞춤 치료법을 제시해온 ‘동의보감’은 이런 증상에 대해 “스트레스, 분노, 걱정으로 간의 기운이 제대로 소통되지 않으니 간의 기운을 풀어주고 기혈 순환을 촉진해야 하고(疏肝理氣, 소간이기), 긴장과 심한 감정 변화로 인해 심장의 열이 과도하게 올랐으니 심장의 열을 내려줘야 하고(淸心瀉火, 청심사화), 담(痰)이 정체되었으니 담을 제거하고 기혈 순환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化痰開鬱, 화담개울)”며 시호, 작약, 지실, 감초, 당귀, 목단피, 치자 등 약재와 연근, 우엉, 브로콜리, 귤껍질(진피), 무, 매실, 생강차, 박하차, 감초차 같은 식품을 추천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허준의 ‘동의보감’(1610년)은 세종 때 간행된 ‘향약집성방’(1433년), ‘의방유취’(1445년)와 함께 조선 3대 의서의 하나다. ‘동의보감’은 중국과 일본의 의학서까지 망라해 우리나라 사람에게 맞는 치료와 처방, 약재와 식품을 한데 모은 한(韓)의학 백과사전이라는 건 잘 알려졌지만, 편찬과 출판의 동기가 ‘백성 사랑’, 공자의 ‘인’(仁)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상기하는 이는 많지 않아 보인다.
논어에서 공자는 “정치는 덕으로 해야 하며, 백성을 부모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했고, ‘동의보감’에서 허준은 “백성이 병들어 고통받으면 나라는 쇠퇴하고, 백성이 건강해야 나라가 강해진다”고 했다. 공자는 “인의 핵심은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라고 가르쳤고, 허준은 의술을 통해 백성을 돕는 것이 가장 실질적인 ‘인'의 실천이라고 보았다. 또 공자는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에게 가르침을 베풀어야 한다”고 했고, 허준은 가난한 자도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의학을 정리했다.
고성규 경희대 한의과대학장은 “의료인은 환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 하며, 지식보다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이어 “‘동의보감’ 편찬 목적은 왕과 귀족, 양반뿐 아니라 백성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조선의 기후와 환경에 맞는 의학적 접근이 필요했고, 기존 중국 의학서적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는데 예를 들어, 북방과 남방의 기후 차이로 질병 유형도 달랐다. 우리나라에 적합한 의서를 만들라는 명 자체가 백성을 위하는 ‘인’의 정신의 발현”이라고 했다. 실제로 훈련도감을 통해 1613년 처음 출간된 ‘동의보감’에서 당시 이조판서 이정구가 쓴 서문(1611년)에는 우리의 의서를 만들라는 선조의 어명이 인용돼 있다.
‘사람의 병은 대부분 몸을 제대로 조절하고 기르는 것을 소홀히 해 생기니, 수양을 먼저 하고 난 뒤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 여러 처방이 너무 많으니 중요한 것만 가려야 한다. 외진 마을과 좁은 골목에는 의원과 약이 없어 병으로 일찍 죽는 이들이 많다. 우리나라에는 향약이 풍부하게 나지만 사람들이 이를 잘 알지 못하니 향약을 분류하고 지역명과 함께 기록해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라.’
김남일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교수는 동의보감이 담은 ‘백성 사랑’ ‘인’ 사상의 근거를 일곱 가지 예로 소개했다.
① ‘동의보감’은 약재를 한글로 표기해 백성들이 의학지식을 쉽게 얻도록 했다. ② 각 장에는 (여러 약재가 아닌) 하나의 약재로 병을 치료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코너를 두었다. 동아시아 전통의학에선 유례없는 배려다.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비싼 약재 대신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③ 일반 백성도 의학지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백과사전식으로 편집했다. ④ 전쟁이나 기아, 질병으로 가장 고통받는 백성이 활용하도록 비상용 지식을 ‘잡방’(雜方)이라 해 모아두었다. ⑤ 갑자기 쓰러져서 생명이 위독한 구급 상황과 이때 살려낼 수 있는 구급 요법을 담았다. ⑥ 비싼 외국 약재를 대신할 국내 약재를 소개했고, 출산지와 지역별 약재 특성 설명도 자세히 달아 누구나 약재 수급에 참여해 경제적 부를 얻을 수 있게 했다. ⑦ 돈 걱정 없이 가난한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자가면역요법을 소개했다.
김남일 교수는 “당시의 왕과 지식인(성리학자)들은 백성을 치료해준다는 것이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봤다. 이들은 인체를 우주의 축소판으로 봤고 주역(역학)과 연결해 인체를 연구했는데, 이들을 ‘유의’(儒醫)라 했다”고 설명했다. 정유옹 대한한의사협회 수석부회장은 “‘동의보감’이 조선 한의학의 근간이며, 여전히 현대 한의학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응용되고 있다”며 “허준은 ‘동의보감’ 외에도 ‘언해태산집요’(산부인과, 소아 치료), ‘언해구급방’(응급의학), ‘언해두창집요’(전염병 치료) 등의 저서도 남겨 당시의 필수의료체계를 구축하는 데도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일제에 의해 한의학 크게 위축”
“서양이 통합의학 연구 더 활발”
“국가 차원의 예산 투입 필수적”
‘동의보감’이 세상에 나온 지 올해로 415년. 한의학은 어디쯤 와 있을까. 정유옹 부회장은 “일제에 의해 한의학이 크게 위축됐다 1950년대 한의사 제도가 부활했지만 여전히 법적 독립이 미비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고성규 학장은 “과거 ‘동의보감’의 위업이 왕명으로 이뤄졌던 것처럼 10~15년 정도의 장기적인 연구와 이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예산 투입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는 통합의학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미국 국립보건원(NIH) 내 통합보완의학센터(NCCIH)에서 연간 수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고도 했다.
한편, 지난 21일 허준의 출생지인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자리잡은 허준박물관이 개관 20주년 기념 특별전 ‘조선의 의사들, 인(仁)을 실천하다’를 시작했다. 전시는 9월7일까지 허준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에선 다양한 의학 관련 소장 자료를 만날 수 있다. 허준박물관 소장유물 78점 외에 상주박물관, 한독의약박물관,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소장유물 27점을 더해 총 105점의 유물을 선보인다.
김충배 허준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는 허준박물관의 정체성에 맞게 조선의 의사들이란 주제로 기획했다. 조선 사회의 의사는 직업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유교의 기본적 덕목인 인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의술을 다루었던 사람들이다. 이런 철학적 배경은 비단의술 뿐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이타적 마음의 실천임을 관람하는 분들이 느끼고 공감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16세기 유럽에서는 마르틴 루터가 중세교회의 타락을 폭로하며 종교 개혁의 물꼬를 텄고, 성경의 번역과 인쇄술로 시민들이 깨어나 종교의 자유와 정치개혁을 요구했다. 이후 17세기 조선에서는 허준이 전란과 유배를 감당하며 15년 산고 끝에 내놓은 ‘동의보감’이 지방 의원에까지 배포되며 왕족과 양반뿐만 아니라 온 백성이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게 됐고 동양의 대표 의학 백과사전으로서 그 영향력은 동아시아 전역에 미쳤다. 이러한 위업은 사람을 향한 열정, ‘인간애’에서 비롯된 열매였다.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